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상반된 두 종류의 손
성경 66권은 참으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조직되었다. 그중에서도 시편(詩篇)은 그 명칭 자체로도 그 치밀한 조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편 150편 전체의 내용 구도나 의미적 조직(박용기, 『성경개론』 참조)은 방대한 가운데서도 아주 논리적이다. 시편의 각각의 한 수(首)를 두고서도 편이라고 한다. 그 각각의 편들은 그 자체로 모두 논리적이며 체계적이다. 그것은 사용되는 용어나 문장으로 입증된다. 시편뿐만 아니라 성경 66권 모두는 각 권의 흐름 속의 주제를 따라 용어나 문구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는 손(hand)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 손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1,000회 이상으로 사용되어 비교적 중요한 것이다. 그중에서 거의 90% 정도는 구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구약성경 중에서도 60% 이상이 섭리를 통한 언약인 역사서에 나온다. 그것은 이 손이 지니는 의미가 찬양의 내용이나 예언의 내용보다 섭리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또 선지서에는 시가서보다 두 배 이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선지서 중에서도 90% 정도는 대선지서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이 손이 가진 기능이나 의미가 대선지서들의 주제와 아주 밀접하기 때문이다. 때리고 싸매심과 뽑고 심으심 등이 바로 대선지서들의 주제이다. 신약성경에서는 4복음서와 그 뒷부분의 사용이 거의 비슷하다.
위와 연계하여 하나님의 손을 의미하는 전능한 손과 인간의 손을 가리키는 무능한 손으로 대조시켜 두 가지로 간단히 분석해 본다. 전능한 손은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손이며 무능한 손은 보이는 상대적인 손이다.
1) 전능한 손
전능한 손은 성경에만 나온다. 바로 여호와의 손이며 주(主)의 손이다. 이 전능자의 손은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49장)에서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로서 근원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출애굽 당시에 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의 손은 모세를 통하여 강하게 드러났다. 여호와께서 땅을 정복하는 내용인 사사기까지에서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을 때에 이방인의 손에 자주 붙였다. 이방인의 손에 붙이는 근본은 바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참으로 강한 손이다. 반대로, 강하게 보이는 이방 대적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는 힘도 여호와의 손이다.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 그 유명한 다윗 손의 물매를 조종하여 골리앗을 명중시킨 일 속에서 어찌 여호와의 손을 부정할 수 있을까? 시가서 중에서 욥기의 시작 부분에서 주의 손 곧 여호와의 손이 욥을 사단에게 붙였다. 또 시편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손을 펴서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심을 다양하게 노래한다. 또 다니엘서 5장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적은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 손가락의 근원이 바로 참으로 강하고 영광스러운 여호와의 손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냄으로 하나님의 나랏일을 하셨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주를 힘입어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사들의 손들도 그 의미를 추적해 보면, 그 근본에 부활하여 승천하신 전능하신 어린양의 손이 자리 잡고 있다.
2) 무능한 손
이 무능한 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견주어 볼 때 거기로부터 주어지는 인간들의 손이다. 모세가 손을 들어 많은 기적이 일어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성경의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다. 이 목적과 주제에 철저하지 못하면, 모세의 손을 빙자(憑藉)하여 명하신 여호와의 명령이나 기적 등을 지금에서도 따라 하면 되는 줄로 착각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바벨탑 사건에서 인간의 전적인 무능을 입증시켰다. 또 애굽의 종살이 400년과 광야 생활 40년을 통하여 인간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증명하셨다. 욥기를 통해서도 전능자 안에서 인간의 무능이 철저하게 증거되고 있다. 손이 묶인 채로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가도 그대로 대적을 상대하여 벗어날 수 없었다. 70년이 차도록! 구약성경에서 인간들의 손을 통하여 이루어진 대단한 일들에 대한 해석은 중요하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특히 사도들을 통하여 행하여진 기적 같은 일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손을 드는 행위 자체로 큰 힘을 입는다고 생각하기 쉬운 시대에, 이런 점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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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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