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여호와의 영원성 찬양
제2절 여호와의 영원한 행사
(전 8:∼12:)
1.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
(8:∼10:)
2) 지혜로운 자의 유익 (9:13~10:)
10:16~20 화가 있는 나라와 복 있는 나라에 관한 교훈을 노래함
16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 17 왕은 귀족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려 함이 아니라 기력을 보하려고 마땅한 때에 먹는 이 나라여 복이 있도다 18 게으른즉 석가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즉 집이 새느니라 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으로 화가 있는 나라와 복 있는 나라에 관한 교훈에 대하여 노래하도록 섭리하시는 내용이다.
16~17절은 솔로몬이 화가 있는 나라와 복이 있는 나라의 상태에 대하여 노래하는 내용이다. 솔로몬은 왕이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나라는 화가 있다고 노래했다. 여기서 “어리고”라는 말은 히브리 원문으로 ‘나아르’라고 하는데, 이는 ‘아이’라는 뜻도 있으나 ‘종’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따라서 “왕이 어리고”라는 말은 ‘세마레케크 나아르’라고 하는데, 이는 문맥상 ‘종이 왕이 되는’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화가 있는 나라의 상태에 대하여, 종이 왕이 되고 나라 일을 맡은 대신들이 아침부터 먹고 마시며 즐기기나 한다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를 떠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아 그 신복에게 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가운데 한 지파는 다윗과 예루살렘을 위하여 솔로몬의 아들에게 주실 것을 예고해주신 바가 있다(왕상 11:9~13).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솔로몬이 의중에 두고 자기 신복인 종이 왕이 되는 나라가 화가 있다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다. 실제로 솔로몬 왕의 신복 여로보암이 백성을 이끌고 나가서 세운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화를 받아야 하는 나라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여호와의 언약대로 세워진 다윗 왕가를 배반하고 나가서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종이 왕이 되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나라는 화가 있다고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왕은 귀족의 아들이며 대신들은 취하려 함이 아니라 기력을 보(補)하려고 마땅한 때에 먹는 나라는 복이 있다고 노래했다. 여기서 “귀족의 아들”은 권세 있는 왕족의 자손으로서, 다윗 왕가의 위를 계승하여 왕위에 오른 자손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다윗 왕가가 여호와의 언약에 의해 세워진 왕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다윗 왕가를 계승하여 위에 오른 왕이 다스리는 남쪽 유다 왕국에서는 대신들도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고 기력을 얻기 위해 적당한 때에 먹으므로 복이 있다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다. 실제로 남쪽 유다 왕국은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복이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솔로몬이 노래한 것이다. 이렇게 솔로몬은 화가 있는 나라와 복이 있는 나라의 상태에 대하여 노래했다.
18~19절은 솔로몬이 화가 있는 나라 왕의 태만함과 부패한 생활에 대하여 노래하는 내용이다. 솔로몬은 화가 있는 나라 왕의 태만함을 예를 들어 노래했다. 곧 게으르므로 석가래가 퇴락(頹落)하고 손이 풀어지므로 집이 샌다고 노래했다. 다시 말하면, 왕이 게으르므로 나라가 쇠퇴해서 무너진다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화가 있는 나라 왕의 부패한 생활에 대하여 노래했다. 곧 잔치는 희락을 위해 베풀고, 포도주는 육체의 흥을 돋구려고 마시며, 돈은 부패한 생활을 위해 사용한다는 뜻으로 노래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우매한 왕은 자기 육체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가므로 화가 그 나라에 미치게 된다. 이는 북쪽 이스라엘 왕들이 자기의 쾌락을 위해 부패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을 예견하면서, 솔로몬이 예언으로 노래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솔로몬은 화가 있는 나라 왕의 태만함과 부패한 생활에 대하여 노래했다.
