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구원이란 무엇인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롬 1:16 -
글 출처-'무엇인가3', 박용기 목사 저, 진리의 출판사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롬 1:16 -
Ⅰ. 이끄는 말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종교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종교적 본능은 위험한 일이 예측되거나 실제로 당하게 될 때에 두려운 마음과 함께 강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그 위험 속에서 구원을 받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종교와 구원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기독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기독교에 처음 입문할 때면 ‘구원’이라는 말을 매우 흔하게 들을 수 있다. 기독교 전도자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말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려고 예수를 믿는다. 그러나 막상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성경적인 정확한 해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 근본적으로 변질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독교 신앙인들의 구원에 대한 견해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보수적 성향을 가진 자들은 타락한 죄인이 예수 믿어 죄를 용서 받고 은혜로 천국을 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알고 있고, 진보적 성향을 가진 자들은 예수를 본받아 불의를 멀리하고 정의를 실현해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해 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비적 성향을 가진 자들은 죄를 통회하며 회개하므로 용서함을 받아 성령의 은사와 충만함을 받고 천국을 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알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성향을 가진 신앙인들의 견해는 ‘구원’이라는 말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이해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존 신학자들의 구원에 대한 견해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보수적 성향을 가진 자들은 개인 구원을 강조하는데, 타락한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를 용서 받고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자들은 사회 구원을 강조하는데, 부정과 부패로 더러워진 사회를 정화하고 정의로운 복지사회를 건설하여 평화롭게 사는 것이 ‘구원’이라고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비적 성향을 가진 자들은 신비적 경험을 강조하는데, 죄인이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의해 용서받고, 그 증거로 성령의 은사를 받아 충만케 되어 천국을 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알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신학자들의 견해는 성경에 대한 견해차는 물론, 신학에 대한 견해차에서 오는 현상이다.
이상과 같은 ‘구원’에 대한 신앙과 신학에 대한 다양한 견해차는 일반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혼란은 물론, 기독교 진리의 본질마저 변질시키는 과오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혼란기를 틈타 각종 사이비 신앙운동까지 일어나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혼선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믿고 따라야 구원을 얻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하고 있는 사이비 집단들도 있다. 다시 말해서, ‘구원’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인하여 기독교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이해는 성경적인 바른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데 한 몫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여러 가지 섭리 가운데서, ‘구원’이라는 것에 대한 한 작은 주제만을 설명한다는 것은 무리한 시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섭리는 전 우주적인 다양한 섭리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섭리를 전제하고 그에 따라 먼저 구원의 어의(語義)를 알아 보고, 이어서 구원의 근거와 그 특성을 알아 본다. 그리고 구원의 방법과 그 목적을 알아본 다음, 그 결론을 맺기로 한다.
Ⅱ. 구원의 어의(語義)
신ㆍ구약성경에는 ‘구원’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구원하다’라는 동사형으로 많이 나타난다. 이 말은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인 의미로부터 가장 심오하게는 신앙적이며 신학적인 의미까지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용된 용어가 같다고 해서 그 의미도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정확한 의미는 다른 용어와 마찬가지로 ‘구원’이라는 말이 사용된 문장의 전후 문맥에 의해서만 정확히 알 수 있다.
1. 히브리어의 뜻이다.
구약성경에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단어가 몇 개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게 자주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히브리 원문으로 ‘야샤( ????? )’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예슈아( ??????? )’라는 단어와 ‘예샤( ????? )’라는 단어이다. ‘예슈아( ??????? )’라는 단어는 ‘건짐’ 또는 ‘도움’, ‘안전’,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예샤( ????? )’라는 단어는 ‘해방’ 또는 ‘자유’, ‘안전’,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의 어간(語幹)이 되는 ‘야샤( ????? )’라는 동사는 ‘놓아주다’ 또는 ‘구하다’, ‘석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근본적인 의미는 ‘구원하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반대 의미인 ‘붙잡히다’, ‘버려지다’ 또는 ‘갇히다’라는 말들이 모두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파생어인 ‘예슈아( ??????? )’와 ‘예샤( ????? )’라는 단어의 근본적 의미 역시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 단어들 외에도 ‘구원’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가알( ???? )’이라는 동사인데, 이는 ‘도로 찾다’ 또는 ‘속량하다’, ‘몸 값을 내고 구해내다’라는 의미로서, 타인의 손에 넘어간 소유물을 도로 찾거나 노예가 다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특히 구약의 시편과 예언서에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섭리를 가리켜 사용되고 있다.
