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제5장 자유의지론에 대한 반론

“첫 사람 아담이 그를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벗어남으로 인하여 부패가 우리를 얽어매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반역의 죄책을 지고 있다는 것이 지당하다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처지를 핑계거리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중략) 필연에 의해서 죄를 짓는다고 해도 그에 못지않게 자발적으로 죄를 짓는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반대로, 택함 받은 천사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그 천사들의 의지가 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천사들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인 것이다.

우리 자신만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죄가 우리 자신의 것이요, 공로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상급이 임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주신 은사들에 대해서 주시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본성적으로 동일한 질병을 앓고 있지만, 주께서 그의 치료의 손길로 붙잡으시기를 기뻐하시는 자들만이 그 질병에서 놓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이외에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우신 판단으로 그냥 내버려 두시는 다른 사람들은 그 부패한 상태 속에서 그냥 허비하고 있다가 결국 태워지고 말 것이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인내하고, 어떤 사람들은 경주 시작부터 넘어지고 마는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것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율법에 대한 바울의 정의에 따르면, 율법의 목적과 성취는 사랑에 있다.(참조 딤전1:5).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데(살전3:12), 여기서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율법의 대요(大要)를 철저하게 심어 놓지 않으시면 율법이 우리 귀에 들려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참조 마22:37~40).

중생의 시작이 바로 우리의 것을 쓸어내는 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성령께서는 움직이시고, 행하시고, 촉구하시고, 참으시고, 지키심으로 그의 역사를 수행하신다. 그러므로 은혜에서 비롯되는 모든 행위들이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본문 中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확고히 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부정했다. 단,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자유의지가 주어졌으며 그 의지의 선택에 따라서 타락했음을 표명했다. 그는 본장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자들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논의의 맥락은 자유의지에 의한 타락의 문제를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악행과 선행의 주체를 논하며, 자유의지의 소멸로 말미암아 순종할 능력이 없다면 교훈과 권면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의견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칼빈의 논조는 타락이전의 자유의지와 타락이후의 노예의지를 구분하여 전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다음단원에서는 자연스럽게 타락한 죄인들에게 중보자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반론은 죄가 필연(必然)의 문제라면 그것은 죄가 될 수 없고, 죄가 자발적인 것이라면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죄가 인간의 의지로 자행된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필연에 의한 결과라면 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뜻이고, 반면에 자발적인 것이라면 죄를 범하지 않을 수도 있었음을 명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첫 사람 아담이 그를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벗어남으로 인하여 부패가 우리를 얽어매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반역의 죄책을 지고 있다는 것이 지당하다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처지를 핑계거리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의 주장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작정범주 안에서 발생된 일이지만, 그 일의 주체는 아담이었으며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형성되었으므로 필연 때문에 죄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말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즉, 아담의 범죄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것이지만 타락의 주체는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였음을 강조한 반면, 필연을 핑계로 죄의 주체가 인간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의 의도는 알고 있지만, 반대자들의 이론에 대한 답변으로서는 궁색한 부분이 있다. 4장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필연은 하나님의 작정을 뜻하며 선악간의 모든 섭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담의 타락도 하나님의 작정섭리의 범주 안에서 이행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칼빈의 사고는 하나님의 작정(필연)과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를 하나의 체계로 설명하려는데 어려움이 있다. 즉, 하나님의 작정을 섭리의 근간으로 설정했으면 처음부터 일관되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중심으로 개진해야 하는데,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상충되는 아담의 자유의지를 인정함으로써 논리적 오류를 범한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기 때문에 모든 만사를 작정대로 섭리하신다. 그 섭리의 범주 속에는 선과 악, 빛과 어둠, 타락과 구원, 생명과 사망, 형통과 곤고함이 공존하며 하나님의 작정대로 실행되는 것까지를 함의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필연이지만 그 속에 인간의 의지도 포함된다는 이 말은, 필연(작정) 속에는 인간의 의지가 종속되어있다는 뜻으로서, 그 의지의 작용역시도 하나님의 작정대로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 진다’는 말이나, ‘절대주권’이란 용어는 피조세계의 전 영역을 하나님의 뜻대로 섭리하며 통치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피조물의 독자적인 계획이나 자율적인 의지가 존재하거나, 개입 또는 방해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작정, 계획, 뜻, 사상인 로고스(logos)만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칼빈은 죄의 성립에 대한 부분은 그냥 지나쳤지만 집필자의 관점에서 짚어본다면, 죄란 법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이다. 그런데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자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법에 대해서 순종하거나 불순종 할 수도 없으며,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성립될 수도 없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없어도 하나님의 작정대로 실행되는 종속의지는 존재한다.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종속의지에 의한 불순종의 결과이기 때문에 죄로 성립된다. 종속의지(從屬意志)는 로봇과 같은 기계적인 작동이 아니라 지정의(知情意)에 의한 인격적인 작용을 뜻한다. 인간의 인격적인 작용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범주와 능력을 힘입어 자연스럽게 활동하게 하는 기능이다. 하나님의 작정과 관련해서, 현대과학은 인간의 DNA속에 건강과 관련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인생의 미래와 관련된 것까지도 입력되어 있으며, 유전자는 부호의 집합체라고 밝힌다.

