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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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9-08-06 20:01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책망이 사라진 강단
한국교회는 부흥사들이 부흥시켰고, 또한 부흥사들이 말아먹었다. 필자가 청년 시절이었을 때, 부흥회는 월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한 주간 동안 진행되었다. 으레 월요일 첫날 저녁부터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외친다. 이런 동일한 패턴이 수요일 저녁까지 계속된다. 죄를 회개해야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거의 공식화되다시피 했다. 그 시절의 부흥사들은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었다. 부흥사라는 특별한 사명감도 넘쳤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 사명으로 알고 생명을 걸고 외쳤다. 가끔씩 시선이 마주치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권위도 있었다.
필자가 부흥회에서 소위 은혜를 받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특활시간에 문학을 지도하던 선생님을 유난히 따랐다. 방과 후엔 선생님 집에서 저녁을 같이하는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저녁, 선생님 댁엘 들렀는데 선생님 혼자 술을 드시고 계셨다. 선생님은 때로 술은 어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내게도 술을 권하시기도 하셨다. 술기운이 약간 오른 선생님은 내게 사모님이 집을 나갔는데 아무래도 교회에 간 것 같다고 나더러 좀 찾아오라신다. 교회에 가면 있을 것 같단다. 부부싸움을 하신 모양이다. 그 동네에 감리교회가 하나 있는데 오늘 저녁부터 부흥회를 한단다. 나는 사모님을 찾으러 그 교회로 갔다. 크지 않은 교회인데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백여 명쯤 되었을까? 부흥사가 말한다. 자기는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할 것을 확신한다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 이유는 이번 부흥회 초청을 받고 도저히 올 수 없는 일정이었는데 아주 특별하게 시간이 되어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집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가 임할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카리스마에 끌려 사모님을 찾아야 한다는 임무를 잊고 집회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사울이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엉뚱한 일에 연관되었던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날 밤 난생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기도를 하고, 밤을 지나 새벽이 올 때까지 성도들과 함께 찬송을 하며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드렸던 적이 있다. 사모님을 찾아야 한다는 임무는 까맣게 잊고 말이다. 이런 식의 부흥회는 신학을 하면서 부교역자를 할 때에도 참여하는 기회가 많았는데 그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한국교회 부흥회는 이 같은 패턴이었다. 교회들은 봄가을 두 번씩 부흥회를 열었고, 이름난 부흥사들은 인기가 좋아 모시기도 어려웠다. 부흥사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런 시절이 지나가고 부흥회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로 짧아지기 시작했다. 1박 2일짜리 부흥회도 나왔고, 이틀 혹은 사흘간의 부흥회도 저녁에만 모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부흥사들 사이에 품앗이를 하고, 헌금 나눠 먹기식의 부흥회도 한다. 부흥회는 헌금을 잘 짜내는 사람이 자연 인기가 있다. 부흥회 기간이 짧아지고, 헌금이 강요되면서 설교는 자연히 기복적으로 기울었다. 죄를 지적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뿐만 아니라 물론 헌금도 적게 나온다. 이런 부흥사들은 인기가 없다. 그러니 자연 청하는 교회들도 적게 마련이었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일반적인 설교도 소망적이고 평안과 위로를 선포하고 현세적인 축복을 강조하는 설교가 대세를 이루었다. 교회는 스스로 의식하기도 전에 서서히 세속화의 길로 갔다.

프랜시스 쉐이퍼는 일찍이 현대교회는 사방에서 목을 조여 오는데 무엇이 목을 조여 오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폴 워셔는 그의 세 번째 기소장에서 현대교회 설교가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법정에 고소한다.
하나님이 왜 사람이 되셨을까? 성육신은 신비다. 신학적인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인간의 죄 때문에 오셨다는 것이 가장 분명하고, 명료한 답변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고, 그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12). 예수의 사명은 그의 이름이 잘 대변하고 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이 왜 사람이 되셨는가?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 어떻게 해야 사람을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는가? 죽음이 죄로부터 연유했기 때문에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피는 생명이다(신 12:23). 죄의 값은 생명으로, 피로 대신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죗값으로 죽는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치를 수 없다. 그래서 무한한 가치를 지니신 하나님의 피가 필요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므로 피가 없으시다. 하나님이 피를 흘리시기 위해서는 불가불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했다. 이것이 성육신의 직접적 이유이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죽음이 필요할 만큼 무겁고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죽으셔야 할 만큼 죄는 무섭고 무거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육체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앞에 새로운 살길을 여신 것이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려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를 믿음으로 그를 따라야 한다는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처음 1~3장에서 모든 사람을 정죄한다. 바울의 신학에서 정죄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수단으로 제시된다. 한국교회 초기의 부흥사들은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꺾으실 때까지 그들의 마음을 갈아엎고, 갈아엎고, 또 갈아엎었다.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대체로 죄를 너무 피상적으로 다룬다. 이것은 성령을 대적하는 일이다. 많은 유명한 목사들은 영원한 생명보다 ‘지금 우리에게 최고의 삶’을 주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설교에서 죄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거나 혹은 어느 유명 목사의 고백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싫어하는 그런 설교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통곡한다. 폴 워셔는 “죄에 대하여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둑”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타락에 대해 가르치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주의 십자가를 영화롭게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은 인간의 부패를 배경으로 할 때 가장 찬란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에서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들은 별로 인기가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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