신학
제1권 제10장 성경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제시
칼빈은 앞의 단원 6~9장에서 성경의 권위와 신빙성을 증명하고, 10장부터는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함으로써 미신과 우상숭배를 타파하고자 한다. 칼빈은 구약의 실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자존성을 주창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열거되고 있는 능력들은 우리가 이미 본 하늘과 땅에서 빛나는 능력들과 동일한 것이니, 곧 인자하심, 선하심, 자비하심, 공의, 심판, 그리고 진리가 그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이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에 근거한 것이며 허망하고 과장된 사색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축적(蓄積)된 것임을 천명한다.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존재증명과 하나님의 속성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칼빈의 논증은 매우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 중심사상’의 명제에 충실한 개혁정신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철학적 기반 위에서 조성된 아퀴나스의 신학사상은 종교의 골격을 이루는 신학으로 정착되었고, 이러한 신앙을 매개로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모든 분야에서 단일체제로 구성되었으며 교계의 독선적인 제도와 위선 그리고 미신이 성행했었다. 칼빈의 신학 작업은 부패로 체질화된 로마 카톨릭의 교리에 도전한 것이며 사회에 만연된 미신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시행한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중요한 지적을 한다. 첫째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인식은 성경의 진리에 근거하며, 인간의 허망한 사색이나 추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둘째,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자존성을 명시하고 있다. 칼빈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속성은 반드시 성경에 근간을 두고 확인해야 하며,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의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실증(實證)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유적(本有的) 속성인 영원자존성은 하나님의 속성을 규정하는 단초임이 명백하다. 필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부분이 신학적인 범주에서 너무 중요하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진술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속성(屬性)이란 하나님의 본질을 이루는 본래의 성질을 뜻한다. 하나님의 본성은 하나님만의 절대적인 성질을 의미하며 인간이나 그 외에 어떤 피조물과도 공유될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 흔히들 하나님의 속성을 규정할 때 인간의 속성과 함께 공유(共有)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이분법의 방식에 따라 인간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부분과 하나님만이 보유하고 있는 비(非)공유적인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 정설이다. 공유적인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지닌 속성으로서 영적인 인격성, 지성, 도덕성, 주권성, 유복(有福)성을 말한다.
그러나 인격(人格)이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용어인데, 이 용어를 하나님께 결부시켜 사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된다. 인간의 지성(知性)은 인간의 이성기능이기 때문에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과 관련시키면 안 된다. 도덕성과 유복성도 마찬가지로 도덕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사이에서 형성된 것이며, 인간이 보유한 복 역시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선물로 베푸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복의 주관자와 수혜자가 함께 복의 속성을 지녔다고 보는 것은 주체와 객체의 성질을 확실하게 구분 짓지 못한 결과이다. 영의 본체와 피조된 영, 지식의 근본(logos)과 인간의 지성(知性), 선악의 주체와 인간의 도덕, 절대적인 주권과 종속적인 인간의지, 복의 주관자와 수혜자의 위치와 성질 등은 근본적으로 확연하게 다르다. 하나님의 속성을 인간의 속성과 동일한 범주에서 이해하는 방법은 인간의 합리적인 유추의 산물이지 결코 근본적으로 공유될 수 없는 성질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은 상호 교류하거나 공유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상반된 개념이며, 중요한 점은 종속적인 관계로서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속성을 분류할 때는 공유와 비(非)공유보다는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엄격히 다른 차원에서 구분해야 한다. 이유인즉 하나님과 인간은 본질이 완전히 다르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자체에 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은 절대와 상대의 관계이며 주관과 종속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라고 증거한다. 즉,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며 섭리의 주체이고, 영원한 본질임을 고백함으로써 창조주와 피조물의 위치를 절대와 상대의 관계로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또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고 밝힘으로써 피조물은 주권자 하나님께 완전히 종속된 존재임을 밝힌다. 하나님의 속성은 절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그 어떤 것과도 공유될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인간의 속성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본질적이며 절대적이고 영원하다. 하지만 피조물인 인간은 철저하게 창조주의 기운에 의해서 생존하는 생령체로서 피상적이고 의존적이며 상대적이고 유한하다.
하나님의 속성은 성경을 통해서 명백하게 확보되는데, 성경에 나타난 단편적인 사건이나 교훈을 통해서 분석하기보다는 총체적인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이 시가서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시가서는 창조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경으로 응축된 것으로서 역사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속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시가서는 하나님께서 열조와 세운 언약대로 성취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해서 기록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용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역사섭리를 통하여 전능성을 계시하셨다(욥기). 그리고 만사를 언약대로 이루어 주시는 역사섭리를 통하여 신실성을 계시하셨다(시편). 뿐만 아니라, 우주와 만물을 뜻대로 주관하시는 역사섭리를 통하여 주권성을 계시하셨다(잠언). 그리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는 역사섭리를 통하여 영원성을 계시하셨다(전도서). 그리고 언약백성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역사섭리를 통하여 자비성을 계시하셨다(아가).
