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4-08-11 19: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도(道)는 비어 있을까?


도는 비어 있어서 쓰고 또 써도 다 하지 않으니(가득 참이 없으니),
道沖而用之 或不盈,(도충이용지 혹불영)
깊도다! 만물의 근원과 같도다.
淵兮 似萬物之宗.(연혜 사만물지종)
그 예리함을 꺾고, 그 어지러움을 풀고, 티끌과 함께 하니(섞이니),
挫其銳 解其紛 同其塵,(좌기예 해기분 동기진)        
맑고 맑도다! 있는 것 같도다.
湛兮 似或存.(담혜 사혹존)
나는 (도가)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되 상제보다 앞서 있는 것 같네.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노자』는 81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용된 글자는 약 오천여 자에 이른다. 1장에서 37장까지는 주로 도를 논하고 있어서 도경(道經)이라 하고, 38장에서 마지막 81장까지는 덕을 주로 한 내용이어서 덕경(德經)이라 한다. 이 둘을 합하여 노자는 『노자도덕경』 또는 단순히 『도덕경』이라 불리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노자에는 고유명사가 단 한 사례도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나’를 가리키는 ‘오(吾)’ ‘아(我)’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이때의 ‘나’는 일반 민중을 의미하거나 도를 터득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한편 도경에서 ‘도(道)’라는 글자를 사용해서 직접적으로 도에 관해 말하고 있는 곳은 1장, 4장, 14장, 21장, 25장, 37장 등 모두 여섯 곳이다. 본 장은 그 두 번째인 4장의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본 장에서 드러나듯이 도는 비어 있다. 그것은 비어 있어서 쓸 수 있고 이렇게 쓰더라도 결코 다하거나 채워질 수 없다.(盈은 盡(진, 다하다)과 滿(만, 가득차다)로 해석됨). 그릇이 그릇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비어 있을 때이다. 다만 아무리 쓰더라도 다 사용될 수 없다거나 채워질 수 없다는 말은 마치 바닷물이 가뭄이 들었다고 그 양이 줄지 않고 장마가 졌다고 그 양이 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용하고 또 사용해도 늘 한결같다. 그러다 보니 천지자연의 허다한 만물들도 도에 의해 존재하고 변하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가 만물의 근원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도가 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세상의 예리한 것을 꺾어 버리거나, 세상의 어지러움을 풀어주며, 세상의 누추한 것들과는 똑같은 모습으로 낮아지기도 한다. 도는 이렇게 투명하고 맑다. 그래서 누구나 도가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도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한다. 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도가 상재(上宰, 象宰, 왕)나 천재(天宰, 왕)보다 먼저 있었으리라 추측해 볼 뿐이다. 
도는 정말 비었을까. 아니다. 현대물리학의 연구들에 따르면 지구나 우주 전체는 어떤 질량으로 가득 차 있다. 지구는 대기권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공기로 가득 차 있다. 공기 안이나 모든 물질은 에너지나 입자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대기권 밖의 진공의 공간에도 공기가 없을 뿐이지 그래서 물질의 이동이나 생존 등이 어려울 뿐이지 그 상황에 어울리는 특성을 지닌 에너지나 입자 등은 있는 것이다. 자연이나 인간의 생활세계를 대상으로 한 도라 하더라도 비어 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자연이 그대로 유지되고 어떤 형태로든 인간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면 그 자체로 도는 있는 것이다. 만일에 도가 비었다면 자연 만물이나 사람은 유지되어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도는 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가 비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오직 도가 자기 스스로를 비워간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즉 도가 자연 만물과 인생들의 존재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고 그들에게 맞추어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도가 무한히 스스로를 비워가기에 만물이나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고 또 사용하더라도 결코 모자람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우주 만물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전 세대의 사람들이 사용하더라도 모자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편 도는 온 만물과 인생들이 지금까지 사용해 온 도를 다 합한다고 해서 채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채우려 하더라도 조금도 더 채워지지 않는 것 그것이 도다.
기독인이 노자의 도를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기독인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비우심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비우셨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이 그분의 희생과 구원을 전 세대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쓰고 또 써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우심은 비움 그대로가 아니라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의 가득 참이었으며 하나님 사랑의 가득 참이었다. 예수님을 본받아 비워가는 마음은 그대로 비워져 있을 수 없다. 그런 마음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부활과 영생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기독인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람 냄새나는 마음을 줄여 가야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한편으로는 세속과 욕심의 마음을 비워가고 한편으로는 하늘나라의 마음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진리이시기에 우리(나)의 비움과 채움은 잠시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박사(교육학), 백석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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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