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보내시는 여호와 하나님
보내신다는 것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게 한다는 것이다. 또 세월이나 시간을 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파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내심에는 많은 요소들을 함축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보내시는 주관자로서의 여호와 하나님을 확증하고자 한다. 2020년 12월 25일이 지나갔다. 이 말 속의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2000여 년 전에 보내셨음이다. 이와 같이 ‘어디’와 ‘언제’는 보낸다는 것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누가(who)’ 보내느냐의 문제다.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은 것이 없음을 강조한다. 예수뿐만 아니라 예수를 판 가룟 유다도 그분으로부터 파견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은 들짐승 중에 간교한 뱀(옛 뱀 곧 사단)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女子)에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 보내셨다. 아담 창조로부터 큰 성 바벨론 심판까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셨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고자 한다. 크게 만유와 말씀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1) 만유를 보내셨다
이 만유는 모든 피조물을 의미한다. 피조물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시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보이지 않는 영물(靈物)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 지으셨다. 천사는 물론이고 마귀인 사단(창 3:1)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왜 지으셨을까?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그 사용 중에서 이 땅에 보내기 위함은 매우 중요하다. 선한 영(靈)이나 악한 영이나 여호와의 날에 적당하게(잠 16:4) 쓰이도록 준비되고 파견되었다.
창세기에서 요셉 사건은 매우 중요하다. 요셉이 형들로부터 팔려서 애굽으로 보내지게 된 것이 자손의 번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창세기 37장부터 민수기 30장까지 “자손언약 성취 섭리”(박용기, 『성경개론』)로 묶어진 것은 성경신학에서 너무도 중요하다. 또 다른 의미는 모세5경을 간파할 수 있는 핵심으로서 자리매김이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45장에는 요셉의 중요한 신앙고백이 울려 퍼져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이다. 여기에서 핵심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은 창세기 2~3장 이후로 “여호와 하나님”에서 생략된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신 분과 바로의 마음속을 강퍅하게 한 분은 누구인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누구이시겠는가! 민수기에서 가나안을 정탐하러 갈 때에 갈렙과 여호수아가 포함되도록 어떤 사람이 뽑았겠는가? 신명기에서 모세5경을 정리하면서 여호와께서 해설하신 것 중의 총정리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신 34장의 끝)이다.
여호수아서로부터 사사기에서 그토록 시기적절하게 사사들을 누가 보내셨는가? 룻기에서 베들레헴의 흉년이 여호와께서 보내시지 않았는데 우연히 저절로 들었겠는가? 사무엘하 11장에서 저녁때에 다윗의 옥상 거닐기는 왜 존재하는가? 욥기의 사단은 왜 존재하는가? 전도서에서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전 6:12)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같이 일평생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천지 중에 그 누가 있는가?
선지서 중에서 마지막인 말라기서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4:5)라고 선언하셨다. 여기에서 “내가”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2) 말씀을 보내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로 표현된 것은 신구약 성경 전체 중에서 단 한 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묘사는 참으로 중요하다.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말씀을 보내시는 분과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시는 분이 아주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여호와께서 만유와 말씀을 보내시는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곧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계 22: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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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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