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3-03-23 21:0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제2권 제 10 장 구약과 신약의 유사점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그의 특별한 백성으로 취하신 모든 사람들은 우리와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도리 아래에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으로 받아 들여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점을 확실히 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유사점과 차이점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가 있다. 모든 족장들과 맺으신 언약은 그 본질과 실체에 있어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에, 그 두 언약들은 그 시행의 양상이 다를 뿐, 실제로는 하나요 동일한 것이라는 것이다. (중략) 첫째, 육신적인 번영과 행복은 유대인들이 사모해야 할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불멸의 생명에 대한 소망에로 받아들여졌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확신이 계시의 말씀과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을 통해서 보증 되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을 여호와와 결속시켜준 그 언약은 그들 자신의 행위의 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서 뒷받침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고, 그를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결속되고 또한 그의 약속들을 함께 소유했다는 것이다.  복음은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현세에서 즐거움을 찾는 데에만 가두어두지 않고, 그 마음을 높이 들어 올려서 불멸의 생명을 소망하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리셨을 때에 그저 백성들의 배만 채우고자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신령한 신비로서 그것을 내리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전 10:1~5). (중략) 주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과 동일한 영원한 하늘의 생명의 약속들을 전해주셨을 뿐 아니라, 그 약속들을 진정한 영적 성례들로써 인치셨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신 한, 우리에게는 모든 풍성한 선한 일과 또한 구원에 대한 확신에 전혀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구약의 조상들이 (1) 그리스도를 그들의 언약의 보증으로 삼았다는 것과, (2) 미래의 축복에 대한 모든 소망을 그리스도 안에 두었다는 것이다.  본문 中

 칼빈은 신구약의 관계가 근본적으로는 동질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성경을 진리로 판명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신구약 성경을 한권의 책으로 구성된 진리로 인정한다면, 상호간의 연결성과 동질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진리의 구성요건에 필수가 된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명제적으로나마 신구약 성경을 하나의 통합된 텍스트로 규정하고,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은 역사적으로나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구약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기록인 반면 신약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적(史蹟)으로 볼 수 있다. 즉,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성전을 중심으로 섭리하신 것이라면, 신약은 그리스도의 행적과 더불어 교회의 설립과 교훈 그리고 예언에 대한 내용이다. 또한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으로서 구약은 하나님의 공의를 증거하며 신약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서 구약은 약속이며 신약은 성취의 구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성경내용의 상이성 때문에 19세기 이후의 성경학자들은 신구약 성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관한 연구에 몰입한다. 먼저 신구약성경의 일치성을 강조하는 견해를 살펴보면, 피셔(W. Vischer)는 “예수는 구약성서의 그리스도”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구약의 연속성을 증거한다. 즉,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에 신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바르트(K. Barth)는 “구약성서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증거요 신약성서는 이를 회상하는 회상에 대한 증거이고,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증거이며 신약은 오신 메시아를 증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구약성경에 나타난 차이점에 대해서는 “대상의 통일성을 통하여(중략) 완전히 상대화 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두 성서의 분리도 거부하지만 어느 한 성서를 격상시키거나 격하시키는 것도 거부한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신구약 성경의 연속성과 권위의 동등함에 대해서 피력한다. 이들의 주장은, 신구약 성경의 연결고리는 그리스도로서 구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의 기다림이고, 신약은 기다림에 대한 성취이기 때문에 신구약성경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몇 가지의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신학적인 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그리스도를 중심한 연결성을 강조하다 보면 각권의 독특성이 감소되기 때문에 다양성의 확보가 관건이 된다. 