  두 번째 반론은 인간의 덕행과 죄악이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면, 사람에게 상벌을 부과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우리 자신만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죄가 우리 자신의 것이요, 공로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상급이 임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주신 은사들에 대해서 주시는 것”이라는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한다. 그의 주장은, 악행의 형벌은 인간의 의지로 선택한 결과물이고, 상급과 공로는 하나님의 은총임을 뜻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형벌은 인간의 책임이고 상급은 하나님의 은총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형벌과 은총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형벌은 인간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로 행동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대로 불순종한 인간을 향해서 일방적으로 선언하시고 심판하시는 절대주권의 행사라는 것이다.

  칼빈은 악행과 형벌의 책임 부분에서만 유독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여 책임소재(責任所在)를 밝히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운운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능력을 약화시키는 표현이며, 이원론적인 발상으로서 논리적으로도 부적절해 보인다. 상급이 하나님의 작정에 근거한 절대주권적인 은총이라면, 형벌 역시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절대주권적인 섭리의 결과이다. 단, 상급은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물이고, 형벌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든 섭리의 근원은 하나님만이 주체가 되신다. 그러므로 악행과 선행이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해서 형벌의 책임을 모면하거나, 상급의 공로를 가로챌 수 없는 것이다.

  세 번째 반론은 인간에게 선악을 선택할 의지의 기능이 없다면 동일한 본성을 지닌 자들은 모두가 악하거나 선하게 살 수 없다는 이론이다. 즉, 이 말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의 선택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동일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우리 모두가 본성적으로 동일한 질병을 앓고 있지만, 주께서 그의 치료의 손길로 붙잡으시기를 기뻐하시는 자들만이 그 질병에서 놓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이외에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우신 판단으로 그냥 내버려 두시는 다른 사람들은 그 부패한 상태 속에서 그냥 허비하고 있다가 결국 태워지고 말 것이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인내하고, 어떤 사람들은 경주 시작부터 넘어지고 마는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것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칼빈의 주장을 보충하자면, 모든 인간은 자유의지의 유무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섭리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통하여 인간에게 악을 선택하게 하시어 악행하게 하시고, 악행에 대한 책임도 지게 하신다. 그러한 반면에 성령을 통하여 선을 선택하게 하시어 선행하게 하시고, 축복해 주신다. 결국 인간에게는 독자적인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라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한을 무시한 발상이다.

