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신약성경 전후서의 특징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기독교에 있어서 제일 핵심적일 수도 있다. 성경은 기독교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크게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기초적인 바탕에 대해서는 대개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출발선상과 같은 위치에는 대개 함께 서 있지만, 막상 출발하게 되면 수많은 방향과 각자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성경 공부나 연구의 방향은, 어떤 부분을 특정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성경 분량의 방대성에 크게 기인한다. 또 다른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학문을 하거나 연구에 있어서, 단편 문제 풀이나 분석 중심의 일변도 때문이다. 연구나 학문에 있어서 분석하고 종합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분석은 종합을 위해서이고, 종합은 분석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취할 때에도, 대개 어떤 한두 구절의 말씀으로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학풍이나 풍토는 일상생활에서 크게 자리 잡혀 있다. 구약성경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약성경도 그러하다. 성경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구조화되고 체계적으로 엮어져 있는 사실은 진리 증명이나 확증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기독교가 도덕이나 윤리일 수 없다. 기독교는 계시(啓示)종교이다. 성경은 특별계시다. 이 정도는 대개 인정한다. 대안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실제생활에 들어가면 말씀에 사로잡혀 있지 못하고, 한두 구절의 말씀을 붙들고 몸부림을 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제시하면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마치 두 손바닥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기도와 소망을 가진 수많은 성도들이 오늘도 말씀밖에 없음을 자각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절박성 가운데서, 분량 면에서 구약성경보다 훨씬 적은 신약성경을 통하여 접근해보고자 하며, 좀 더 풍성한 일용한 양식을 위하여 전서와 후서로 한정해 보았다. 전서와 후서로 되어 있는 고린도전서부터 베드로후서까지를 중심으로 그 각각의 특징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1) 고린도전서부터의 특징
구약성경은 분량 때문에 전서와 후서로 나누어져 있다. 대개 이러한 견해에 대해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신약성경에 있어서는 단지 분량 때문에 전서와 후서로 엮어지게 되었다고 보기에 쉽지 않다. 분량을 비롯하여 온전한 계시를 위하여 그리고 주제의 강조 등을 위하여 전서와 후서로 나누어 엮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신약성경의 전서는 고린도전서와 데살로니가전서와 디모데전서와 베드로전서이다. 이 네 가지 고린도전서부터 베드로전서까지는 그 내용과 의미 속에 분명히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 공통성은 넓게는 예수만을 증거 하는 점이다.
이 전서의 과정을 통하여 후서에 이르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명하는 과정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명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강조하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성은 고린도전서부터 베드로전서까지 네 부분 속의 공통성이다. 이러한 공통분모와 같은 특징을 발견하고 확증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을 취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일용할 양식을 먹음에 있어서 어떤 한 부분만을 지속적으로 취한다면, 오래가지 않아 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고린도서의 뒤에 나오는 갈라디아서도 그 이면에는 전서와 후서로 되어 있다. 에베소서부터 빌립보서까지도 마찬가지다. 디도서와 빌레몬서의 의미적인 구성은 마치 전서와 후서처럼 되어 있다. 또 요한1서가 전서이면 요한2서와 3서 그리고 유다서는 후서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명하고 확증하는 과정에서 드러나 있다.
2) 베드로후서까지의 특징
신약성경의 후서는 고린도후서와 데살로니가후서와 디모데후서와 베드로후서이다. 이 네 가지 속에 신학적인 공통성이 없을까?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교회설립부터 교회승리까지이다. 고린도후서부터 베드로후서까지는 교회양육부터 교회투쟁이 증거되는 논리적인 체계 속에 들어 있다. 교회가 양육되어 무장하고 투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앞에서 후서와 같다고 한 빌레몬서를 보라! “그리스도 예수”로 힘차게 시작되어 그 전개되는 논리 과정 가운데에, 그리스도가 얼마나 강조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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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계시의 현실성과 가능성: 이해가 된 성육신 |
계시의 현실성을 근거: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과 가능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