둘째, 구약의 모든 본문을 그리스도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시키다 보면,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거나 동떨어진 문장에 대한 가치차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 모형론적 해석 방법으로써 모세를 그리스도에 대한 대칭으로, 노아가 홍수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독교인이 죄에서 구원받는 세례와 대응시킨다. 이것 역시 구약성경 전체를 그리스도의 구원사와 관련시켜 해석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을 하다보면 구약 본문이 지닌 본래의 역사적인 의미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약속과 성취의 틀에 맞춘 해석으로써 구약을 약속, 신약을 성취의 구도로 이해 하지만, 이미 구약 성경 안에도 약속과 성취의 상응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예언서에서 두드러진다. 또한 구약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과 예언은 신약을 바라보게 하고, 신약에서도 그리스도의 약속과 성취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약속과 성취의 틀은 성경의 신빙성을 확증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약속과 성취에 대한 중복과 현재에도 약속에 대한 성취가 종결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율법과 복음의 틀에 맞춘 해석으로써 구약을 율법으로, 신약을 복음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구약에는 모세의 율법만이 아니라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의 시대와 율법과 장르가 다른 시가서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신약에도 구약의 율법이 인용되고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신구약성경의 불일치성을 강조하는 학자들 중에 불트만(R. Bultmann)은 “신약성서는 하나님께서 죄의 용서, 새 이스라엘의 부르심, 성령의 보내심과 같은, 한 마디로 말하여 세계와 하나님의 화해라는 종말론적 행동을 하신 분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나님의 행위는 구약성서가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일어났다. 하나님의 은혜의 증명은 구약성서가 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일어났다.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구약성서는 더 이상 계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 이상 계시의 역사가 아니고, 신약성서는 타락한 세계와 하나님의 화해에 대한 종말론적 교리로 수용한다는 입장에서 두 성서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불트만의 주장은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기록물이며 그 이상의 계시적인 의미가 없는 반면, 신약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피조물과의 화해를 통한 그리스도의 구속과 회복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신구약성경의 표면적인 내용과 계시의 방법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신구약성경의 연속성을 부정한다면, 성경의 진리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야기될 것이며 오류를 인정한다는 것이 된다. 지금까지 신구약 성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주장과 문제점을 검토해 보았는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의 관점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신구약 성경의 연속성을 주장함에 있어서 각권의 독특성과 다양성 확보에 대한 문제이다. 이 점은 신구약 성경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논박당하는 핵심적인 사안이다. 물론 성경은 각 권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주제와 사상 그리고 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은 한 권으로 통합된 계시서이며, 진리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 자체의 내용을 면밀히 파악해 보면 쉽게 통일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목적으로 기록되었으며, 계시형식원리는 여호와 언약(구약성경)과 그리스도 성취(신약성경)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구약성경은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주제가 설정되며, 신약성경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주제가 설정된다. 여기에서 “하나님 여호와”는 목적상의 핵심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는 내용상의 핵심이 된다. 이유인즉, 계시형식원리가 여호와 언약(구약성경)과 그리스도 성취(신약성경)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언약”과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명제는 의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구약의 원리는 언약인데,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주제의 뜻은 ‘전능자는 약속대로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계시형식의 원리인 ‘언약’과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주제는 ‘언약’이란 중심 개념과 직결되어 있음으로 주제의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신약성경 역시 구약의 언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성취”라는 원리에 의해서 예수 자신의 성취와 보혜사 성령의 성취증거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설정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신구약 성경의 다양성은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중심주제와 언약과 성취의 계시형식원리에 의해서 논리적인 통일성이 확보될 뿐만 아니라 각권의 독특성도 선명하게 부각됨으로서 다양성과 통일성의 문제를 단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성경 66권의 다양한 주제들은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중심주제에 귀결되며, “여호와 언약”을 중심으로 각 권의 내용이 일관된 논리를 구사함으로써 통일성 안에 다양성을 함의한다는 뜻이다.