  칼빈의 말대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선택과 유기라는 상반된 계획을 세우셨으며, 노아와 세상 사람들을 구별하여 노아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 세상 사람들은 홍수로 심판하셨다. 또한 에서와 야곱을 태중에서부터 이미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아야 할 자로 구별하였고,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나라, 교회와 세상을 확연하게 구별하시어 섭리하시는 것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신 뜻대로 섭리하심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반론은 죄인에게 순종할 능력이 없다면 교훈과 권면 자체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율법의 계명들을 인간의 능력에 따라 재지 않으시고, 올바른 것을 명령해 놓으시고서 또한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값없이 주신다”라고 말한다. 반론자의 주장은,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로봇과 같은 기계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그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고 역설한다. 물론 칼빈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요15:5)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성경의 여러 부분들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명령과 권고에 대한 당위성을 논증했다. 하지만 단편적인 성구(聖句) 인용보다는 성경 전체의 논리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주종(主從) 관계로써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이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죄인과 의인 모두에게 인격적인 통로를 통해서 섭리하신다. 악행은 사탄을 통해서 인간에게 악한 마음을 작용하게 하시어 섭리하시고, 선행은 성령의 교훈을 통해서 깨달아 느끼며 결단하게 하시어 실행하게 하신다.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사탄을 삼자(三者)의 위치에 포진해 놓고 각각의 자율적인 능력과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괄(包括)하시며 유기적으로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섭리영역범주에는 독자적이거나 자율적인 개체는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에 의해서 존재하며 활동하고 생존한다. 이것은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존재의 법칙이며 상관관계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고민하며 하나님의 섭리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도 궁금해 한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며 하나님은 인간의 구속과 사랑을 위해서 섭리하신다고 답한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모호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이유는 당신이 스스로 세우신 영원하신 작정을 드러내시어 성취하심에 있고, 목적은 언약성취를 통한 영광의 선포에 있다. 이것이 계시를 목적으로 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척도이다. 인간의 구속과 사랑은 영원하신 작정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이유나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좀 더 객관적이며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인식의 폭을 확장해야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의 소원과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혈육적인 감정의 신(神)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영원세계에서부터 세워놓으신 계획이 있다. 그 엄중한 계획(logos)을 첫 아담에게 언약하시고 둘째 아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선포하신다. 그 위대한 계획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하시는 교회를 통해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계시하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이고, 존재에 대한 계시이며 언약성취의 실증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함수관계는 절대자와 상대자, 주관과 종속, 창조주와 피조물, 능동과 피동의 유기적인 체계로 형성되어 있다.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모든 피조물을 뜻대로 주관하시며 만유를 통치하시며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인간은 상대자로서 절대주권자인 하나님께 완전히 종속된 상태에서 피동적으로 존재하는 피조물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구도이해에서는 신(神)의 뜻과 생기에 의해 구성된 유기적인 관계임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구도가 하나의 체계에 의해서 유기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이 로봇이나 무의식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방법은 인간이 가진 기능과 인격적인 작용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활동하고 생존하게 하신다. 이것을 영적(靈的) 활동이라 명명(命名)할 수 있고, 이것은 교육적인 과정을 통해서 구체화 되며 확장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독교 인식론은 영적 활동을 위한 교육적인 과정을 체계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 인식론을 개괄적으로 정리하면, 첫째, 인식의 대상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다. 둘째, 인식의 도구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특별계시인 성경을 필요로 한다. 셋째, 인식의 주체는 영적활동의 핵심 기능인 ‘이성’이기 때문에 반드시 ‘중생한 이성’이라야 한다. 이유인즉, 베드로는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고 말했다.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통한 중생한 이성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식의 주체인 이성은 타락한 이성과 중생한 이성으로 분류된다. 타락한 이성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의 영적기능을 말하며, 중생한 이성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은 영이 살아남으로써 작용하는 영적기능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이성은 영적 활동이 불가능하며 육체의 본능에 의한 활동만 가능하다. 반면에 중생한 이성은 타락 이전의 영적인 기능이 회복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식하는 활동이 가능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칼빈도 중생에 대해서는 “중생의 시작이 바로 우리의 것을 쓸어내는 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성령께서는 움직이시고, 행하시고, 촉구하시고, 참으시고, 지키심으로 그의 역사를 수행하신다. 그러므로 은혜에서 비롯되는 모든 행위들이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넷째, 인식의 주관자는 일반적인 차원에서의 교사나 목사가 아니라 계시를 깨닫고 자유를 얻게 하시는 성령인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인식론의 체계를 이해하면 하나님의 권면과 책망 그리고 교훈의 중요성과 성화(聖化)작용의 이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계속해서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지지자들의 이론을 일축하면서 율법과 약속 그리고 책망을 통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한다. 즉, 율법의 실현 목적을 사랑으로 규정하면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실 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율법은 생활 원칙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효용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사람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의 의무를 요구하지만 복종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주장한다.

  칼빈은 성도생활에 대한 원칙으로서의 율법의 요구와 복종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집필자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형성되는 성도의 생활에는 절대적으로 공감하지만, 그 능력이 율법의 요구에 부응하게 한다는 점은 근본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된다고 본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갈3:10～11) 라는 말로써 율법이 성도생활의 규범이 아님을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성도생활의 이상 즉 기독교 윤리의 이상(理想)은 그리스도 자체이다. 기독교 윤리를 위한 항목과 조항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과정이며 방법에 불과하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농도만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성도의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성령의 소욕에 의해서 열매를 맺는 과정인 것을 성경이 밝혀 주고 있다. 성도들의 영적 활동은 인식의 농도와 정비례 하는 것이지, 어떤 규범이나 법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맞추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생활의 이상(理想)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은 행동을 표준삼아 따라가기 이전에 그의 정신과 사상을 배움으로써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인격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이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지, 의무적으로 규범을 준수한다거나, 인위적인 훈련과 반복적인 수련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병폐 중의 하나는 성도들로 하여금 규범이나 규칙을 지키도록 강요하는데 있다. 즉, 성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당위와 규범으로 옭아매서 억지라도 해야 된다는 압박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성도생활은 자유로워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자들이 즐겁고 기쁨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 어떤 법이나 제도에 얽매여서 사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독교 교육은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면 그 분의 뜻을 알 수가 없고, 그 뜻을 모르면 자기 좋은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성도의 생활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내신 의미를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23:43)라고 단적으로 말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대해 영적예배로 명명하면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라고 권면한 바 있다.

