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하나님의 의의 기초
제1절 칭의의 복음을 통한 양육 (로마서)
제2권 그리스도 성취
제2장 교회양육을 통한 성취 (롬~갈)
제1절 칭의의 복음을 통한 양육 (로마서)
2. 하나님의 의의 현현 (3:21〜11:)
4) 하나님의 의의 기초 (9:〜11:)
로마서 9〜11장은 성령께서 부활승천하신 이가 그리스도이심을 하나님의 의의 기초를 통해 증거하신 내용이다. 그 내용 가운데, 9장 1〜23절은 유대인은 언약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신 내용이고, 24절〜10장은 이방인은 예언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신 내용이다. 그리고 11장 1〜12절은 유대인은 은혜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신 내용이고, 13〜32절은 택자들은 인자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신 내용이고, 33〜36절은 하나님의 지혜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신 내용이다.
이러한 증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신 영원한 뜻에 따라 언약하신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찍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여호와를 믿어 의로 여기심을 받도록 섭리하셨다(창 15:6). 그리고 이러한 언약의 말씀을 성취해 주시려고 칭의가 하나님의 의에 기초하도록 섭리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신 영원한 뜻에 따른 여호와의 언약을 역사적 사실로 성취해 주신 것이다.
(1) 유대인은 언약에 기초함 (9:1〜23)
9: 6〜13 자녀된 것은 아브라함과 리브가에게 명한 언약에 기초함
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본문은 성령께서 부활승천하신 이가 그리스도이심을 자녀된 것은 아브라함과 리브가에게 명한 언약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신 내용이다.
사도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라고 말했다. 본문 초두에 “또한”은 헬라어 ‘데(de)’라는 접속사를 번역한 것인데, 여기서는 ‘그러나’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바울은 자기 동족을 위해 마음에 큰 근심과 고통이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 효력을 잃어버린 것 같지는 않다고 한 것이다. 곧 바울 자신이 마음에 큰 근심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은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창 21:12)고 언약하신 말씀을 소개했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이삭처럼 약속으로 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일컫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로 말미암은 그 자손들이 모두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씨가 모두 그 자녀가 아니라 언약의 자손이라야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때문에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하면서, 바로 그 약속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년 이 때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0; 14)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아브라함의 후손이 모두 그 자손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그 씨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뿐만 아니라면서, 리브가가 이스라엘의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에서와 야곱을 잉태했을 때의 일을 상기시킨다. 곧 에서와 야곱이 아직 리브가의 태중에 있어서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했을 때였다. 여호와께서는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하나님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려고 리브가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고 말씀하셨다면서, 선지서에 기록된 대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말 1:2〜3)고 하신 말씀과도 같다고 했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택하심에 따라 선악 간에 어떤 행위와 무관하게 사랑할 자를 사랑하고, 미워할 자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부활승천하신 이가 그리스도이심을 자녀된 것은 아브라함과 리브가에게 명한 언약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셨다.
9:14〜18 오직 긍휼히 여기는 것도 모세에게 명한 언약에 기초함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본문은 성령께서 부활승천하신 이가 그리스도이심을 오직 긍휼히 여기는 것도 모세에게 명한 언약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신 내용이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언약에 기초한 것이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하나님께 공평하지 못한 불의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연이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출 33:19)고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 기쁘신 뜻대로 그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 『기독교 예정론』을 참고할 것).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은 성경이 바로에게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출 9:16)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켰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어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알리기 위해 애굽에 바로 왕을 세우셨다는 말씀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바울은 바로에게 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고 했다. 곧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에 따라 미리 정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은 긍휼히 여기고 애굽의 바로 왕은 강퍅케 하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부활승천하신 이가 그리스도이심을 오직 긍휼히 여기는 것도 모세에게 명한 언약에 기초함으로 증거하셨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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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명예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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