  둘째,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시키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대형)으로 해석할 때의 문제이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이해와 구약전체를 그리스도의 구원사에 대한 모형으로 해석하다보면 구약 자체의 역사적인 의미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다는 이론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할 때는 반드시 원리에 입각해서 접근해야 한다. 구약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구절구절이나 단순 사건마다 적용한다면 위에서 제기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어떤 구절과 사건들은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증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할 때는 그리스도가 섭리의 주체이며, 하나님께서 언약하신(창1:28)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도 구약성경 전체가 총체적으로 자신을 증거 한다고 증언한 바 있다. 즉, 역사서(창~에)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에 대한 것으로, 시가서(욥~아)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속성으로, 선지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구속사역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단편적인 구절이나 사건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며, 구약 자체의 역사적인 의미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된다. 구약의 역사는 단순한 역사해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역사해석을 통한 신학적인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증거된다고 해서 역사적인 의미가 퇴색되거나 본래적인 의도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셋째, 신구약 성경을 약속과 성취의 구도에서 접근할 때, 구약성경 자체에도 약속과 성취의 상응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구약성경 안에는 약속과 성취의 구도가 반복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성취되는 섭리로서, 선지자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성취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언약성취 역사는 아담에게 세우신 실체적인 언약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에 대해 증거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언약에 대한 특성인데,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으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세운 언약(창1:28)은 실체적인 것이지만,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언약(창12:, 17:)은 아담에게 세우신 언약이 그리스도로 성취될 때까지 증거적인 차원에서 주신 모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은 자손, 땅, 통치로서 내용적인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성격적인 면에서는 실체와 모형으로서 각기 그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형은 실체적인 언약이 성취될 때까지 유효하고, 실체적인 언약이 반드시 이루진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용도로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구약에 나타난 반복적인 약속성취의 상응관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신구약 성경은 언약과 성취라는 큰 틀에서 접근할 때라야 신구약의 연속성과 논리적인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원리를 통해서 신구약 성경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불연속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이론을 논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진리성 입증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제 신구약 성경의 동질성과 연속성에 대한 칼빈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는 신구약의 유사점에 대한 중요성을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그의 특별한 백성으로 취하신 모든 사람들은 우리와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도리 아래에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으로 받아 들여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점을 확실히 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언약의 성질에 대해서는 “모든 족장들과 맺으신 언약은 그 본질과 실체에 있어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에, 그 두 언약들은 그 시행의 양상이 다를 뿐 실제로는 하나요 동일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에 대한 증명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육신적인 번영과 행복은 유대인들이 사모해야 할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불멸의 생명에 대한 소망에로 받아들여졌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확신이 계시의 말씀과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을 통해서 보증 되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을 여호와와 결속시켜준 그 언약은 그들 자신의 행위의 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서 뒷받침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고, 그를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결속되고 또한 그의 약속들을 함께 소유했다는 것이다.

  칼빈은 위의 세 가지 약속의 중심개념에 대해서는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복음’으로 규정하면서, “복음은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현세에서 즐거움을 찾는 데에만 가두어두지 않고, 그 마음을 높이 들어 올려서 불멸의 생명을 소망하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칼빈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하는 복음을 중심으로 신구약의 유사점을 증거하고 있다. 칼빈은 신구약성경의 유사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베푸신 만나와 그리스도의 몸을 먹음으로써 얻게 되는 영생(요6:54)에 있음을 설명하였고, 구약 백성들의 소망의 목표를 영생으로 규정함으로써 확고히 했다. 이에 대해 바울의 말을 인용하면서 “바울은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리셨을 때에 그저 백성들의 배만 채우고자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신령한 신비로서 그것을 내리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전 10:1~5).”고 말했다.
  또한 칼빈은 “주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과 동일한 영원한 하늘의 생명의 약속들을 전해주셨을 뿐 아니라, 그 약속들을 진정한 영적 성례들로써 인치셨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생과 구원에 대한 구약의 근거로써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레 26:12)라는 문구를 비롯해서 여러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신 한, 우리에게는 모든 풍성한 선한 일과 또한 구원에 대한 확신에 전혀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현재 뿐만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여호와께서는 자기 자신을 그들의 하나님이라 부르셨는데(출3:6)”라는 문구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마22:32)라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여 증거한다. 뿐만 아니라 족장, 다윗, 욥, 선지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에 영생이 예비되어 있다”라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다.
  끝으로 칼빈은 신구약성경의 유사점에 대해서 “구약의 조상들이 (1) 그리스도를 그들의 언약의 보증으로 삼았다는 것과, (2) 미래의 축복에 대한 모든 소망을 그리스도 안에 두었다.”라고 단언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약속은 영생인데,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약속에 대한 보증이시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을 통해서 확신하고 소망한다는 것이다.