2. 헬라어의 뜻이다.
신약성경에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헬라어 단어가 여러 개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으로 ‘소제인( σ?ζειν )’이라는 동사이다. 이는 병이나 귀신들림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위험이나 죽음으로부터 구원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영적 사망으로부터 구원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사용된 단어는 같으나 의미는 각각 다르게 이해된다. ‘구원’이라는 명사로는 ‘소테리아( σωτηρ?α )’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구원함’ 또는 ‘보호’라는 뜻이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서 구조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영적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죄에서의 구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일반적 의미로 사용된 것을 종교적인 신앙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보이는 현실 상태에서 육체적으로 보호 받는 경우에도 사용하고, 보이지 않는 신령한 상태에서 영적으로 구원받는 경우에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들 용어들은 그 용어가 사용된 전후 문맥을 통하여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신ㆍ구약성경에 사용된 ‘구원’이라는 말이 다양한 상태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신앙적 입장에서의 ‘구원’이라는 말이 신령한 영적 구원을 의미함도 알아 보았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단어 자체의 사전적인 간단한 의미만으로는 그 본질적인 깊은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까닭은 ‘구원’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너무 다양하다는 데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단어로, 신적인 섭리의 심오한 진리를 표현한다는 데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신학적으로 중요하게 취급하는 ‘구원’은 주로 신령한 영적 구원에 국한되고 있다. 그래서 논자는 이 글에서 바로 이 영적 구원에 대해서만 취급하려고 한다.
Ⅲ. 구원의 근거(根據)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근거(根據)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구원’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구원’이 나무의 줄기라고 한다면, 그 나무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듯이 근거 없는 ‘구원’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근거에 대하여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과 여호와의 언약과 그리스도의 대속이다.
1. 하나님의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근거(根據)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다.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모든 만사와 만물의 장래에 대하여 주권적으로 결정하신 섭리에 따라 인간 가운데서 구원할 자와 버리실 자를 미리 정하신 섭리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만사만물에 대한 주권적인 작정섭리에 따라 인간 개개인의 구원과 버림에 대하여 미리 정하신 섭리를 말한다. 이것은 구원의 근본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창조된 만물을 어떻게 섭리하실 것인가를 기쁘신 뜻에 따라 주권적으로 결정하셨다. 그 결정 안에는 선택을 받아 구원 얻을 자와, 버림을 받아 멸망 받을 자가 미리 정해져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가 곧 구원의 근본적인 근거이다. 이 근거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엡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혹자들은 구원의 근거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믿지 않으면 멸망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을 섭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믿음 여하에 따라서 구원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섭리의 과정만을 보고, 그 근본 원리는 보지 못한 자들의 주장이다. 인간이 예수를 믿는 믿음도 인간 스스로의 의지적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작정섭리에 따라 구원하시기로 예정된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자들만이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는 반드시 그 예정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정섭리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불변적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에 의한 영원한 신적인 목적에서만 기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섭리에 따라 예정된 섭리는 인간이나 만물의 어떤 사정에 의해서 절대로 변동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가 구원의 근본적인 절대적 근거이다.( 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2. 여호와의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근거(根據) 가운데 또 하나는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여호와의 언약이다.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여호와의 언약’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모든 만사와 만물의 장래에 대하여 주권적인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에 의하여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으로 약속하신 사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언약에 근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자를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언약하셨다. 이 언약에 근거하여 언약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근거는 구원의 근본적인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지엽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작정에 따라 예정하신 섭리를 창세 후에 언약으로 계시한 것이다.
