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탄절의 기적(3) 동정녀 탄생 언어 사건의 능력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2, § 15. 계시의 비밀(Das Geheimnis der Offenbarung) 2. Wahrer Gott und wahrer Mensch “참 사람과 참 사람”이다. 3. 성탄절의 기적이다. 바르트는 성탄절의 비밀(Geheimnis)과 성탄절의 기적(Wunder) 구조에서 자기 논리를 전개한다.
바르트는 정통 교리를 불완전한 이해의 산물로 평가한다. 그래서 『교회교의학』 I/1 시작에서, 모든 교회 고백(성경에 대한 이해와 교리 문장)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으로서 교의학(Dogmatik)을 규정하면서 진행하였다. 바르트는 가룟 유다의 정죄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장을 피력하였다. 과거 결정에 대한 회의적인 경향이 이 부분에서 등장한다. Unser Dogma bezeihnet das Geheimnis der Offenbarung(우리의 교리는 계시의 비밀을 표현한다, KD., 195. GG., 229). 바르트는 “계시의 비밀”, “교리의 비밀”을 사용한다. 계시의 비밀로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 그리고 성탄절의 비밀에서 성탄절의 기적으로 자기 이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바르트는 모든 자기 이해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특징이 있다.
바르트는 교리가 계시의 비밀을 표현하는 방식이고, 비밀이 밝혀질 때가 있고, 자기가 그 비밀을 밝히고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처녀가 잉태함이 계시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루터가 동정녀 탄생을 표징 혹은 기적(Zeichen oder Wunder: sign and miracle)이라고 표현한 것을 반복한다고 밝히고 있다.
바르트는 동정녀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신적인 기원에 대한 지식이 비밀에 묶여 있다고 평가하고, 자기가 그 비밀을 해소하겠다고 진행하고 있다. 성경에서도 동정녀 탄생은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비밀로서 형식은 어떤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바르트가 동정녀 탄생의 비밀을 해소할 공식은 부활 공식(빈 무덤의 증거)이다. 마치 바르트가 부활을 믿는 것처럼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바르트는 자유주의식 부활 이해는 취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진영에서 이해한 부활은 제자들이 이해하고 확립한 가치 평가로서 부활이었다. 바르트가 이해한 부활은 단순한 언어 사건으로서의 부활로 이해할 수 있다. 현존하는 교회에서 발화되는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는 부활절 소식(언어 사건)에서 부활이라는 특수한 내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두 신학자(아마도 마태와 누가)가 동정녀 탄생의 비밀을 표현하였지만, 두 번째 신학자는 계시 안에서, 화해 안에서 신의 무한한 은폐와 인간의 경이에서 승인하고 고백하는 것으로 제시하였다(GG., 230-231). 바르트는 네 신학자들이 동정녀 탄생을 말하고 있다고 밝히는데, 부활 사건처럼 “소식의 특수한 내용”에서 발생한다는 구도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해 방식에서 슐라이어마허의 이해, (1) 남성적인 개입 없는 탄생은 구원자의 고유한 특징적 가치와 관계가 없다. (2) “창조적 활동의 기적에 대한 표현”으로 충분하다고 밝히고 있다(GG., 231).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를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지만, 바르트는 철저하게 슐라이어마허의 지식에 풍성한 각주를 달고 있는 것이다.
바르트는 계시의 비밀, 성탄절의 기적 등의 어휘를 교차로 사용하기 때문에 빠르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바르트는 먼저 피조물이 비밀을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개방하였다(GG., 233). 이러한 주장(피조물의 유한성)이 타당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교리의 확실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악용되는 것은 부당하다. 피조물의 유한성은 사실이며 겸손을 위한 지식이지, 교리를 부정하는 방편은 부당하다. 교리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성탄절의 비밀이 성탄절의 기적으로 진행한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교회가 성탄절의 비밀을 오해한 흔적들을 수정하며 재확립할 것이라고 밝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르트의 개인 견해를 인준하고 채용하는 것은 채용하는 사람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교회의 사역자는 교회가 공인한 신학에 근거해야 한다. 성경(Bible), 교리(Dogma) 그리고 16세기 이후의 신앙고백서(Confession)의 일관성을 파악하고 검토해야 한다. 바르트는 이러한 역사적 신학(Reformed)이 아닌 자기 체계(칸트적 사고 체계와 신비주의 신학)에 근거해서 교회 신학을 재설정(Reset and Renewal)하고 있다. ※ Renewal을 ‘갱신(更新)’으로 번역한다. 이 의미는 “어떤 기간의 종료”이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개혁(Reformed)은 종료라는 의미보다(1세기, 교부신학) 회복(restitution, restoration) 개념이 있다. 미국에서 형성된 환원 신학(Restoration Theology)은 과격하게 1세기 기독교로 복귀를 주장하지만, 개혁교회는 역사적 흔적을 소유하면서 회복과 개혁을 주장한다. 바르트(현대신학)는 현재 관점에서 과거를 재검토(수정)하여 미래로 가는 것을 추구한다.
바르트는 동정녀 탄생을 부활의 증거의 기적(빈 무덤의 기적)과 병행시킨다(GG., 233). 바르트가 부활의 비밀이 아닌 부활의 기적을 사용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바르트는 계시의 비밀을 확정하고 계시의 기적에 대해서 제시하지 않는다. 아마도 바르트는 계시의 기적을 계시의 삼중성과 성령-구속자(교회교의학 I/1, 2장, § 8 - § 24)에서 밝히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 15는 “계시의 비밀”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의 비밀을 동정녀 탄생으로 제시하면서, 계시의 기적을 성탄절의 기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성탄절, 성령으로 말미암은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매우 정교한 메커니즘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동정녀 탄생에 있는 계시의 비밀을 폭로하여 기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바르트가 부활, 빈 무덤을 드러난 계시로 이해한 것은 특이한 일이다. 바르트는 예수의 빈 무덤을 보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의 빈 무덤을 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빈 무덤이 있다고 확증하는 것은 이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였다”는 것과 “오늘 구세주가 나셨다”는 언어를 병행시킨다. 그 사건에 대한 비밀의 언어가 “동정녀 탄생”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바르트가 빈 무덤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바르트는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에 대해서 의문을 밝혔다(GG., 233). “빈 무덤”과 “죽은 자로부터 부활”은 정확하게 일치된 것이 아니다. 바르트는 부활과 빈 무덤으로만 연결시킨다. 그리고 바르트는 부르너의 견해를 따라서 동정녀 탄생에서 생물학적 진술이 아니라고 밝힌다(GG., 235). 그럼에도 바르트는 부르너와 다르게 “동정녀 탄생”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한다.
비밀과 기적 관계로 연결하면서 논리를 전개한다. 표징과 비밀(sign and mystery)의 관계에서 기적의 형식이 발생한다. 바르트는 교리가 인식될 수 있도록 체계화하였다. 필자는 교리는 이해를 목적으로 작성되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고백한 문장이라고 제시한다.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전환되면 그리스도의 영광은 훼손이 아니라 소멸되며 거부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할 수 있다. 그러나 바르트는 신의 유일한 절대성과 자유성을 강조할 뿐이다. 모든 것이 그 신의 종들이다. 성경으로 바르트의 신에 귀착된다면 교회를 설립하신 주 예수께 이르지 못할 것이다. 주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듣고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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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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