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말씀의 근원: 단회로 신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Saga)
바르트의 사상 구도는 삼중적(Trias Theory)이라고 한다. 바르트의 삼중 구조는 개혁 신학과 명백하게 다르다. 개혁 신학은 믿음의 대상에 관한 지식을 추구하고, 그 지식에 근거해서 인간과 공동체 회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인간이 수용하는 지식을 추구하고, 그 지식은 신비의 산물이 된다. 그래서 바르트의 사상은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으로 분류한다. 바르트가 불가지론이 아니라는 발티안들이 있다(참고. 최종호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읽기>(새창미디어, 2014)). 그러나 바르트는 신 존재를 긍정하지 않고 행동만 주장하기 때문에 불가지론으로 분류해야 한다. 이신건은 바르트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근거로 불가지론이 아니라고 했다(“다시 바르트에게 듣는다”, 2006). 그러나 바르트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발생하는 경험이고 주관성이지 절대적 보편성을 가질 수 없는 지식이다. 결국 상대적 지식으로 불가지론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바르트가 “칸트처럼 신존재는 알 수 없음으로 규정하고, 신지식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으로 발생하는 구도를 세운다”라고 판단한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중적으로 구성하고, 신관도 삼중적으로 이해한다. 바르트의 신학에서 ‘삼중’을 반복한다. 칼빈은 삼위일체를 논하면서 삼중적(threefold) 이해를 부정했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2절).
바르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Wort Gottes)을 삼중적 형태(dreifachen Gestalt)로 이해한다(교회교의학 I/1., § 4) 바르트는 ‘하나님에 관한 말’(Rede von Gott, 교회교의학 I/1., § 1)에서 ‘하나님의 말씀’까지 구조를 발전시켰다. ‘하나님의 관한 말’을 하는 ‘인간 행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인식하는 행위’까지 온 것이다. 바르트 신학의 시작은 교회에서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인간의 행위이다. 신학의 마지막(교회교의학 V)은 미완성이지만, '성령'으로 마감하려고 했다. 바르트의 마지막 저술은 강연록인 <하나님의 인간성>(Die Menschlichkeit Gottes, 1959년) 그리고 1967년 <교회교의학 IV/4>(세례론)이다.
바르트는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삼중적 형태’라고 전제(Voraussetzung)했다. 이 삼중 형태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Das geschriebene Wort Gottes),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offenbarte Wort Gottes)이다.
바르트에게 ‘하나님의 말씀(Wort Gottes)’과 ‘하나님의 계시(Gottes Offenbarung)’는 같지 않다. 영역에서는 전자는 of를 사용했고(the Word of God), 후자는 소유격(God's revelation)으로 번역했다. 명확한 의미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Wort Gottes)’과 ‘하나님이 행했던 계시(Gottes Offenbarung)’로 제시할 수 있다. ‘계시’는 단회적이지만 ‘말씀’은 연속한다. ‘말씀’은 일회성이고, 다른 ‘말씀’으로 계속 발생한다. 기록된 성경은 문자로 보존되어 있다. 기록된 문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계시를 경험한 선지자와 사도의 ‘기록물’이다. 바르트에게 계시 기록 문서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 교회에서 행하는 선포에서 시작해서, 근원으로 올라간다. 현재 행위는 과거와 관련하고 미래로 간다. 과거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경험한 사건은 근원적이고 단회적이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선포했고 기록했다. 바르트는 선지자와 사도의 문서를 bezeugt(attest, 영역)으로 제시했다. 박순경 교수는 ‘말해졌다’로 김재진 교수는 ‘증언되고 있다’고 번역했다. 바르트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사건에 대한 증언 기록물일 뿐이다. 선지자와 사도의 경험은 지금도 동일하게 반복될 수 있다. 동시성의 원리(Gleichzeitigkeit, simultaneity)이다. 이러한 구도를 ‘계시연속주의(Continuous revelation)’라고 평가하고 있다. 위키백과에서 계시연속주의를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 퀘이커, 오순절과 은사주의, 말일성도, 이슬람 등으로 제시한다.
바르트의 제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바르트는 삼중 어휘를 과거형으로 기록했는데, 선지자나 사도들이 과거에 선포한 행위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선지자와 사도를 존경한다면 그들이 행한 선포에 ‘계시적 권위’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선지자와 사도의 선포를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시킨 것이다(불가지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수준이 동일하게 둔 것이다. 성경 독자는 기록되지 않은 선지자나 사도들의 언행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지 않아야 한다(요 21:25). 알 수 없는 소리의 존재는 명료한 지식을 제공하는 계시 기능과 부합하지 않는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데, 바르트는 ‘기록된’ 문서이고, ‘영감’과는 큰 의미가 없다. 바르트는 기록자가 계시를 경험한 충격을 근거로 선포하고 기록한 ‘팩트(fact)’를 학문성(인간이 인지하는)으로 강조한다. 성경은 팩트보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도들의 영생 양식의 유일한 근원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단회적인 행동을 계시의 근원으로 보고, 그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모든 현상을 계시로 본 것이다. 바르트에게 시간은 항상 동일한 시간이다. 바르트에게 영원은 시간이 아닌 피안이 아니다. 바르트가 말하는 영원은 과거, 현재, 미래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상호 내적으로 통합되는 사건이다. 시간에 대해서는 교회교의학 II권에서 더 자세하게 논한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시작에서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관해서 말함(언설)의 근원지에 대해서 밝힌다. 그것은 선지자와 사도들이 계시 경험을 했고, 당시에 선포했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발생했고 발생하고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바르트가 구축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현존’은 상대적으로 발생하는 독특한 사건이다. 매임이 없는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도구로 원하는 때에 말씀하실 수 있다. 바르트는 인간 이성으로 기독교 기원을 밝히려 했던 자유주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재에서 과거, 미래를 융합시키는 현대신학을 열고 있다. 계시연속주의는 모든 종교가 지향하기 때문에 종교통합에 적합한 소재이다. 신을 경험하면 경험자로서 신경험에 대해서 말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발생했고 발생하고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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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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