혹자들은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언약을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을 선물로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원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만사만물에 대한 작정에 따라 구원할 자를 예정하시고, 창세 후에 예정된 자의 구원을 언약하시고, 언약된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셔서 구원해 주신다. 따라서 여호와의 언약은 창세 후에 택자에 대한 구원 섭리의 출발점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여호와의 언약은 구원의 지엽적인 근거가 된다.
3. 그리스도의 대속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근거(根據) 가운데 마지막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의 죄를 대신 속량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 근거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따른 예정에 의한 언약의 실현이기 때문에 구원의 지엽적인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지엽적인 근거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섭리는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하여 언약하신 자들에게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그 효력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하여 언약하신 자에게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예정섭리에 의해 구원하기로 언약하신 자들의 모든 죄는 반드시 대속이 된다는 뜻이다.(마 20:28)
혹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죽은 자들이나 현재 산자들이나 장차 태어날 모든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생각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섭리의 효력이 온 인류 전체에게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만민이 다 구원을 얻는다는 ‘만인 구원설(萬人 救援說)’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합력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신인 합력설(神人 合力說)’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특히 ‘신인 합력설’을 말하는 자들은 인간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철저한 인본주의적 입장에서의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섭리의 효력이 온 인류에게 미쳐서 누구나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언약의 대상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함을 받아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예정섭리에 따른 언약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절대로 인간 편에서의 어떤 조건, 어떤 선행에 의한 공로나 업적 또는 노력이나 충성심 등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구원의 근본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이고, 지엽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여호와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섭리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근거와 지엽적인 근거들은 서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근본적인 근거에 의하여 지엽적인 근거 역할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에 의해 여호와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섭리가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는 구원의 근본적인 근거이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여호와의 언약과 대속섭리는 구원의 지엽적인 근거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창세 전의 사역이시고, 지엽적인 근거들은 하나님의 창세 후의 사역이시다.
Ⅳ. 구원의 특성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특성은 어떠한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구원’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구원’에 대한 오해는 그 특성을 정확히 파악치 못한 결과로 빚어진다. 구원의 특성은 구원의 근거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무 뿌리가 그 나무의 특성을 좌우하듯이, 구원의 근거가 그 구원의 특성을 좌우한다. 성경은 ‘구원’의 특성에 대하여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그 특성은 주권성과 은혜성이다.
1. 주권성(主權性)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특성 중에 하나는 주권성이다. 이는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절대적인 주권적 섭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의지적 행동이나 사물 및 사건 등에 의해 어떤 장애도 받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를 근거로 해서 단독적으로 섭리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구원할 자를 예정하시고, 그 예정을 근거해서 구원해 주신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주권성을 하나의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롬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혹자들은 타락한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대적인 노력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구원해 주려고 하시는데, 인간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구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부정하는 인본주의적 입장에서의 잘못된 주장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피조물은 모든 면에서 창조주에게 예속된 존재이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이 서로 상대적인 입장에서 행동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행 17:28)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힘입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육체의 어느 부분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살아서 몸을 가지고 존재할 수도 없다. 이처럼 전능자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능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섭리에 상대적으로 대응한다는 말인가?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단독 사역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작정 가운데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고 예정된 그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어 구원해 주신다.(엡 2:8)
2. 은혜성(恩惠性)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특성 중에 또 하나는 은혜성이다. 이는 구원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주는 은혜의 섭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의 의지적 노력에 의한 선한 공로나 인륜적인 덕행 등에 의하여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이는 구원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의 근본적인 근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구원할 자를 예정하시고 그 예정에 근거해서 구원해 주신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성을 하나의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엡 2:5)
혹자들은 타락한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대적인 의지적 노력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구원해 주려고 하시는데, 인간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를 부정하는 인본주의적 입장에서의 잘못된 주장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어떤 종교적 의식이나 행위를 통하여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종파에서는 교회 지도자가 종교의식을 통하여 은혜를 신자에게 분배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를 한다든가, 찬송을 힘있게 큰 소리로 부른다든가, 십일조나 헌금을 많이 헌납하면 큰 은혜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조건도 있을 수 없다. 조건이 전제된 것은 은혜가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은혜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주신다.
