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22일 (화) 

> 오피니언 > 시론 >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XXXI
기사공유 작성일 : 20-03-01 08:32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론’ 회복하기 1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18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29:17-19)

인용한 본문은 남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3차 침략을 받아 완전히 패망 당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본문은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시작한다. ‘만군의 여호와’는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 사역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본문은 정말로 무서운 전쟁을 섭리하시는 현장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는 곳이라고 매우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내가’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유다 침략 방식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상세하게 정하고 계신다. 바벨론의 칼날에 죽고, 칼날을 피한 자는 기근으로 죽고, 기근에 살아남은 자는 염병으로 진멸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거듭해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준비해 놓았다고 강조하신다. 그리고 18절에는 언약 자손인 남유다를 그렇게 처참한 심판 상황에 두는 까닭을 밝힌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가 남유다 백성을 잡아간 사람들에 의해 남유다 포로들이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를 당하게 하기 위함이다.’ 칼에 죽고, 기근에 죽고, 전염병에 죽고, 포로에 잡힌 자들은 이방 민족에게 저주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들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지 그저 경악할 뿐인 상황이 전개된다. 만군의 여호와는 이 상황에서 남유다를 편들거나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 백성에 의해 남유다 백성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온갖 수모를 당하게 하신다.
그런데 19절은 만군의 여호와께 남유다가 처참한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 까닭을 알려주신다.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의 말을 남유다가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지자들이 전한 말은 남유다 백성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남유다를 침공해 온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고 그 왕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남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비롯해 모든 신하들은 항복하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를 죽이고자 했다. 불순종의 결과는 참담하게 이루어졌다. 만군의 여호와의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연이어 뒤따랐으며, 이방 대적들은 저주받아 놀라고 있는 남유다 포로를 조롱하고 온갖 수모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남유다의 범죄에 이은 패망과 이어지는 남유다의 수치 과정은 역사의 ‘표면적 사건’이다. 더 깊고 넓은 역사 해석이 필요하다. 남유다의 우상숭배와 선지자의 말씀을 거역하는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작정하신 뜻을 분명하게 성취하셨다는 것을 확증하는 과정 중 하나다. 표면적으로 볼 때 남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고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 징벌로 바벨론이 남유다를 침공하게 하셨다.
그런데 성경은 남유다의 불순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천을 알려준다. 남유다가 최종 망한 시기는 기원전 586년경이다. 남유다의 불순종과 포로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로부터 900여 년 전 모세 시대에 이미 확정되어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범죄하며 이방 대적들에게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한 바 있다.(렘 27장과 28장 참조) 따라서 남유다의 범죄와 바벨론 침공의 인과관계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언약하신 것을 이루시는 시간 역사의 분명한 증거로 이해해야 한다. 남유다의 범죄와 바벨론의 침공 그리고 포로된 남유다의 고난과 수치는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 역사 섭리에 대한 주권과 심판을 계시하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중요한 부분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과정에 그 세세한 방법(칼과 기근과 염병)까지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 두고 있다는 점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방 대적에 의한 남유다에 대한 살육과 아사(阿闍)의 참혹한 현장과 염병의 확산으로 인한 참담한 죽음은 불의한 인간 본성과 유한한 인간의 상상력과 이해력으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으며 함부로 입조차 열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록되고 전해지는 인류 역사의 모든 사건들에 대해 피조물인 인간의 판단과 이해력 속에 집어넣으려는 역사 해석의 어떤 틀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오만함이 지배할 때가 많다. 인간 역사를 인간 스스로 이해하려는 몸부림이야 같은 인간으로서 백 번 공감한다. 하지만 그 해석의 틀을 인간이 납득하는 선에서 ‘객관적’이라고 평가하는 순간, 역사의 유일한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신뢰는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역사의 어느 한순간도 인간의 인식 틀 속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엄하고도 세밀한 주권적 통치의 틀 속에서만 역사는 해석될 수 있는 실마리가 주어진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엄중한 역사 섭리에 대해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비난하는 것은 피조물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한 번도 주일 모임을 중단했던 적이 없던 많은 한국 교회가 근래 ‘예배당 폐쇄’라는 초유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한 것도 아니고 계엄령이 내린 것도 아닌데 성경진리를 배울 수도 없고 보고 싶은 형제와 자매도 만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도 신앙의 선배들은 일본 순사의 총검을 보면서 생명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다. 6·26 전쟁 중에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피난지에 모여서 각자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간구하고 또 간구했다. 홍수와 산불 같은 자연재해로 삶의 뿌리까지 뽑힌 지경에도 성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당에 더욱더 모였다. 그런데 소리 없는 자객(刺客)처럼 등장한 전염병 바이러스의 침공은 신앙생활의 모든 여건을 바꾸어 놓고 있다. 정말로 국가적 위기 상황이며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한국 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가 코로나19의 폭발적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받으면서 국민의 공분은 신천지 폐쇄라는 수십만 건의 청와대 청원까지 쇄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판단을 종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눈과 귀에 듣고 보는 것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다름 아닌 세계 역사와 인류의 생사(生死)와 화복(禍福)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근래 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신천지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포교로 인해 한국 사회까지 적잖은 혼란이 초래되는 상황이다. 성경진리를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성도들은 이러한 표면적 사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몸만 죽이는 바이러스가 아닌 영혼까지 병들게 하고 가족의 안방까지 은밀하게 기어들어와 가족까지 혼란에 빠지게 하는 온갖 이단들에 대한 진리투쟁은 더 가속화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어느 때보다 성경진리 사수라는 본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지혜로운 방법으로 성경진리를 올바르게 안전하게 전해야 할 때다. 감염 사태에 대한 대처도 너무 중요하지만 아울러 위기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앞서 성경 본문에서 보았듯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가 하고 있다’고 선포하신 진리를 거듭 확인하여 전하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삶의 위기는 인간 상식 너머의 창조주와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더욱 필요로 하게 한다. 손으로 입을 막을 수밖에 없는 참담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서는 주권적 방법으로 역사를 섭리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에 대한 분명한 지식은 더욱 절실하다. 단순 지식 정보가 아니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영적인 진단과 처방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건전한 성경 교사의 사명을 다해야 할 목회자들은 폐쇄된 예배당 상황을 핑계 대지 말고 어느 때보다 더욱 분명한 성경진리의 말씀을 현명한 모든 전달 수단을 동원하여, 24시간 방역하고 치료하며 질병과 싸우고 있는 의료기관 종사자들보다, 더욱 진리 사수에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시 신앙의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1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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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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