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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10-20 10:37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구습에 젖은 악습
구습(舊習)은 예부터 내려오는 낡은 습관이다. 악습은 나쁜 습관이다. 구습은 시간에 강조점이 있고, 악습은 인간에게 지목된다. 2000여 년 동안에 손꼽을 만한 구습이나 악습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을 먼저 던져 시간과 공간과 인간 등으로 그 문제를 연계시킨다. 구습이든 악습이든 모두 인간의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나오고 비롯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Custom is second nature)”는 큰 설득력을 지닌다. 구습부터 악습까지 모두 인간과 공간과 시간에 깊이 관계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악습을 간단히 분석한다. 이 세 가지에서 결국 인간이 그 중심에 있다.

첫째, 인간에 관계된 악습이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시기(猜忌)나 질투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인간은 아담이나 가인의 후예다. 본성 때문에 시기나 질투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기 이전에 속에서 이런 것들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마음에 품는 것은 대개 상대적인 욕심을 구한다. 하늘의 뜻이 아닌 것은 모두 인간들의 욕심이다. 우산 파는 사람이 비가 오도록 구하는 것과 짚신을 신은 사람이 갈망하고 간절히 구하는 마음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모든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욕심으로 꽉 차 있다. 이것이 죄인 된 인간들의 본질이다. 절대적인 하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해 아래서의 헛된 일이다. 바로 인간들의 상대적인 욕심의 표출들이다. 이러한 구습이나 악습이 새벽기도와는 무관할까? 개인이든 교회이든 새벽기도를 신앙의 수준과 연계하는 일들도 다반사다. 새벽기도를 구습이나 악습으로 아예 연결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인간들의 욕심을 구하는 새벽기도라면, 그 자체가 구습이나 악습이라는 점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이 시기나 질투는 빌미나 빙자 그리고 핑계 등으로 바로 연결된다. “그 인간 때문에”라는 핑계로 대개 많이 사용한다. 이런 자세는 자기의 잘못이나 실책은 보지 않고,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문명 가운데서 책임 전가를 하는 것보다 더 잘 발달된 것이 있을까? 인간들은 핑계의 명수(名手)다. 자동차의 충돌사고가 생기면 우선 큰 소리부터 치고 본다. 이 큰 소리는 핑계거리의 중요한 수단이다. 허울 좋은 명분 이면에도 핑계거리는 수없이 존재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에 핑계로 버틸 수밖에 없다.

둘째, 공간에 관계된 악습이다. 이것도 기본적으로 인간 중심적이다. 악습이 공간에 관계되는 것을 쉽게 찾아보면, 인간들의 속성은 장소에 따라 말과 행동들이 달라지는 점이다. “옷이 날개다(No woman is ugly if she is well dressed)”도 장소와 관계된 구습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옷도 사람 곧 인간 몸에 걸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공간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나 사고방식을 배제하고, 그저 입은 옷을 보고 판단하는 악습들은 여전히 상존해 왔다. 또 “너무 멀어서”라는 핑계를 많이 사용한다. 이 핑계는 위의 첫째와 깊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마음만 있으면”의 진의는 돈을 내는 것과 수고하는 것 등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은 위선자고 죄인이기에, 자기의 정당화나 합리성을 입증하려고 하는 것에 늘 급급하다. 얼굴을 같이 하고 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일들은 일상생활 속에 잘 스며들어 있다. 가상공간에서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온 카톡문화 공간에서, 비방과 악담 심지어 상대의 심한 명예 훼손 등을 망설임이나 주저 없이 쏟아내기도 한다. 공간에 민감하게 작용하는 인간들의 악습은 수없이 많다.

셋째, 시간에 관계된 악습이다. 위에서 언급한 새벽기도를 구습이나 악습과 연계하려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이것을 문제로 제기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공동문화생활에서 새벽 종소리를 아무런 의식 없이 내었던 과거의 전통에 문제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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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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