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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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펠라’(Shephelah)는 우리에게는 아주 생소한 명칭이다. 그러나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쉐펠라’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 몇 구절을 보면 이렇다.
“이제 너희는 방향을 바꾸어 길을 떠나 아모리 사람의 산지로 가되, 그 모든 인근 지역, 곧 아라바와 선지와 쉐펠라와 네게브와 해변과 가나안 땅과 레바논과 그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가거라”(신명기 1장 7절). “요단 서쪽 산지와 쉐펠라와 멀리 레바논 앞까지 대해 연안 온 지역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소식을 듣고” (여호수아 9장 1절). “그 후 유다 자손이 산지와 네게브와 쉐펠라에 가서 가나안 사람들과 싸웠고”(사사기 1장 9절).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쉐펠라에 있는 시카모어 나무같이 많게”(역대하 1장 15절) 등이다.
다른 성경에는 ‘평지’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바른성경에는 ‘쉐펠라’로 번역하고 있다.
‘쉐펠라’는 저지대 또는 구릉
‘쉐펠라’는 어느 특정한 장소의 명칭이 아니다. 그 뜻은 ‘낮은 곳’ 또는 ‘구릉’을 의미하는데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잊는 유대 산악지역과 팔레스타인 해안 평야 지대 사이를 일컫는 것으로 산악지대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서 붙여진 명칭이다. 쉐펠라는 대략 동서로 15-25㎞이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그 길이는 45㎞ 정도 된다. 그 해발 고도는 120-450m이다. 여호수아 15장 33절에 의하면 이곳은 유다지파가 차지하였다. 북쪽에서부터 아얄론, 소렉, 엘라, 구브린, 라기스, 아도라임 골짜기, 6개의 골짜기가 산악 지역의 서쪽 배수로 역할을 한다.
지질학적 특징으로 유대산악지역은 강한 석회암 백운석 지역으로 되어있는 반면, 이곳은 점토와 석회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이회토가 대부분이다. 계곡과 저지대는 모래를 함유하고 있으며 비옥한 곳이다. 그 이유는 지중해에서 불러온 비바람은 산악지역 서쪽에 비를 내려 침식에 의해 부드러운 토양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넓은 계곡은 농사하기에 적합하여 올리브, 포도, 무화과, 석류 등 성지에 적합한 작물들이 지금도 재배되고 있다. 라기스의 포도밭과 소고에서 바라본 엘라 골짜기, 특히 벧 구브린 지하 도시의 비둘기 집은 인상적이다. 비둘기 두 마리는 가난한 사람의 예물이었고, 비둘기 똥은 비료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성경시대의 여러 성읍들이 비옥한 이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고, 오늘날에도 농업을 주로 하는 상당수의 키브츠가 자리 잡고 있다.
여섯 개의 골짜기
쉐펠라의 중심 골짜기는 여섯 개이다. ①아얄론 골짜기-기독교유적지 탐사자들은 이집트를 경유해서 이스라엘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텔아비브 공항으로 도착하기도 한다. 이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지나는 곳이 아얄론 골짜기이다. 이는 아얄론 골짜기가 중요한 통로를 제공해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길은 게셀로부터 벧호론과 기브온을 지나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이다. 여호수아 10장 12절 “태양아, 너는 기브온에 머물러라. 달아, 너는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러라” 바로 그 골짜기이다. ②소렉 골짜기-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삿 16:4), 그리고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가 에그론을 거쳐 벧세메스로 돌아왔던(삼상 6:) 곳이다. 유다왕 아마샤와 이스라엘왕 요아스 사이의 접전이 벧세메스에서 있었다(왕하 14:8-14). 이 골짜기에는 벧세메스, 팀나, 에스다올, 소라 등이 있다.③엘라 골짜기-다윗과 골리앗이 일전을 벌였던 곳이다(삼상 17). 사무엘상 17장 1절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소집하여 전쟁을 하려고 유다 땅인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에 있는 에베스 담밈에 진을 쳤고”라고 적고 있다. 엘라 골짜기를 통해서 베들레헴으로 올라갈 수 있다. ④구브린 골짜기-유다왕 아사가 구스 사람 세라가 이끄는 백만 대군을 물리쳤던 곳인 벧 구브린(마레샤)이 있다(대하 14:9-15). 벧 구브린의 지하도시는 볼만한 곳이다. ⑤라기스 골짜기-쉐펠라에서 가장 크고 주요한 요새인 라기스가 위치하고 있다. 라기스는 여호수아가 가나한 정복당시 차지한 성읍으로(수 10:32) 블레셋 평야에서 유다 산지 헤브론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 공격에 앞서 라기스를 공격하므로 히스기야에게 조공을 받는다(왕하 18:13-16). ⑥아도라임 골짜기-‘아도라임’의 의미는 ‘두 구릉사이’로 이곳 쉐펠라의 지리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다.
완충지대(Buffer Zone)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미완의 과업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쉐펠라는 해안 지대와 산악지대를 완충지대 역할을 하였고, 이곳에서 수많은 전쟁들이 있었다. 특히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블레셋은 이 쉐펠라를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역대하 11장 7-10절에 “벳술과 소고와 아둘람과, 가드와 마레사와 십과, 아도라임과 라기스와 아세가와, 소라와 헤브론이니…”에서 르호보암이 쉐펠라에 요새를 견고하게 세운 이유는 해안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가는 통로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완충지대로 전쟁만 한 것은 아니라, 교류도 하였다. 사무엘상 13장 20절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각자 블레셋 사람에게 내려갔었는데”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페키지 성지순례에서 늘 쉐펠라는 생략되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