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객관적 계시로서 그리스도 뒤로 온 영
칼 바르트는 거룩한 영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Der heilige Geist ist nicht identisch mir Jesus Christus, mit dem Sohn oder Wort Gottes(KD., 473, GG., 578, CD., 451). 우리는 바르트가 제시한 영(靈) 이해는 전통신학에서 이해한 그리스도의 영과 다른 것임을 제시했다. 바르트는 명료하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뒤에 있다는 영과 다름(Nicht-Identität)을 제시했다.
이 부분에서 바르트는 그리스도를 고양된 자(Erhöhte, the exalted Lord)로 규정했다. 이러한 바르트의 어휘는 바르트의 기독론이 상승기독론(Aufstiegschristologie)인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바르트는 예수가 고양되어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예수가 고양되어 그리스도가 되도록 한 것은 영(靈)이다. 예수에게 부여된 영이 그리스도를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칼 라아너(Karl Rahner, 1904〜1984)는 이러한 구도를 “하나님의 존재통보(God's self-communication of His divine Being)”라고 제시했다. 그래서 로마 교회의 신학체계로 확립하면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체계화했다. 1962년 2차 바티칸 회의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 체계를 확립해서, 신의 자유와 인간의 고양을 도식화시켰다.
바르트는 예수의 행동을 객관적 계시(der objeckiven Offenbarung)라고 규정했다. 바르트는 예수가 죽음과 부활 이후에 십자가에 달린 자와 부활한 자로 인식되며 종결과 성취되었다고 전제(also Voraussetzung des Abschlusses und der Vollendung)했다(KD., 474, GG., 579, CD., 452). 바르트는 예수를 객관적 계시로 제시한다. 영을 주관적 계시로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도 영 안에서 있고, 객관적 계시 뒤에 있는 인간들도 영 안에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영은 동일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만드는 일을 영(靈)이 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는 고양되고, 영은 내려온 것(Herabfällen)으로 제시한다. 바르트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말하고, 그리스도의 고양을 말하지만, 그리스도와 성령의 일치를 부정한다. 그리고 영(靈) 안에서 그리스도도 고양되었지만, 그리스도와 상이한 계시가 된다고 제시했다.
우리는 바르트가 예수 그리스도를 “객관적 계시”라고 규정한 것을 지목한다. 이것은 칭의 논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객관적 칭의와 주관적 칭의로 나누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칭의 개념과 바르트가 말하는 객관적 계시는 유사한 면이 있다. 개혁신학에서 능동적 칭의(active justification)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헤르만 비치우스(Herman Witsius, 1636〜1708)는 능동적 칭의가 “하늘의 법정에서(in foro coeli)” 이루어진다고 표현했다. 능동적 칭의를 객관적 칭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개혁신학에서 능동적 칭의, 객관적 칭의를 하늘 법정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법정적 행위로 규정한다. 그런데 객관적 칭의를 1세기 골고다로 연결시키는 경우가 있다. 바르트는 정확하게 1세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객관적 계시로 규정하고 있다.
바르트가 des Heiligen Geistes와 der Geist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역에서는 the Holy Spirit와 the Spirit로 구분했고, 박순경은 성령과 영으로 구별하여 번역했다. 필자는 거룩한 영과 영으로 번역했다. 거룩한 영은 전통적 신학에서 성령과 다르기 때문에 구별시킨 것이다.
첫째, 바르트는 영이 인간이 아닌 인격을 보증한다고 제시했다(der Giest verbürgt dem Menschen das, was dieser sich nicht verbürgen kann: seine persönliche Teilnahme an der Offenbarung KD., 475, GG., 581, CD., 453). 바르트는 신의 말씀을 인식하기 위해서 긍정(Ja)을 제시했다. 바르트가 주장한 긍정(Ja)은 모두에게 해당되지만, 정통 신학만은 부정(Nein)이 된다. 그것은 정통 신학에서 규정한 것에 대해서 재고(再考)를 선언하며 폐기(廢棄)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둘째, 바르트는 영이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없는 가르침과 인도를 제공한다(Der Geist gibt dem Menschen die Belehrung und Leitung, die er sich selbst nicht geben kann. KD., 476, GG., 582, CD., 454). 바르트는 성령에 부여된 ‘파라클레이토스’를 사용한다. 그리고 주재권(Herrschaftsanspruch)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바르트는 주재권을 거룩한 영으로 제시했다.
셋째, 바르트는 주석적 모호함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재료가 사실인데, 영(靈)으로 가능성(Möglichkeit)을 갖게 된다. 바르트는 이러한 가능성은 그리스도를 말하면 가능하다고 제시한다(so von Christus reden können). 바르트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말함의 권능이 거룩한 영에 있다고 제시하는 특징은 있다(KD., 478, GG., 584, CD., 455).
바르트는 거룩한 영을 구속자 하나님으로 제시했는데, 그것은 거룩한 영이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Sprechen von Christus). 그러나 그리스도를 말함이 왜 구원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명료한 메커니즘을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바르트는 죄인이 하나님을 말하는(homo peccator capax verbi divini) 신비를 제시했다. 루터가 제시한 의인이면서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구도를 인정하지 않는 견해이다. 죄인이 하나님을 말했다면 구원받은 수준으로 제시하려는 것이다. 그 일을 거룩한 영이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뒤로 일어난 현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시간의 동일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특수성이 약화되거나 부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바르트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집중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한 일을 죽은 예수는 없고 거룩한 영이 주도하고 있다.
바르트는 객관적 계시 뒤에 온 거룩한 영 안에서 구원받음을 제시했다. 바르트는 구원받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에서 시작함을 제시했다. 그 일을 영이 함으로 영이 구원자가 된다. 결국 바르트는 천상의 주 하나님께서 구원을 진행한다는 개혁신학을 부정한 것이다. 영 안에서 구원이 발생하는 구도를 제시했다. 바르트의 영, 성령 이해는 전통 이해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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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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