  칼빈의 통찰력은 예리하고 정확했으며, 성경의 진정성을 확립하기 위한 열정에 존경을 표할만 하다. 21세기의 신학적인 쟁점은 성경관이다. 성경을 한권의 책으로 통합해서 보게 된 종교개혁이후 19세기부터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논란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신학자들의 관심은 성경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와 분석 작업이 활발했었다. 그 중에서 핵심 사안은 신구약성경의 연결성과 통일성인데, 역사적인 배경에서 보더라도 칼빈의 연구 성과는 높이 평가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현금의 실정은 성경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서구신학의 분석적인 방법에 의해서 파편적이고 단편적 방법론에 치우침으로써 통일성이 훼손된 상황에 처해있다. 성경은 총체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되며 하나의 맥을 따라 일관된 논리의 통일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칼빈의 주장과 같이 신구약 성경의 동질성(유사성)과 일체성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칼빈이 말하는 신구약 성경의 연결성은 ‘영생의 복음’이란 명제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개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구약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본다는 것은 성경자체의 구도가 그러하기 때문이며, 계시하고자 하는 원리에 충실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의미와 이해방식에 있어서는 좀 더 원론적이며 계시적인 관점에서의 객관성이 요구된다. 칼빈의 주장은 영생의 복음과 영생의 주체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집약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증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입증되고, 그리스도의 약속을 통해서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칼빈의 논조는,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며, 그들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구약 백성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고, 부활을 통해서 영생의 증거를 확증시켜 주심으로써 영생을 소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칼빈 논지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영생의 확신이다. 구원과 영생은 성도에게 있어서 존재의 가치와 소망의 표준이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의 연결성을 그리스도의 사역과 결부된 인간의 구원과 결과에 둔다는 것은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구원과 영생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한 부분이며 결과이지, 근본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창세전부터 존재한 로고스 즉, 하나님의 뜻과 작정에 기초한 것이며, 구약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것에 있다.
  물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성경적이며 타당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이에 대한 해답은 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는가라는 점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다면,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면, 인간의 타락이 섭리의 초점이 되어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 때문에 모든 섭리를 시작하신 것이 되고,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한 존재로 전락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자충족(自充足)하신 분이라는 점에는 어떠한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성경의 논리를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축복을 언약하셨고(창1:28), 그 언약을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신 것으로 확인된다. 예수께서도 구약성경 전체가 당신에 대한 언약이며, 당신이 오신 이유도 구약성경을 성취하기 위한 것에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신약의 내용이 언약대로 오신 ‘그리스도’에게 집약된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신약전체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며, 그 증거는 구약성경의 중심개념인 언약에 근거해서 입증된다. 사복음서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자신의 행적을 통해서 증거하되, 구약에 언약된 그리스도의 직임(마태)과 신분(마가) 그리고 사역(누가)과 본성(요한)을 통해서 입증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직임은 구약에서 언약된 대로 선지직, 왕직, 제사직이며, 그리스도의 신분은 구약에서 언약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버려지고 영광을 취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은 구약에서 언약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시며 구속주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이고, 그리스도의 본성은 구약에서 언약된 대로 태초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신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오셔서 아버지께로 가심으로써 하나님과 동등된 신성의 소유자이심을 증거한 것이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구약성경에 언약된 대로 성령의 행적과 교훈 그리고 예언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성령의 행적(행)은 구약에서 언약된 대로 창조 시 하나님의 신(神)이 수면 위에 운행하심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맥추절(오순절) 절기를 통해서 성령의 강림하심이 모형적으로 증거되었고, 요엘 선지자의 예언(2:28~29)이 성취되어 그리스도를 증거 함으로써 확증된다. 성령의 교훈(롬~유)은 구약에서 언약된 대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3 언약(창1:28)과 선악과로 교훈하시고(창2:16~17),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교훈하심이 성취되어 그리스도를 증거 함으로써 입증된다. 성령의 예언(계)은 구약에서 언약된 대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약을 세우신 것(창1:28),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사탄 권세를 정복하실 것(창3:15), 성령이 장래 일을 예고할 것(욜2:28)이 성취되어 그리스도를 증거 함으로써 확보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신약성경의 핵심은 구약의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집약되며, 그리스도 자체를 증거하기 위한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영생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이슈이며 간과할 수 없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그리스도의 구속은 성취의 방법이며, 영생은 구속의 결과에 해당된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성취’를 원리로 하며 ‘그리스도 증거’를 목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성취의 방편으로 해서 개진되고 있다. 따라서 방편이 목적과 원리로 대치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해석의 원리나 섭리의 목적으로 설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 (대구동산교회)

제2권 제 11 장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제2권 제 9 장 율법과 복음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