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一生如一日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는 잘 알려져 있다. 하루가 3년과 같으니, 매우 지루하거나 몹시 애태우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에 비추어 보면, 위 제목은 아주 쉽다. 바로 일생이 하루와 같음이다. 인간으로서 자기의 일생을 정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로지 성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본 필자에게, 2023년 3월 초는 지난 50년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1973년 3월 초의 하루는 바로 영덕(盈德)의 강구(江口)로 이사 간 날이다. 이사 날은 바로 바다를 처음 보는 날이다. 그날은 50년이 지났지만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50년을 기념하여 며칠 전에 이사 갔던 날을 잡아 영덕을 다녀왔다. 이제 그 50년을 정리하지 못하면, 본 주제를 다루는 필자의 인생은 그야말로 무상(無常)이며 허무이다. 이 같은 절박한 심정이 아마 이 글을 적도록 또 정리하도록 떠밀고 있다. 시편(39편) 기자는 그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과 같음을 고백하였다. 이것에 대하여 인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부정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모든 인생은 죽음에 종노릇 한다. 죽음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생이 하루와 같다는 것은 성경말씀이다. 인간의 말이 아니고 주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바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이다. 이 진리를 두 가지로 나누어 조금 더 세밀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一日如千年
위 문구는 우리말보다 먼저 번역된 중국어(漢文)이다. 바로 베드로후서에 기록되어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물론 “주께는”이다. 이 의미를 시편 90편에서는 “주의 목전”으로 표현하였다. 두 가지는 동일한 의미이다. 시편에는 단지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로만 되어 있다. 하루가 천 년과 같다는 표현은 없다. 베드로후서에서 먼저 하루가 천 년과 같음을 밝혔다. 그다음에 천 년이 하루와 같다고 말한다. 이 순서에도 참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하루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은 바로 창세기에 근거하고 기초하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6일 창조에서, 하루는 지금의 하루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일여천년(一日如千年)에서 이 하루는 창조 시의 하루와 더 밀접하기 때문이다.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에서 하루는 천 년과 같다는 의미에 더 밀착되어 있다. 시편 90편에서 인간의 연수를 칠십으로 못 박고 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연수를 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에게 명령하신 것이다. 이 명령은 언약이며 작정이다. 인류의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여 있다. 인간 수명의 숫자가 70으로 된 것은 아마 인류의 평균수명에 근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강건하면 팔십까지다. 팔십이나 백까지도 모두 일일여천년에 녹아 있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100년 후에 2000만 정도로 예측되고 있다. 이 모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섭리해 오셨고, 모든 인류를 날아가게 하신다.
2) 千年如一日
一日如千年千年如一日. 이 열 글자는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이 열 글자에 2000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3년 전에 인류는 밀레니엄을 맛보았다. 이 밀레니엄의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과 관련되어, 시편은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그 가치를 부여하였다. 2000여 년 전에 오신 예수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그 증거들 중에 중요한 것은 지금도 그 주님을 기준으로 2023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90편에서의 천 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천년은 지나간 어제와 같다. 이 숫자의 전제로서 “주의 목전(주께는)”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2000년의 기간도 모두 주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인간 그 누구도 1초도 늦추거나 당길 수 없다. “지나간(pass) 어제”에서 참으로 신기한 것은 지나간 것에 있다. 지나간 것은 밤의 한순간이다. 아브라함은 예수보다 2000여 년 전에 이 땅에 왔다. 다윗은 1000여 년이다. 학수고대(鶴首苦待)할 때는 하루가 3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지나간 시간은 모두 점(點)과 같다. 50년이나 100년 그리고 1000년까지도 모두 하루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있을 천년왕국도 주께는 하루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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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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