  인간은 때로는 반복적인 훈련이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행동을 교정할 수 있고, 수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득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도생활의 본질적인 변화는 반복적인 훈련이나 상벌의 규정에 의해서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인식의 결과로 난다. 예수께서도 보혜사의 사역을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고 규정하신 바 있다.

  성도의 생활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만큼 인격적인 작용에 의해서 나타난 신인식(神認識)의 결과이며 내면세계의 표현이다. 성도생활의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윤리와 도덕적인 윤리의 차이를 포착할 수 없다. 보편적인 윤리는 인간사회의 질서와 도덕적인 인간관계의 가치추구를 위해서 실천된다. 하지만 기독교 윤리는 가장 고상한 진리의 토대위에서 진리인식을 통한 신인식의 농도만큼 실행된다. 여기에는 의식적으로 포장된 명분이나 성도이기 때문에 외식하기 보다는 절대적인 가치와 열정적인 사명을 동력으로 한다.

  칼빈은 율법을 성도생활의 표준이 되는 지침서나 규범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칼빈의 사상에 입각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율법의 계명을 성도생활의 표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최소한 십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도생활의 표준이며 규범이 된다고 한다. 물론 율법은 사랑의 완성이다(롬13:10). 하지만 이 말은 계명의 모든 조항을 전부 지킨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즉, 사랑은 모든 행동의 원인이자 최고의 가치라는 뜻이지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랑의 실천은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신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의 성취로 실행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해야 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규범이 되어 올무가 된다.

  사랑의 실천은 명령이나 규범에 의해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신인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신서에 나타난 성도생활의 원리를 살펴보더라도 일관된 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義)를 소개한 다음 칭의의 은총을 깨달은 자들로 하여금 영적예배가 드려지도록 하게 한다. 고린도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하여 화해와 협력의 생활을 하게 한다. 갈라디아서는 구속의 은총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한 다음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한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성부의 작정과 성자의 구속 그리고 성령의 보증에 의해서 세워진 비밀을 깨닫게 한 다음 교회의 생활을 하게 하는데서 신(神)인식이 우선함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의 실천은 억지로 하거나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에 지켜야 되는 것은 아니다. 명령은 규범이 되며 규범은 성도생활의 표준이 되어 결국에는 성도들이 억지 행동을 하거나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실천방식은 성도생활의 원리가 못된다. 성도생활은 그 어떤 명분, 당위, 규범, 제도를 초월한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다. 즉,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규칙이나 제도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행위를 뜻한다. 성경의 명령문은 3장에서도 밝힌 바가 있지만 “절대명령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볼 때 명령 자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인 언약의 성격도 함의하고 있다. 이것은 명령어 ‘～하다’라는 현재형으로 미래적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기에 미래에 대한 언약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명령의 주체자가 명령의 내용들을 완전하게 성취하는 “미래주어의지(未來主語意志)”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수행할 수 있도록 인격적인 작용을 통해서 섭리하신다. 이런 의미에서의 명령은 단순한 지시나 규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칼빈은 1～5장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타락 그리고 죄의 책임소재와 하나님의 섭리방식을 다루었다. 1장의 원죄에 대해서는,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담 자신의 의지선택의 결과임으로 죄에 대한 책임도 아담에게 있음을 밝혔다. 2장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타락 이전에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었지만, 타락이후에는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노예의지임을 강력히 주장했다. 3장의 타락한 인간의 상태에 대해서는, 악행의 원인은 선의 결핍이며 선행은 하나님의 은총의 개입으로 설명했다. 4장의 하나님의 섭리영역에 대해서는 모든 섭리는 하나님께서 주도한 일이지만 악행의 책임은 당사자들이 담당해야 된다고 말했다. 5장의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떠한 명분과 이유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강력한 논조로 주창했다.

  칼빈은 하나님의 작정과 절대주권 그리고 절대은총을 표지로 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인본주의자들을 철저하게 반박했다. 칼빈의 하나님 중심신학은 여타신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확고한 신본주의이다. 하지만 칼빈은 죄의 책임소재를 반드시 인간에게 부과해야한다는 전제(前提) 때문에 절대주권과 자유의지를 이원론적으로 접근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작정했지만, 인간에게 한시적으로 주어진 자유의지를 인정하게 되는 자기모순을 범하게 된 것이다.

  절대주권과 자유의지는 어떠한 명분과 이유에서도 공존할 수 없는 상충된 개념이기 때문에 분명한 자리매김이 필요하다. 절대주권을 인정하면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없고, 자유의지를 주장하면 절대주권이란 용어가 존립할 수 없음을 확고히 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절대주권을 보유하고 계신 존재자로 인정한다면, 피조물 그 어떤 것에도 자유의지를 부과하거나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의 모순이다. 신학적인 난제는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해결해야 될 것이며 인간적인 고정관념이나 고착화된 교리를 통해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