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화해자, 무한한 신성을 제공하는 존재양식을 가진 인간 예수
우리는 칼 바르트가 제시한 화해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기독교 신학에서 전무(前無)한 개념이라 제시했다. 바르트는 기독교 신학에서 전무한 개념은 후유(後有)로 만들었다. 바르트는 삼위일체는 전유무후(有前無後)로 만들고, 삼중일신은 전무후유(前無後有)로 세웠다. 삼위일체 개념을 부정하는 바르트에게 둘째 해당하는 화해자 신(神)은 ‘나사렛 예수’라고 했다. 나사렛 예수를 화해자 하나님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 11 아들 하나님, 1, 화해자로서 하나님(§. 11. Gott der Sohn, 1. Gott als Versöhner)에서 바르트는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화해자 하나님인지 제시한다.
바르트는 나사렛 예수를 계시중보자(Offenbarungsmittler)로 설정했다(KD., 419, CD., 399, GG., 512). 신학에서 중보자(Mediator) 개념은 기본이다. 중보자 개념이 없으면 기독교 신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독교 중보자 개념은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가 기본이다. 기독교 중보자는 중간 통로 개념이 전혀 아니다. 중보자는 알파와 오메가이다(계 1:8; 21:6; 22:13; 시 90:2; 사 44:6; 계 1:17,18; 2:8).
그런데 바르트는 중보자에서 계시중보자 개념을 창안했다. 서철원 박사는 창조중보자(the Creation-Mediator) 어휘를 사용했는데(The Creation-Mediatorship of Jesus Christ, 1982), 그때 중보자는 창조사역 실행자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계시중보자라는 어휘를 사용하는데, 실행자가 아니라 아버지가 영원한 일자라는 것을 인간에게 제공하는(wir haben seine Vaterschaft als eine ewige verstehen müssen) 한 존재양식(Seinsweise)이다(KD., 419, CD., 399, GG., 513).
바르트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된 것을 제시했다. 정통신학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실체로 예수 그리스도 신성을 이해한 방식을 거부하고 피조물로서 신성의 충만으로 신이 되는 구도를 제시하고 있다. 바르트의 저술에서 작은 글자는 이해할 수 없는 저서 집필 방법이다. KD., 420-422, CD., 400-402, GG., 513-516까지 긴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주 이름(Kyrios-Name)에 대해서 제시한다. 바르트는 예수를 주(主)라고 인정하며 규정을 세우고 있다. 바르트는 슈미트(Schmit)의 견해를 따라서 예수의 기적을 죄 사함을 주는 전권에 대해서 제시한다(GG., 514). 그런데 예수께서 자기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는 성경 내용은 생략시켰다. 대표 기적은 환자 치유, 죽은 자를 살리는 것과 함께, 물 위를 걷는 것과 말씀으로 폭풍을 잔잔케 하는 기적이다. 그것은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기적이었다.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 대해서는 생략하고, 오직 죄 사함을 주는 권능이 예수에게 있다고 규정했다. 그래서 예수를 통해서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는 중보자라는 개념을 확립했고, 그것을 주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die Gottheit Jesu Christi)이라고 말했다(KD., 422, CD., 402, GG., 516). 바르트는 아버지와 아들의 유일성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신성의 가능성을 제시한다(Man kann den neutestamentlichen Satz von der Einheit des Sohnes mit dem Vater, also der Gottheit Christi, KD., 422). 영역(英譯)에서 신성을 Deity로 번역했다. 우리는 divinity(divinitas, 신격)와 deity(deitas, 신성)을 잘 구분해야 함을 훈련하고 있다.
바르트의 저술에서 또다시 긴 분량의 작은 글자 부분이 나타난다(KD., 422-426, CD., 402-406, GG., 516-521). 이 부분에서 바르트는 자신은 에비온주의, 열광주의, 개인주의, 가현설(假現說, Docetism) 등의 오류를 거부함을 밝혔다. 그러나 예수를 갈릴리 랍비로 규정했고, 정치적인 메시아로 규정했다(GG., 517). 2세기 기독교가 에비온주의와 도케티즘을 거부했다. 즉 인간을 신격화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인격화와 관련이 없음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바르트는 에비온주의와 도케티즘 두 선이 교차하는 선상에서 게쉬히테와 초-게쉬히테의 변증법(die Dialektik von Geschichte und ÜberGeschichte, ÜberGeschichte und Geschichte)이 발생하는 것으로 제시했다(GG., 518). 바르트는 특이하게 두 개념을 거부하면서도, 두 개념의 변증법을 연출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이 4복음서에서 잘 표현된다고 제시했다. 인간이 하나님과 동일하다는(gleichgesetzt)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르트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때문에 동일하다는 개념을 세웠다.
바르트는 옛 교회(alten Kirche)가 가진 “주 예수(Jesus der Herr)” 이해를 거부했다. 바르트는 에비온주의와 도케티즘 두 이론을 거부하면서, 자기 이해(그리스도의 신성 명제)를 확증시켰다. 그러나 두 이단적 이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신학의 견해를 거부한 것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을 계시할 자는 하나님이라고 규정하며, 인간의 고양이나 하강 개념은 불가능하다고 규정했다(GG., 521). 피조물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을 계시할 수 없는데, 하나님을 계시했다면 하나님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한 계시중보자로서 신성의 동질성(der Gottheit Wesensgleichen)을 주장했는데, 바르트는 아버지 자기 아버지라고 고백하면 신성의 동질성을 갖는 것으로 주장한 것이다. ※박순경은 “동일본질”이라고 번역했는데 오역이다(GG., 522).
바르트는 기독교 신학 명제 finitum non capax ininfiniti가 지양되는 기적이 발생한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Homo peccator non capax verbi divini(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도 거부했다. 이러한 길을 낸 사람, 화해자가 아들 나사렛 예수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그것을 가능성(Möblichkeit)으로 제시했다(GG., 524). 바르트의 글을 그대로 보면 죄인인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과 화해를 계시해주었고, 그 가능성이 현실화되게 하는 일은 영(靈) 신(神, Gott der heiligen Geist)이 하게 된다. 바르트는 화해 사건을 이해할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사실(das Faktum)이라고 규정했다(GG., 526). 화해의 기적은 화해의 능력,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인식하게 한다.
바르트에게 예수는 창조자, 아버지를 알 수 있도록 한 창조자이다. 즉 예수는 창조자이지만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바르트는 창조자 안에서 화해자를 인식하는 구도를 제안했다(GG., 529).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지식이 이루어지는 것을 제언하고 있다.
바르트는 창조자와 화해자의 종속관계를 명확하게 제시했다(GG., 530). 그리고 바르트는 화해자가 죽은 자를 일으킨다고 제시했다. 그래서 창조자에게 생명을, 화해자에게 생명을 받게 된다고 제시했다. 그 기적, 생명을 받는 것은 아버지, 아들의 존재양식에 무한하고 참된 신성이 있는 것으로 제언했다(GG., 531). 비록 바르트가 화해자가 무한한 신성, 생명을 공급한다고 단정했는데, 그 근거는 바르트 자신에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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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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