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기독교 신앙의 원형
3. 신학적 치유의 방향
2) 성경적 신학정립에 의한 신앙의 정체성 확인
(2) 신앙의 정체성 확립 -신앙의 원형 찾기-
신앙 성장, 언약성취 과정에서의 하나님 선물
위에서 밝힌 대로 기독교 신앙은 인간편의 노력이나 열심의 산물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성취사역의 결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은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성령의 사역에 의해 알아감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맹목적인 것이 결코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입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 신앙의 성장 과정을 좀 더 이해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하나님이 성도들을 이 땅에 두신 근본적인 섭리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성도의 신앙 성장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며 그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여 진행하는가?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대로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본질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있어 보인다. 즉 신앙을 인간적 열심이나 노력의 산물이거나 혹은 외현적인 행위의 수준에서 이해하는 경우이다. 이처럼 신앙을 그러한 그릇된 방향으로 설정해 놓게 되면 세월이 지나갈수록 신앙의 진미를 맛보지 못하고 평생 마음의 복된 열매를 얻지 못한 채 헛바퀴 도는 신앙의 삶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시 말해 진정한 신앙의 성장을 맛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한 연후에도 이 땅에 두신 이유는 신앙의 성장을 위한 일이다. 신앙이란 한마디로 하나님을 알아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는 일이다. 이것이 인생의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의미의 신앙은 바른 진리의 깨달음과 더불어 한평생의 삶의 경륜을 거치면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어린 자녀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철이 들고 폭넓은 안목을 지닌 인생으로 성장하듯이, 우리의 신앙은 점차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이는 한평생 죽는 날까지 신앙생활을 하게 될 모든 성도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열조와 언약을 맺어 자기 백성으로 삼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다. 그런 연후에 열흘길이면 갈 수 있는 광야 길을 사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치게 하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식 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려갈 수가 있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으며 우리 성도의 신앙의 본질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하나님은 택한 성도들로 하여금 삶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전능자시요, 그들을 깊이 사랑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임을 배워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들의 편에서 보자면 부단한 신앙 성장의 과정인 셈이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광야는 척박한 환경이며 대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땅이다. 하나님은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으시고 자기 백성들을 그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 이유를 신명기 말씀은 다음과 같이 실감 나게 서술하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는 그들의 높아진 어리석음을 낮추시고 그 마음을 테스트하여 단련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 신약 성도의 삶의 과정에서도 터득되는 신앙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신약의 성도들도 이 땅에서 먹고 마시며 돈 벌고 가정을 영위하는 일, 더 나아가서 교회 생활까지도 광야같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의 내용들인데 그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힘으로만 살아감을 알게, 즉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려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앙이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의 중핵적 목적을 차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불행하게도 신앙이 너무도 도구화되어 있다. 신앙을 통해 인간의 행복을, 신앙을 통해 사회정의를, 신앙을 통해 외적 교회 성장을 기해보겠다는 시도가 한국교회 대부분의 정서이며 신앙의 내용을 이루는 듯하다. 이는 완전히 주객전도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인간이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이란 미명아래 이루어지는 철저한 세속주의적 유혹이며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의 능력만을 사모하게 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삶의 내용을 허락하시고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앙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모든 삶의 내용이 허락되는 것이다. 이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하나님은 바울을 부르시고 평생 그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복된 길을 가게 하셨다. 많은 시련과 연단의 세월을 거치며 옥중에까지 투옥당하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그런 삶의 시련 과정을 통해 너무도 소중한 신앙의 성장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육신적 삶은 많은 연단의 세월을 보내었지만, 하나님을 배우고 의지하는 신앙의 놀라운 신비와 복됨을 누리고 경험했던 바울은 행복하였고 당당했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도 바울과 같이 삶의 경륜과 시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신앙의 성장이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우리 삶의 목적이자 놀라운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의 목적 즉 삶의 보배 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해갔던 바울의 당당하고 행복한 고백을 들어보기로 하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규욱 목사 (장안중앙교회) |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
여호와의 영원성 찬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