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교회의 완전한 승리
성경의 언어 <96>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연결된 지체이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교회는 반드시 승리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40일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 주리셨다. 그때 시험하는 자 곧 마귀가 예수께 나아와 세 차례 도전하였다. 그때마다 예수께서 성경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쳐 승리하셨다. 또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세상에 오셨다가 다시 그분 아버지께로 가실 준비를 하시면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언하셨다(요16장). 이렇게 승리하신 원동력은 말씀이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부활을 통하여 강력한 승리를 확증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승리가 교회승리의 본질이며 핵심이다. 이 본질적인 승리가 교회의 완전한 승리이다. 교회의 완전한 승리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이 확증해주고 있는 교회의 승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부활은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할 때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4복음에서 각각 모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 그 뒤의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도 계속하여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오심은 창세기부터 말라기서까지 집중적으로 언약된 것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며, 이 오실 자를 위해서 선지 엘리야(세례요한)도 미리 예비 되었다(말4장). 첫 아담은 마귀의 유혹에 걸려 패배하였다. 이러한 과정적이고 부분적인 실패를 승화시켜 완전하고도 총체적으로 승리케 하시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언약하시어 이 땅에 보내셨다.
이러한 교회의 완전한 승리가 요한계시록에 집약되었다. 이 집약된 승리의 본질은 창세기로부터의 이해 없이는 도무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위의 제목이나 본 주제를 제시하는 중요한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이나 차원에서 교회의 온전한 승리를 주로 요한계시록을 참고로 삼아 두 가지로 제시한다.
1) 마지막 아담의 승리
마지막 아담은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에서 각각 시작하면서 강조하여 힘차게 제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시작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바로 몇 절 뒤에서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를 묘사하고 있다. 이 인자 같은 이는 교회의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데 주역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바로 부활하고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다. 여기서의 “인자”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관계되어 사용되었다. 이 인자라는 용어는 구약성경의 에스겔서에 자주 보인다. 이 인자는 첫 아담과 관계되어 다니엘서에서도 사용되어 결국 둘째 아담이신 예수로 연결된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 선지자이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참 제사장이시다. 참 선지자로서 일곱 교회에 완전한 승리를 약속해 주신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어린 양은 유다 지파의 사자로서 다윗의 뿌리이시다. 이 어린 양께서 일곱 인(印)을 떼신다. 이러한 장면은 모든 지상교회를 상징한 일곱 교회들의 완전하고도 온전한 승리이다. 어린 양 예수께서는 일찍이 죽임을 당하시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 교회의 주께서 승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영적으로 보면 소돔이며 애굽이다. 마지막 아담의 승리는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의 부활과 요한계시록 11장에 묘사된 두 선지자의 부활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 하나님의 아들의 승리
앞에서 언급한 금식 후의 승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매우 밀접하다. 그것은 마귀가 두 번이나 예수를 가리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칭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아이의 출생과 보좌로의 올려 감과 큰 용(龍)과의 승리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확실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이 장면을 창세기의 아담이나 금식 후의 승리 등과 완전히 분리시킨다면, 12장에 대한 온전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뒤에서 여자가 낳은 아들에 대해서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man)”라고 자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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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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