이상과 같이 구원의 두 가지 특성을 알아 보았다.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로 계시된 주권성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와의 언약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계시된 은혜성이다. 이 두 가지의 속성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하시는 섭리는 구원이 은혜의 섭리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확증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은혜의 섭리를 가능케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에 의해 여호와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한 은혜섭리가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예정섭리는 구원의 주권성에 대한 표현이며,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여호와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섭리는 구원의 은혜성에 대한 표현이다.
Ⅴ. 구원의 방법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방법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구원’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정보이다. ‘구원’에 대한 오해는 그 방법을 정확히 파악치 못한 결과에서 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그 근거에 따라 그 특성에 맞게 섭리된다. 성경은 ‘구원’의 방법에 대하여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신다. 그리고 그 부르신 자를 은혜로 대속하여 의롭다고 칭하신다. 그래서 그 의로운 자를 영화롭게 하여 구원해 주신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 택자를 부르심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방법 가운데 하나는 택자를 부르시는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택자를 부르심은 영원한 작정에 따른 예정을 섭리하신 주권성에 기초한다. 그렇기 때문에 택자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절대적인 효력을 발생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된 택자를 예정대로 구원하시려고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택자에 대한 부르심은, 택자의 소원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에 따라 그를 일방적으로 부르셔서 그로 하여금 이에 응하도록 하시는 것이다.(롬 8:28)
하나님께서는 택자에 대한 부르심 곧 소명(召命)과 동시에 중생(重生)과 더불어 회개(悔改)와 신앙(信仰)을 동반하도록 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택자를 부르심과 동시에 그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께로 마음이 돌아서게 하셔서, 하나님을 믿고 우러러 앙모하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택함을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효과 있는 부르심을 듣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시고 깨닫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이다.(행 28:27)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인간이 누구나가 자기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들을 수도 있고 듣지 않을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2. 의롭다 칭하심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방법 가운데 또 하나는 의롭다고 칭하시는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은혜성에 기초한다. 그렇기 때문에 택자에 대해 하나님의 의롭다 칭하심은 절대적인 효력을 발생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된 택자를 예정대로 구원하시려고 부르셔서 의롭다 칭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를 의롭다 칭하심은, 택자의 소원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에 따라 그를 일방적으로 의롭다고 칭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자를 의롭다 칭하심 곧 칭의(稱義)와 동시에 수양(收養)과 더불어 성화(聖化)와 견인(堅忍)을 동반하게 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자를 의롭다 칭하심과 동시에 그를 양자로 삼으시고 거룩히 변화되어 가게 하시며 끝까지 견고히 인내케 하셔서 구원을 얻게 해 주신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칭의에 의한 수양을 비롯한 성화와 견인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다. 그런데 혹자들은 성화에 있어서만은 하나님과 인간의 합력, 곧 신인합력(神人合力)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칭하신 자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그로 하여금 성화를 이루어 가도록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게 하시는 것이다.(갈 5:22 )
3. 영화롭게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방법 가운데 마지막 하나는 영화롭게 하시는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심은 영원한 작정에 따라 예정하신 주권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은혜성에 기초한다. 그렇기 때문에 칭의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심은 절대적인 효력을 발생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된 택자를 예정대로 구원하여 영생하게 하시려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칭의된 자를 영화롭게 하심은, 택자의 소원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에 따라 그를 일방적으로 영화롭게 하신다.(롬 8:30 )
하나님께서는 칭의된 자를 영화롭게 하심, 곧 부활과 동시에 영생과 영원한 기업(基業)을 누리게 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칭의된 자를 영화롭게 하심과 동시에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리게 하신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심에 의한 영생과 영원한 기업을 누리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섭리의 완성이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택자를 불러 의롭다 칭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택자를 부르심과 동시에 중생케 하셔서 회개하고 믿게 하신다. 그리고 의롭다 칭하심과 동시에 양자로 삼으셔서 거룩히 변화되며 끝까지 견고히 인내하게 하신다. 그리고 영화롭게 하심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주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모두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하여 섭리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방법에는 인간에게 요구되는 어떠한 조건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일방적인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섭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Ⅵ. 구원의 목적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구원’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한 정보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은 구원 그 자체가 근본적인 목적은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이 따로 있다. 