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4-12-26 09:3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교회 기능은 신학이 아닌 복음이다


우리는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1의 첫 문장을 놓고 길게 이야기했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1 시작을 “1. 교회, 신학, 학문(KIRCHE, THEOLOGIE, WISSENSCHAFT)”으로 시작한다. “Dogmatik ist eine theologische Disziplin. Theologie ist aber eine Funktion der Kirche. 교의학은 한 신학적 훈련이다. 신학은 교회의 한 기능이다, Dogmatics is a theological discipline. But theology is a function of the Church”. 우리는 앞에서 교회의 기능을 신학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비평적으로 제시했다. 교회의 기능은 신학이 아니라, 예배와 복음전도, 교제와 봉사에 있다.
“신학적 훈련(eine theologische Disziplin)”, 바르트는 교의학을 신학적 훈련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의학을 신학적 훈련이라고 한 것은 어느 부분에서는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런데 신학적 훈련의 방향성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신학적 훈련, 교의학을 통해서 교의(Dogma)를 확립하려고 한다. 그런데 바르트는 신학적 훈련을 통해서 정통 교의(Dogma)를 재해석하여 해체시키고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교의학을 한 신학적 체계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방향성으로 가는 훈련으로 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방향성은 전혀 다르다. 신학하는 사람이 자기 신학의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는 것은 한 신학자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아브라함이 믿는 주님은 우리가 믿는 주님과 같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신학적 방향성의 일치는 신학함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내용보다 방향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바르트는 신학을 교회의 한 기능으로 규정한다. 바르트는 교회의 기능을 전혀 새롭게 규정했다. 우리는 바르트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것은 바르트 개인의 제언이기 때문이다. 반틸 박사(Cornelius Van Til, 1895-1987)는 바르트(1886-1968)의 전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틸 박사가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를 제창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틸 박사는 바르트의 어휘, 게쉬히테(Geschichte), 사가(saga) 등에 대해서 바르트에게 질문했고, 바르트는 아담의 역사적 실재성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반틸 박사는 바르트가 제언한 개념에 대해서 바르트에게 설명을 요구했는데, 바르트는 답변이 아니라 무시하는 자세를 취했다. 한종희 박사는 바르트가 모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는데, 필자는 바르트가 반틸 박사를 무시한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반틸 박사는 전제주의로 바르트 신학에 변증의 진(陣)을 쳤다. 미국 교회에서 반틸 박사의 뒤를 잇는 바르트 비평가가 없는 것은 우리 신학계에서 적지 않은 위험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박형룡 박사와 박윤선 박사 뒤를 이어 서철원 이후로 바르트에 대한 비평적 변호 연구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최근 문병호 교수가 바르트 비평 저술을 기획하고 있다고 강연에서 밝혔다. 박홍기는 “칼 바르트 화해론에 나타난 죄론 연구: 구조의 함의와 한계를 중심으로”, 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 박사논문(2021), 『개혁파 신학의 다양한 죄론 연구: 칼 바르트, 존 칼빈, 박용기를 중심으로』(서울: 진리의말씀사, 2022)를 출판했다.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바르트에 대해서 변증하는 모습이 있다.
“Die Kirche bekennt sich zu Gott, indem sie von Gott redet. 교회는 하나님에 관해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고백한다. The Church confesses God as it talks about God”. 바르트는 교회의 기능을 “신학, 교의학을 수행함”과 “하나님에 관해 말함”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의 기능을 예배(복음선포와 성례)로 보고 있다. 바르트 신학의 특징은 신학 처음부터 교회와 성례전과 신에 대해서 말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르트가 설교를 강조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바르트가 강조한 것은 복음선포(설교)가 아니라, 신에 대해서 말하는 행위 자체이다. 그 안에서 신의 자유를 통해서 만남, 계시가 되어지는(become) 사건의 구도이다. 즉 하나님에 대해서 말함(von Gott redet)을 설교로 볼 수 있지만,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복음선포로서 설교와 다른 의미이다. 개혁신학에서 설교는 규범성을 두지만, 바르트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함에서는 규범을 두지 않는다. 신은 인간의 행위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Das geschieht(geschehen 3인칭 단수 현재형, 일어난다, 벌어진다) einmal durch ihre Existenz im Handeln jedes einzelnen Glaubenden. 그것은(하나님을 고백하는 것) 첫째 개별적 신자의 행위에서 ihre(its) 실존을 통해서 일어난다. It does so first by its existence in the action of each individual believer”. 이 문장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명사(ihre, its)의 본 명사 연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순경은 “교회의(ihre) 실존”으로 번역했다. 필자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실존”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인칭대명사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로 연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고백이라는 행동을 개인이 하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고백하는 교회를 추구했다면, 슐라이어마허의 종교감정의 공동체에서 고백하는 다양한 소리의 유일성으로 연결할 수 있다. 필자가 its를 “하나님을 고백하는(bekennt sich zu Gott)”으로 연결시킨 것은 바르트는 교회 이전에 개별적 신자의 고백이 교회에 선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 이전에 어떤 믿음 고백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도의 고백 그의 가르침을 계승하기 때문이다.
Und das geschieht zweitens durch ihr besonderes Handeln als Gemeinschaft: in der Verkundigung durch Predigt und Sakraments-verwaltung(설교와 성례전 집례), in der Anbetung, im Unterricht, in der außeren und inneren Mission mit Einschluß der Liebestatigkeit unter den Schwachen, Kranken und Gefahrdeten. 바르트는 교회의 둘째 기능으로 공동체의 특수한 행위로 설교와 성례전, 예배, 교육, 약한 자 돌봄, 병든 자 돌봄, 외적 내적 선교 활동으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교회의 기능을 포괄적이고 다양하게 제시했다. 교회는 표지가 있고, 사도행전에서 제시한 교회의 모습이 있다. 교회의 첫째 행위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1의 첫 문장에서 교회의 기능에 대해서 나열하고 있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이 기존의 조직신학 체계와 전혀 다른 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바르트 후계자들은 기존의 조직신학의 틀을 이용한다. 열렬한 바르트 지지자 헨드리쿠스 베르코프(Hendrikus Berkhof. 1914-1995)의 『교의학 개론』(신경수 역, CH북스, 2008)이 한 예이다. 일반적으로 신학 체계는 ‘계시’에서 시작한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교의학자 헤리뜨 꼬르넬리스 베르까우어(Gerrit Cornelis Berkouwer, 1903-1996)는 18권의 교의학 시리즈(1949-1972)로 유명하고, 『은총의 승리』라는 저서로 바르트주의에 섰다. 칼 바르트가 베르까우어에 대해서는 많은 칭찬을 했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서철원이 공부할 때에 박사논문에 베르까우어와 베르코프가 지도에 참여했다. 베르까우어가 가장 열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들 이전에 네덜란드에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와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가 있었다. 바빙크와 카이퍼가 없는 네덜란드 교회는 즉각 칼 바르트 신학을 수용했고, 1948년 WCC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범했다. WCC 총회 주제를 칼 바르트(Karl Barth)와 다드(C. H. Dodd)가 작성했고, 바르트가 기조연설을 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로 완벽하게 체계화했다. 바르트를 용납하는 것은 유니테리언적 단일신론에 근거해서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는 것이다. 1971년에 인도 신학자 사마르타(Stanley Jedidiah Samartha, 1920– 2001)가 ‘종교 간의 대화’ 프로그램을 체계화했다. 종교다원주의의 첫 걸림돌은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자 신앙이다. 삼위일체 믿음이 없는 기독교는 일반종교보다 더 강력한 세속의 탐욕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낸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칼 바르트 신학 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