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4-09-03 11:0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1권, I/1 읽기(4) 방대한 바르트 신학이 가는 방향: 종교다원주의


우리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교회교의학』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1953 - )가 영어로 번역된 Church Dogmatics 전체를 읽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어떤 신학자도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전체를 읽었다고 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만큼 『교회교의학』은 방대한 내용이고, 쉽지 않은 내용이다. 『교회교의학』은 5부작(말씀론, 하나님론, 창조론, 화해론, 구속론)으로 기획했지만, 4부작 13권으로 마쳤다. 바르트는 1932년 I/1권을 출판했고, 약 40년에 걸쳐서 13권, 9,0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으로 저술을 펴냈다. 바르트의 저술량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1265-1273년(8년) 동안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神學大典)을 집필했다. 신학대전은 150만 어휘의 방대한 저술이라고 한다. 마틴 루터는 논문과 설교집으로 그의 저술을 집대성한 분량은 방대하고 진행형이다. 바이마르판(Weimar Edition, WA, 55권)을 번역한 영문판으로 (Luther"s. Works, LW)가 있다. 1955년부터 1986년까지 30여 년 동안에 출간했다. WA에서 약 1/3 정도만 영어로 번역되었고, 미국 컨콜디아 출판사에서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루터회에서 영어 번역을 시도하고 있다. 칼빈의 저작은 1863-1900년에 편집된 전집(Calvini Opera: CO) 59권이 있다. 에밀 두메르그(Emile Doumergue)가 주도해서 편집된 7권의 Calvin and the Reformation(CR)이 있다. 루터의 저작에는 논문과 설교가 다수이고, 칼빈은 기독교강요와 주석 그리고 설교로 구성되었다. 칼 바르트와 아퀴나스의 저작은 고유한 사유 체계를 진술했다. 모든 연구자들의 공통점은 죽음 직전까지 글쓰기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존 칼빈과 칼 바르트의 신학 체계가 같지 않음을 기본 구도로 삼고 있다.

영어로 번역의 편집인을 맡았던 펠리칸(Jaroslav Pelikan)과 레만(Helmut T. Lehmann)은 번역된 전집 서문에서 “루터의 저술들은 한 번에 통째로 전부 다 번역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칼 바르트의 글도 그렇다. 그래서 매우 천천히 진행하려고 한다. 거대한 사유가를 만나면 더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진행이다. 그것은 쉽게 넘어지거나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힘을 강하게 내서 시작하면 금방 지쳐서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 사유에도 속도가 있는데, 우리의 사유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고 한다. 그 빠른 사유를 느리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마음의 숨을 두 번 크게 쉬면서 스텝을 조절하면 될 것이다. 마라톤 선수의 폐활량은 크기 때문에 맥박수가 빠르지 않다고 한다(성인의 평상시 심박수는 60-80회, 마라톤 선수는 37-40회, 박지성 선수 40회). 사유가들의 사유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템포에 맞춰야 한다.

칼 바르트가 위대한 사유의 일인자가 아니다. 칼 바르트의 후예들은 칼 바르트의 최고의 사유가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칼 바르트는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의 그늘에 있다. 다만 칼 바르트가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의 그늘이 아닌 것은 두 신학자의 그늘을 벗어났고, 그 그늘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는 종파를 형성시키지는 못했지만, 로마 가톨릭 신학과 조우해서 종교다원주의 체계(익명의 그리스도인, Anonymous Christian)로 함께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그래서 종교다원주의적 세계에서 칼 바르트는 유일한 사유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배타적 구원(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을 갖고 있는 진영에서 칼 바르트는 집을 나간 것뿐만 아니라, 나간 집을 허무는 공격수에 불과하다. 칼 바르트가 20세기 최고 신학자의 위용을 갖는 것은 로마 가톨릭과 조우하며 연맹했기 때문이다. 교황 비오 12세(Pius XII, 1876-1958)는 칼 바르트를 아퀴나스 이래 최고의 신학자라고 평가했다.

바르트는 1920년대 중반 이후 40여 년간 로마 가톨릭과 대화를 계속했다. 로마 가톨릭 진영에서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 앙리 부이야르(Henri Bouillard), 한스 큉(H. Küng, 1928-2021) 등이 바르트의 사유 체계를 따랐다.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뒤에 칼 바르트는 1966년 가을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 교황이 될 라칭거(J. Ratzinger: 2005년 재임 2013년 사임,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1927-2022)와 칼 라너(K. Rahner, 1904-1984), 폰 발타자르, 앙리 부이야르, 한스 큉, 제멜로트(O. Semmelroth) 등과 교류했다. 30대의 젊은 신학 교수 신부였던 라칭거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신학 전문 위원으로 신학적 이해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칼 바르트는 로마 가톨릭의 마리아 신학에 대해서 거부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유아세례에 대해서도 거부 의식이 있었다. 『교회교의학』 Ⅳ/4에서 “세례론”을 다루었다. 칼 바르트의 그리스도 삼중직(munus triplex) 순서는 제사장, 왕, 선지자이다. 칼빈의 삼중직 순서는 선지자, 제사장, 왕 순서이다. 바르트는 유아세례가 2세기 무렵 교부시대에 형성된 교회사의 산물로 보았다. 바르트는 콘스탄틴 황제 치하의 국가 교회에서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행해졌던 유아세례 전례가 종교개혁자들(신자 혹은 성인세례를 주장했던 16세기 급진적 종교개혁자들은 예외이지만)에게서 계속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한다(CD., Ⅳ/4, 164-175).

바르트는 고대교회의 결정을 계몽철학적 사관으로 보아 부족한 것으로 평가한다. 진리의 개념이 변화했다. 진리가 변한다는 진리정합설(Coherence theories of truth)이 등장했다. 진리정합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필자는 진리가변설로 제시한다. 진리가변설에 대응되는 것은 진리불변설이고, 진리대응설(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이다. 이러한 개념은 Mutatis mutandis(준용(準用), 변할 수 있고 변해야 됨)이다. 칼 바르트는 Mutatis mutandis 원리에서 신학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산물에서 변화가 되어야 할 당위성을 갖고 있고, 미래의 산물이 더 발전될 것이라는 변증법적 확신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톰 라이트에게서도 나타난다. 미래에 더 놀라운 지식 체계가 나올 것이라는 낭만적 생각이다. 그러나 미래의 일을 장담할 수 없다. 미래에 보다 더 좋은 것이 발견된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 사본이나 고고학적 발굴로 옛날에 믿었던 것을 증명하는 수준이지, 옛날 지식을 뒤집는 산물은 나오지 않는다. 나그함마디 문서(Nag Hammadi library, 1945년)가 나와서 신약신학 분야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경은 영지주의 사상으로 정경에서 배제된 위해(危害) 문서로 보아야 한다. 참고로 고대 영지주의와 현대 영지주의는 오히려 변화되어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다. 현대 영지주의는 힌두교와 융합하면서 일원론적 체계로 진행된다. 이원론적 영지주의는 간단하게 기독교와 대조되는 것으로 분별할 수 있는데. 일원론적 영지주의는 일신론 체계이고 총합적이기 때문에 쉽게 분별할 수 없다. 그런데 영지주의의 특징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결국 악도 선으로 평가하도록 관용을 주장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선과 악을 포용시켜, 지옥이 없는 세계관을 주창했다. 바르트는 사랑과 자유의 하나님의 일신론적 체계를 구축해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정통신학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으로의 불변성을 제언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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