20절은 솔로몬이 부패한 왕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유에 대하여 노래하는 내용이다. 솔로몬은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寢房)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면서,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노래했다. 여기서 “부자”는 부패한 왕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곧 “왕”과 “부자”는 동일인물로서, 저주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시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한 것이다. 솔로몬은 비록 아무리 부패한 왕이라 할지라도 마음속으로나 아내와 단 둘이 있는 잠자리에서라도 저주하지 말라고 노래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부패한 북쪽 이스라엘 왕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작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저주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그 왕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작정되어 있다. 그런데 공연히 그들에게 저주하는 말을 한다면, 그들이 듣고 싸움만 일으킬 염려가 있기 때문에 저주하지 말라는 뜻에서 노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솔로몬은 부패한 왕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유에 대하여 노래했다.
이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으로 화가 있는 나라와 복 있는 나라에 관한 교훈에 대하여 노래하도록 섭리하신 내용이다. 솔로몬은 화가 있는 나라와 복이 있는 나라의 상태에 대하여 노래하면서, 화가 있는 나라 왕의 태만함과 부패한 생활을 노래했다. 그리고 부패한 왕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유에 대하여 노래했다. 이러한 솔로몬의 노래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를 잘 되게 하시는 여호와의 영원한 행사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곧 창세 전에 작정하신 뜻에 의해 만사를 정하신 때를 따라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잘 되게 하시는 영원한 행사를 노래하는 것으로서, 나아가서는 경외하는 자를 영원히 형통케 하시는 여호와의 영원성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의 유익함에 대하여 노래하도록 섭리하신 내용을 살펴보았다. 솔로몬은 지혜가 우매자의 호령이나 병기보다 나은 사실을 노래하면서, 지혜자와 우매자의 차이점과 주권자의 허물에 대하여 노래했다. 그리고 우매함은 해를 받으나 지혜는 성공에 유익함에 대하여 노래하면서, 지혜자와 우매자의 말과 수고의 결과에 대하여 노래했다. 그리고 화가 있는 나라와 복이 있는 나라에 관한 교훈에 대하여 노래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의 유익함에 대하여 노래하도록 섭리하신 것은, 여호와 경외하는 지혜자를 잘 되게 하시는 여호와의 영원한 행사를 찬양케 하신 것이다. 이러한 노래는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언약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지혜자를 형통케 하시는 섭리는 장차 오실 메시야로 형통케 하실 섭리의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이와 같은 여호와의 영원한 행사에 대한 솔로몬의 찬양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한 행사를 이루시려고 언약의 말씀대로 메시야를 보내어 주실 섭리에 대한 예언적 성격을 지닌 언약계시이다.(계 5:12)
전도서 8~10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잘 되게 하시는 사실에 대한 노래를 통해 여호와의 영원성을 찬양하도록 섭리하시는 내용으로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형통함과 지혜로운 자가 유익한 사실에 대해 노래한 사실임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자를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노래하도록 섭리하신 것은, 여호와의 영원한 행사에 대한 노래를 통하여 여호와의 영원성을 찬양하게 하신 것이다. 이러한 솔로몬의 찬양은 솔로몬 당대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솔로몬 당대와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를 나타내시는 것으로서, 그 모든 역사적 사건은 헛되어 무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행사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듯 여호와 경외하는 지혜자를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역시, 장차 오실 하나님의 지혜이신 메시야로 잘 되게 하실 섭리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지혜자를 잘 되게 하실 섭리는 장차 오실 하나님의 지혜이신 메시야로 잘 되게 하실 섭리의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실체를 배제한 그림자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뜻에서 솔로몬은 여호와 경외하는 지혜자를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노래한 것이다. 곧 여호와의 영원성에 대하여 찬양하려는 뜻에서 여호와 경외하는 지혜자를 잘 되게 하시는 여호와의 영원한 행사를 노래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여호와의 영원성에 대한 솔로몬의 찬양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한 행사를 이루시려고 언약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지혜이신 메시야를 보내어 주실 섭리에 대한 예언적 성격을 지닌 언약계시이다.(계 5:12)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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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명예총장) |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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