일반적으로 ‘구원’에 대한 많은 오해는 그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결과에서 일어난다. 성경은 ‘구원’의 목적에 대하여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시는 것과 그 영광을 피조물로 하여금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전자가 근본적인 목적이라면, 후자는 지엽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하나님 영광 선포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 영광 선포이다. 이 목적은 궁극적이면서 근본적인 목적이다. 하나님의 영광 선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가지고 계시는 모든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어 계시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세계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근본적인 목적도 역시 하나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시는 데 있는 것이다.(시 19:1∼4)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 스스로 가지고 계시는 온갖 속성의 영광을 선포하신다. 인간의 구원을 창세 전에 예정하시는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성의 영광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구원을 언약하시고 그 언약대로 구원하시는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성의 영광을 선포하시고, 죄와 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택자를 구원하시는 섭리를 통하여 전능성의 영광을 선포하시며,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거듭나게 하여 부활시켜 영생을 주시는 섭리를 통하여 영원성의 영광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죄의 노예에서 건져 유업을 이을 아들로 삼으시는 섭리를 통하여 자비성의 영광을 선포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 스스로의 주권성을 비롯하여 신실성과 전능성과 영원성과 자비성의 영광을 온 천하에 선포하신다는 말이다.
2. 하나님 영광 찬양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목적 가운데 또 하나는 하나님 영광에 대한 찬양이다. 이는 근본적인 목적에 기인한 지엽적인 목적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섭리로 나타내신 영광을 구원 받은 자들로 하여금 찬양하도록 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세계의 지엽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지엽적인 목적도 역시 구원 받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스스로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시려는 데 있는 것이다.(시 149:1∼9)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 내용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으나 구원과 관련된 찬양 내용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예정하신 것에 대한 찬양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것에 대한 찬양과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에 대한 찬양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예정하신 것에 대한 찬양은,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한 자를 택하여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사실을 말한다.(엡 1:4∼6)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것에 대한 찬양은,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풍성하신 은혜로 자기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 기업이 되게 하신 사실을 말한다.(엡 1:7∼11) 그리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에 대한 찬양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 기업에 보증이 되어 주신 사실을 말한다.(엡 1:13∼14) 간단히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섭리에 대한 내용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구원 받은 성도가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시려는 것과, 지엽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원 받은 자로 하여금 찬양케 하시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시려고 구원할 자를 택하여 예정하셔서 구원하신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섭리로 선포하신 영광을 구원 받은 자로 하여금 찬양케 하신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자로 하여금 하나님 스스로의 영광을 찬양케 하시려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시려고 인간을 구원해 주셔서 구원받은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케 하신다는 말이다. 이러한 구원의 목적 달성은 모두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구원의 목적은 인간의 의지적 노력이나 방법으로 이룰 수 없다.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일방적인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단독적인 능력으로 이루시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섭리가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를 위한 스스로의 섭리이다.
Ⅶ. 맺는 글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간결하게 정리해 보았다. 하나님의 웅대한 우주적 섭리 가운데 한 작은 주제인 ‘구원’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리한 시도인줄 알지만, 하나님의 전 우주적 섭리를 전제하고 이해를 한다면, 주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성경적인 해답은 되리라고 믿는다.
성경적인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따른 예정과 그 예정에 의한 언약과 그 언약에 기초한 대속이 그 근거이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성에 의한 은혜성을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의롭다 하셔서 영화롭게 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시는 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따라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 영광을 찬양케 하시려는 데 지엽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결국, 구원은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뜻대로 계획하시고 스스로 이루셔서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시려는 섭리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엡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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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목사 (직전총회장/장안중앙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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