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3권
회개의 효과
칼빈은 회개의 효과에 대해서 육의 억제와 영적인 올바름으로 규정한다. 즉 회개를 통해서 육체의 소욕이 절제되고, 영적인 성숙이 도모된다는 칼빈의 견해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칼빈은 회개를 수련의 과정으로 판단하여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나타나는 결과에 따라 진정성을 파악하려고 한다. 회개는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할 때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지,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유발시키거나 체계적이고 반복적 훈련학습에 의해서 조성되는 것은 아니다. 회개는 자기반성의 표현방식으로서 중요한 방편임에 틀림없지만, 반복적인 훈련이나 수련에 의해서 욕망이 조절된다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성숙과 욕심의 조절은 타종교와 같이 반복적인 수련을 통해서 습득되거나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의 대한 존재확증과 성경적인 가치관의 형성에 따라서 조절이 가능해진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통해서 가장 가치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서 일평생을 수고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외에는 가치로운 것이 없음을 고백했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가 확증되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습득하게 됨으로서 인간의 욕심이 조절되고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옛 사람과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과정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의와 생명을 얻은 자로서 자유와 평안의 소욕이 육체의 욕망을 이기기까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심판의 두려움 때문에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에 따른 반성과 그에 따른 하나님에의 찬양이 분명하다. 회개의 근본적인 동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며, 그 은혜를 깨닫는 만큼의 자기 발견을 통해서 뉘우치고 반성함으로서 더욱더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데 있다. 기독교는 일반적인 차원의 금욕적인 종교행위가 아니라 더 좋은 가치추구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선한 행위가 드러나는 믿음에 의한 종교이다. 바울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현격한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열정적인 삶으로 전환되었다. 그것은 금욕적인 제도나 수련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진리발견에 의한 사명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칼빈의 회개관에 대한 종합적 이해
지금까지 회개에 대한 칼빈의 이론을 정리하면, 중생은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일평생 지속적인 회개의 작업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회개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 개종적인 성격의 회심과 신앙고백적인 회개를 구분한다. 그런데 칼빈은 두 가지를 혼용해서 설명하면서 신앙고백적인 차원의 회개에 대해서 더 심층적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유인즉, 바로 다음 장에서 논의되는 로마 가톨릭주의자들의 고해성사를 의식하고 변증적인 논증을 펼치기 위한 의도에서이다.
칼빈의 논점은 복음의 주제를 회개와 죄 용서로 규정해 놓고, 죽임과 소생으로 구성된 회개의 성립과, 하나님께로의 회심전체를 의미하는 회개의 정의 그리고 육체를 죽이고 영을 살리는 회개의 효과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는 회개의 문제를 죄 문제와 결부시켜 설명하면서 그에 따른 용서와 고백적인 차원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칼빈의 회개관은 인간의 죄 문제로부터 시작한 죄의 속성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에만 편중되고 있으며, 죄를 해결하는 방법도 심판의 두려움에 의한 통회를 강조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복음의 주제를 인간의 죄로부터 출발한 것에 있으며, 죄에 대한 해결책이 죄에 대한 통회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반복적인 노력을 강조한 것에 있다.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의 작정에 기초한 것이며, 하나님의 존재 확증으로 드러난 신적 계시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선택해 주신 것과, 인간의 행위와 관계없이 믿음에 의해서 의롭다고 선언해 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하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수단이다. 즉, 회개는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는 방편으로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신학적 과정이지, 인간의 성결과 죄책감에서 탈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칼빈은 복음의 주제에 대해서는 ‘회개는 용서의 전제조건’이라는 명제에서부터 빗나가기 시작한다. 만약 회개가 용서를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면,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사역의 효능에 대한 문제가 도출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미 죄 용서를 받은 성도에게 또 다시 회개해야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므로 회심이 일차적으로 개종에 의미가 있다면, 다음에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죄성(罪性)에 대한 반응이다. 회개는 일상을 통해서 죄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재인식하는 것에 있다. 인간의 죄악성은 아담의 타락성에 근거하는데, 인간의 죄악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인간의 욕망대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계획하고, 성취하려는 사악성을 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로 대치하고, 세속주의에 함몰되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기보다는 세속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세속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 결과로 범죄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끝없이 찬송하게 되는 것이 성경적인 의미이다. 바울의 말대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라는 의미 역시, 율법을 통해서 인간의 죄악성이 온전히 드러나게 되며, 그로 말미암아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찬송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주기도문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는 말씀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 말 역시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날마다 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죄와, 죄인 된 자기 모습을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뜻이다. 회개의 핵심은 어리석은 인간의 죄악성을 용서받기 위한 고백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을 무조건적으로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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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 (대구동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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