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6-03-31 17: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숄츠와 바르트,기독교 신학에서 교회 교의학으로


바르트는 하인리히 숄츠(Heinrich Scholz, 1884-1956)를 도입시켜 자기 논리를 변증하며 제시한다(GG., 44). 하인리히 숄츠는 1931년에 “신학의 과학적 성격에 대하여(Wie ist eine evangelische Theologie als Wissenschaft moglich?)”라는 글로 당대 칼 바르트(Karl Barth)와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1은 1931년에 출간되었다.

숄츠는 논리학자로 신학이 단순한 경건의 고백을 넘어 ‘학문(Wissenschaft)’으로서, 무모순성(Wider-spruchslosigkeit), 체계성(Systematik), 검증 가능성(Kontrollierbarkeit)을 주장했다. 바르트에게 많은 신학적 동료가 있었고 갈등이나 대조된 경우가 있다. 숄츠는 바르트와 대조를 이루었는데, 숄츠는 인문학적 기독교가 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고 바르트는 인문학적 기독교를 반대하면서 인문학적 교회를 제언한 것이다. 하인리히 숄츠는 ‘과학적 형식(axiomatic approach)’이고, 칼 바르트는 ‘학문적 훈련(scientific discipline)’으로 제시했다. 숄츠는 학문의 공리(axiom) 체계로 기독교가 가능하다고 제언했고, 바르트는 교회의 선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학문으로 훈련하는 과정으로 세웠다.

근대 학문이 종교를 다루는 방식 전체를 압축한다.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라이프니츠주의자, 칸트주의자는 상(Bild)이나 형태(Gestalt)가 가능한 것인데, 그리스도교도 하나의 사상 체계로 분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숄츠의 대답은 긍정적이다. 그는 그리스도교 역시 철학적 전통들처럼 하나의 “이미지(Bild)”로 구성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구성은 반드시 그 체계에 속하거나 그것을 믿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즉, 그리스도교는 인간 정신사 속에서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문화적 산물로서 충분히 객관화되고 서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칼 바르트는 숄츠의 견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시도가 “아름답고 유익한 가능성”이라고까지 인정한다. 실제로 그리스도교를 역사적, 문화적, 철학적 현상으로 연구하고 서술하는 작업은 충분히 의미 있으며, 학문적으로도 정당한 작업이다. 이 지점에서 바르트는 근대 학문의 방법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르트는 숄츠의 견해에 선을 그었다. “교의학에서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표현한 바르트의 문장은 교의학이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형태’로 구성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르트에게 교의학은 “신학적 훈련으로서 교회의 고유한, 하나님에 관한 말의 내용에 관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수행하는 학문적인 자체검토”(GG., 27)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전환이 발생한다. 숄츠가 다루는 그리스도교는 ‘형태(form)’이며, 인간이 구성할 수 있는 대상이다. 반면 바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교는 ‘내용(content)’이며, 인간이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응답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의학은 어떤 사상 체계를 설계하는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실제적인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책임적 발화이다. 이로써 바르트는 두 층위를 명확히 구분한다. 첫째, 그리스도교는 문화적, 역사적 현실로서 분석되고 구성될 수 있다. 둘째, 교의학은 그러한 구성의 차원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차원이다. 이 두 영역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바르트가 숄츠에게 변증하는 핵심은 비판이 아니라 경계 설정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교를 철학적 객체로 다루는 시도를 허용하면서도, 그것이 곧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거부한다. 교의학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주어지는 ‘내용’, 사건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숄츠를 통해서 신학과 철학, 계시와 문화, 믿음과 구성 사이의 경계를 그었다.

이러한 경계에 주요한 인물은 에밀 브루너(Emil Brunner, 1889-1966)도 있다. 브루너와 바르트(1886-1968)의 Nein 논쟁은 접촉점(Anknupfungspunkt)에 대한 논쟁이다.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며 ‘변증법적 신학’의 동지로 시작했으나, 1934년 브루너의 논문 『자연과 계시』에 대해서, 바르트가 『아니오!(Nein!)』로 대응하면서 결별했다. 브루너는 자연신학에서 접촉점의 가능성을 인정했고, 바르트는 자연신학에서 접촉점을 부정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브루너가 자연신학을 인정한 것은 맞고,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부정했다는 말은 절반의 유효성이 있다. 바르트는 자연에서도 하나님의 계시가 발생할 수 있는데, 명확하게 규범 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바르트가 접촉점을 부정했지만, 자연에서 계시 가능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 믿음을 규정하는데, “하나님과 인간의 실재적 마주 섬(des realen Gegenuber Gott und Mensch, the real encounter between God and man)”으로 했다(GG., 45). 칼빈에게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assensus)가 아니다. 칼빈은 믿음을 설명할 때 ‘경건(pietas)’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심이 결합된 상태이다. 바르트가 사용한 Eindrucklichkeit(감명성, 인상성)은 외부에서 인간에게 어떤 ‘상’이 전달되는 것이다. 바르트는 감명성(Eindrucklichkeit)의 문제를 버리고 하나님 앞 책임성(Verantwortung)으로 바꿨다. 바르트는 신과 인간의 마주 섬에서 어떤 조건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의 무조건성이 매력 있지만, 결국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신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할 수 없게 된다. 신의 침투를 주장하지 인간의 역할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바르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Er ist Offenbarung, gottmenschliche Wirklichkeit(계시이며, 신적인간의 현실성)”이다(GG., 45).

“모든 올바른 하나님 인식은 복종에서부터 탄생된다”(Calvin, Inst. I, 6, 2).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르트는 인식의 과정을 역전시킨다. 복종, 순종을 강조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순서에 따라서 같은 어휘여도 순서가 다르면 내용이 전혀 다르게 산출된다. 바르트는 순종을 강조하는데, 그리스도의 순종 요구(Christ’s claim to obedience)가 교회의 존재와 동일하다고 규정했다(GG., 45). “순종의 삶”이란 말은 매우 모호한 어휘이다.

바르트는 순종을 강조하면서 교의학으로 전개한다. 바르트는 교의학을 “그리스도교적으로 믿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전제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적으로 믿지 않는 우리의 운명이 우리에게 최후의 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늘의 음성에 불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presuppose). 바르트의 ‘전제’를 만나면 바르트의 전제를 거부한 반틸 박사의 전제주의에 귀착한다. 바르트의 전제는 사건적 전제이고, 반틸의 전제는 존재론적 전제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인식이나 마주 섬과 상관없이 스스로 계시는 객관적 실재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역전, 믿음 후 순종에서 순종 후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