위에서 증거한 하나님의 속성은 성경 자체가 체계적으로 증거하고 있으며, 하나님만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하나님의 사역적인 속성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사역적인 속성’이라 함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서 계시를 목적으로 드러난 속성을 뜻하는 것으로서 본질적인 속성과는 구별된다.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속성을 절대성, 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유일성으로 분류하는데, 성경의 체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가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에는 일반적으로 분류한 속성이 다 함의되어 있다. 전능성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운영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이다. 신실성은 하나님의 사역 상에 있어서 언약대로 이루시는 속성을 말하는데, 형상의 개념을 초월한 불변성도 신실성에 포함되어 있다. 주권성은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사역 상에 있어서 절대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유일성은 단수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자존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주권성과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 자비성은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사역 상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영원성은 하나님의 근본적인 실유의 속성을 뜻하는데, 영원성에는 무한성과 거룩성이 내포되어 있다, 거룩은 세속으로부터의 초월이란 개념에서 “피조물의 상대적 실존으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하나님의 절대적 실유의 본질”이며, 상대가치로부터의 초월이란 개념에서는 “피조세계의 상대가치 이념인 진․선․미로부터 영원적 초월상태로 구별되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절대가치 이념”을 말한다. 따라서 거룩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과 관련된 개념으로서 영원성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은 영원성(永遠性)인데, 영원성은 계시된 피조물의 속성을 통해서 귀납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창조란 영원한 것을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상으로 계시한 것이기 때문에 시공형의 본질이 ‘영원(永遠)’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만물이 영원한 본질에서 시간과 공간(空間) 그리고 형상(形象)으로 나타난 것이며, 최종적으로는 시공형을 초월하여 영원으로 귀속된다는 사실을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라고 증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은 시공형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시는 영원성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영원’이란 모티브에 있다. 즉, 시공형으로 계시된 세상 나라와 시공형을 초월한 영원한 나라 그리고 육체의 유한한 몸과 신령한 몸의 영생을 통해서 증거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영원은 불교의 윤회와는 다르다. 불교의 영원개념은 모든 짐승이나 인간의 생명체가 행위의 업적에 따라 형체를 달리하며 이생과 내세를 반복하여 공존하는 윤회(輪廻)적인 것을 의미한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핵심은 생명체가 인간과 동물의 형체를 바꿔가며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원’은 시공형으로 계시된 세계가 시공형을 초월하여 본래의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어떤 형체나 생명체가 다른 종(種)으로의 변화를 반복하며 이생과 내세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본질이지만, 나타난 것은 영원한 것을 드러낸 계시체로서 시공형의 제한을 받으며 유한(有限)한 것으로서 영원하지 못하다. 바울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는 말로써 영원한 본질과 계시적 현상의 차이를 영원과 순간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영원과 순간의 성질을 부활의 개념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이 말은 부활은 영원한 삶에 대한 설명으로서 ‘영원’이라는 개념임을 정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즉, 하늘에 속한 본질적인 것과 땅에 속한 계시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것은 최종적으로 육의 몸과 신령한 몸으로 구분되고, 땅에 속한 육의 것은 소멸되지만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수께서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했다. 이 역시 그리스도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본질로써, 자기를 믿으면 육체적으로는 죽지만, 중생한 영혼은 신령한 몸으로 영원히 생존한다는 말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속성을 증거한 다음 미신을 철저하게 배격해야 한다고 주창하는데, “성경이 우리를 참되신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하여 이교들의 모든 신들을 명확하게 제외시키고 거부한다는 점을 유념하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칼빈의 주장대로 당시에는 미신의 성행과 기독교의 본질에서 왜곡된 로마 카톨릭의 종교행위 등은 비성경적이며 우상숭배의 형태로 나타났다.
구약성경의 십계명에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으며,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배격해야 되는 이유도 성경 여러 곳에서 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실 때에도 하나님만을 섬겨야 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또한 출애굽기 20장 2절에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계명을 선포하실 때 명제적으로 제시하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지켜야 할 계명에 대한 당위성을 말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神)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세는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확고하게 말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되는 이유가 열조와의 언약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적인 맥락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한편 성경신학적인 관점에서 하나님만을 섬겨야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의 속성은 창조주로부터 생기를 공급 받아야 생존할 수 있으며, 생존의 의미는 창조주를 섬겨야만 하는 종교성에 있다. 이 종교성은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창조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며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을 피조만물에 선포하신 하나님의 계시사역이다. 피조물의 속성은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찬양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만 생기(生氣)를 공급하셨다. 이 의미는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특성이며, 이것은 인간이 짐승과 다른 생령체(生靈體)임을 명시하는 것이다. 이 점은 다른 피조물이나 짐승에게서 찾을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기능이며 영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종교성을 의미한다. 인간의 타락은 바로 종교성의 변질이자 영적으로 사망한 육체로 전락된 것을 말한다. 그래서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대체하는 변질된 종교행위를 자행하게 된 것이다(롬1:21~2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참 된 종교성을 회복하고 올바른 종교생활을 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본분을 다하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고, 율법을 통해서 여호와를 배우고 기억하며 경외하게 하신 것이다.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할 온전한 종교성에 대한 것을 모형적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하시며, 하나님만이 참 신(神)이심을 알게 하시어 경외하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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