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왕자 올리브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호 14:6), “나 여호와가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렘 11:16)
우리말 성경에 감람나무로 번역된 나무는 이스라엘의 올리브나무이다. 감람나무는 우리말 성경이 중국어 성경에서 번역된 데서 기인한 표현인데, 실제로 이스라엘에 자생하는 올리브나무와는 다른 나무이다. 혹자는 감람나무를 ‘중국 올리브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몇 개의 나무 가운데 올리브나무는 ‘영광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성경에 종종 등장한다.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움 푸른 감람나무’ 같은 선지서의 시적 표현들은 영광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올리브나무에 대한 유대인들의 사고가 들어간 표현이다. 동물의 왕자를 ‘사자’라고 한다면, 나무의 왕자는 가히 ‘올리브나무’라고 할만하다.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왕이 되라 하매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삿9:8-9)
사사기 9장에 나오는 요담의 비유를 통해 올리브나무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고와 상징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요담은 기드온이 낳은 70명의 아들 가운데 막내이다.기드온의 통치를 통해 외적으로부터 안전함을 보장받은 이스라엘은 이번 기회에 기드온을 아예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지만,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선포하며 거절한다. 그러나 그 아들 대에 이르러 비참한 유혈극을 동반한 참사를 낳게 된다. 세겜 출신의 첩 사이에서 낳은 서자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고향 사람들을 선동해서 스스로 왕이 된 것이다. 히브리어로 ‘우리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을 가진 아비멜렉은 자신의 고향인 세겜에 찾아가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감정을 부추겨 손쉽게 왕이 되었다. 그는 한 바위 위에서 기드온이 낳은 70명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고 거사에 성공했지만, 막내인 요담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요담은 세겜의 남쪽에 있는 그리심산에 올라가 ’나무의 비유‘를 들며 아비멜렉을 왕으로 옹립한 세겜 주민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자신들의 왕을 삼고자 결의를 하고 가장 먼저 찾아간 나무가 바로 올리브나무였다. 나무들은 왜 올리브나무에게 가장 먼저 찾아갔을까? 나무들의 왕자로서의 위용이 요담의 ‘나무의 비유’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 올리브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기름을 버리고 스스로 왕이 된다고 어찌 요동하겠는가” 라며, 왕이 되어 달라는 나무들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계속해서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의 거듭된 거절을 거쳐 마지막으로 가시나무가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만, 이는 가시나무에서 나온 불로 인해 레바논의 백향목까지 다 타버리는 재앙을 낳고야 말았다. 이는 잘못된 왕을 선출한 세겜 주민들이 겪게 될 유혈극에 대한 예언적인 비유와 풍자가 되었다.
오랜 수명과 인내
올리브나무는 다른 나무가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식물학자에 의하면, 갈릴리에 있는 한 나무는 알렉산더대왕이 정복전쟁에 나섰던 주전 331년부터 생존했다고 하니 그 수령이 가히 2300년을 훌쩍 넘는다. 또한 예루살렘 동쪽의 올리브산 언덕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의 올리브나무들도 모두 수령이 1000년 이상된 나무들이다.
올리브 나무의 오랜 수명은 놀라운 면역체계에 기인한다. 메뚜기 떼가 공격해서 나무들을 갉아 먹으면 올리브나무는 독특한 화학성분을 합성하고 냄새를 분비하는데, 이것이 바람에 날려와 옆의 나무들에게로 옮겨진다. 이로써 옆의 올리브나무들은 메뚜기 공격을 막는 화학물질을 합성하기 시작한다. 먼저 공격당한 자신은 죽지만 옆의 이웃들을 살리는 비책을 알려주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다.
다른 나무가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인내하며 수천년을 견디어 내는 올리브나무는, 열방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끝까지 생존한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기도 한다. 2천년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통해 동화되지 않고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낸 이들의 민족성은 실로 올리브나무에 견줄 만하다. 특히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거치며 영원할 것 같던 독일의 히틀러제국은 패망하고, 멸절될 것 같던 이스라엘은 2차대전이 끝나고 3년 후 신생국가로 독립했으니, 오랜 수명을 자랑하고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 올리브나무라 칭해도 가히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올리브 꽃
“포도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욥15:33). 5월 경에 피는 올리브 꽃은 흰색의 아름다운 꽃을 만발하지만, 그 영광은 채 1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약한자들이 당하게 될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올리브 꽃이 피자마자 곧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올리브 열매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신24:20). 올리브는 초막절이 가까운 10월 경에 열매를 따는데, 하나님은 막대기로 가지를 때려서 열매를 따도록 명하셨다. 막대기로 때린 후(떤 후)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남은 열매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는 부가적인 명령도 주셨다. 고아와 과부는 혈연중심의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자들로서 사회적인 돌봄이 필요한 소외계층의 대명사로 쓰인 것이다. 흔히 소금에 절여서 먹는 피클용 올리브는 10월경에 따고, 올리브 기름을 짜기 위한 올리브는 한 달 정도 늦게 딴다. 그러면 어느덧 올리브 열매의 색깔은 녹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고 많은 기름을 함유해 기름짜기에 안성마춤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올리브 잎
“저녁 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창8:11)
올리브 잎은 앞면은 옅은 초록색이고 뒷면은 은색으로서, 산들바람에 흔들리면 햇빛에서 아름다운 은색으로 빛난다. 특히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감람산)은 올리브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는데, 서쪽으로 지는 석양에 비친 동쪽의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만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옅은 초록색과 은색이 조화를 이루며 흔들리는 올리브 잎의 색깔은, 오래 쳐다보아도 사람의 눈에 피로함을 주지 않는 가장 ‘자연친화적’인 색깔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의 성서주석인 미드라쉬에 올리브 잎과 관련된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사라에게 아이를 갖는다고 천사가 말했을 때 사라의 얼굴이 올리브 잎처럼 빛났다” 이 올리브 잎은 유대인들에게 평화와 화해를 상징하는데, 방주 안에 있던 노아에게 비둘기가 가져다 준 것도 바로 이 올리브 잎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