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경건부터 경외까지
경건회는 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경건(敬虔)의 의미에서 증명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생활에서 경건회는 실제로 행하여지고 있다. 경건의 실제는 비교적 쉽게 다가온다. 이 실제의 근거인 이론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경건의 의미가 전체적으로 또 통계적으로 쉽게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경건은 경외와 긴밀히 연결되고 연계되어 있다. 경건과 경외를 연계하여 포괄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는 이것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데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경건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를 제시하여 강조해 본다. 그다음에 경외는 “내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신 4:10)를 내세워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세상에 사는 목적이 여호와 경외함을 배우는 데 있다. 이런 역사관과 인간관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이제 경건을 먼저 살펴서 여호와 경외하는 문제에 접근해 가고자 한다. “경건(하다)”은 신약성경에서 많이 나타나고, “경외(하다)”는 대부분 구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경건과 경외를 함께 볼 때, 체언형과 용언형을 염두에 두는 것이 유익하다.
1) 신약성경 중심의 경건
“경건”은 4복음서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사도행전 3장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6절)이다. 이것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라고 경계하는 것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것은 이 경건들이 권능이나 능력과 결부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마지막인 말라기서에서는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말 2:15)라고 하여, 경건은 이미 영(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창세기에 근거를 두고 출발하여 말라기서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여기에서 경건한 자손은 복음의 핵심적인 근거이며 기초다. 로마서는 시작되면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2~4)로 강조되고 있다. 육신은 영과 함께 분석되었다. 이것에 기초하여 디모데전서에서도 “경건의 비밀”은 육신과 영으로 함께 대비되어 확인되고 있다.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것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경건의 알맹이는 바로 “성결의 영 spirit”이다.
2) 구약성경 중심의 경외
경외는 명사형으로 구약성경에서 오직 한 번만 사용되고 있다. 바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2)이다. 이 외에 구약성경에서 “경외하다”와 같이 용언형으로 전부 사용되고 있다. 말라기서에서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 하였으며”(말 2:5)라고 하여, 언약은 경외에 결부되었다. 바로 언약의 목적이 여호와를 경외함이다. 경외는 결과나 목적에 해당되고, 경건은 경외에 이르는 과정이나 논리다. 이삭을 바치려고 하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라고 확증하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인생의 보배이며, 생명의 근거다. 경건부터 경외까지는 바로 생명이며 찬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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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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