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22일 (화) 

> 오피니언 > 시론 >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XXXII
기사공유 작성일 : 20-03-18 19:13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의 심판론 회복하기
1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벧후 2:1-3)


이 성경 본문은 거짓 세력의 등장과 멸망이 하나님의 작정된 심판 섭리임을 잘 보여준다.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의 등장은 교회 역사 섭리에서 필연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천국 비유를 통해 자신이 지상에 세울 천국 즉 주님의 몸 된 교회 역사에는 마지막 심판까지 알곡을 훼손하는 가라지 확장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약속한 바 있다.(마 13:40)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알곡만을 심었는데 가라지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기란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가라지가 자라는 과정 즉 악의 세력이 번창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창조주와 심판주이신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의문이나 이의제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비진리가 더 성황을 이루고 바른 진리가 도리어 외면당하거나 배척당하는 광경을 숨죽이고 마냥 지켜보며 견디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더 힘들어지는 것은 비진리가 진리를 지배하는 참담한 상황이 반복하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마저 몰려온다는 점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 은혜임을 수백 번 반복하며 찬양하던 것도 순간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질 지경으로 몰려가기도 한다.

이러한 절망적 정황은 다름 아닌 초대 교회 상황부터 재현되고 있었다. 로마 제국과 유대인들에 의한 교회 핍박은 너무도 극심하여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여전히 살아계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이 맞는지 점점 희미해졌다. 예루살렘 멸망 전후로 전쟁과 기상 이변과 기근에 대해 로마제국주의자들과 유대인들은 그 책임을 기독교인한테로 떠넘겼으며 십자가 처형의 참혹한 역사는 사도들이 세운 교회들의 뿌리까지 근절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약속 ‘다시 곧 오겠다’(행 1:11; 계 22:20)는 희망은 점점 절망으로 변해갔다. 믿음의 시종(侍從)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명제는 단지 기록된 문자로만 분명하고 교회가 받은 고난과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일이 벌어지면서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환란이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엄습했다. 외부의 핍박, 내부의 배신과 반역, 비진리의 득세는 초대교회 사도들과 그 제자들이 설립했던 모든 교회가 처한 상황이었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을 볼 때 초대교회 역사는 교회의 수난사 내지 진리 배반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인간들은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한다. 노아 시대처럼 노아 가족이 보는 앞에 일어났던 물심판과 같은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나거나 출애굽 시대 하나님이 보낸 지도자 모세의 명을 따르지 않은 바로왕에게 임한 무시무시한 재앙이 당장 우리 눈앞에 일어나면 하나님도 믿을 수 있고 대적도 벌을 받으니 얼마나 좋겠냐고.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인간의 죄 된 본성과 꼼수를 너무 피상적이거나 낙관적으로 여기는 순진한 생각이다. 단적인 예로 보면, 아브라함 시대부터 2천 년 동안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유대인들 눈앞에 나타났다.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러운 광경인가? 하지만 일어난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대교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 헤롯왕과 로마 군인의 연합 세력은 ‘하나님의 아들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신이 아닐 때 힘을 합해서라도 자신의 주인인 하나님마저도 죽이려고 한다. 인간의 죄인 된 본성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적 이유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총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육신의 생명으로는 분명 운명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 거룩한 속성은 창조주와 심판주의 능력을 여전히 가지고 계시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의 몸을 죽음의 권세에 ‘내어주신 것’이다. 힘이 없어서 목숨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는 천국의 왕으로서 자신의 통치력을 행사하신 것이다. 죽음의 권세에 대한 관리·감독권과 심판권을 자신의 몸으로 감수하면서 분명히 그 악의 세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적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러한 통치 방식과 사망 권세에 대한 심판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난과 고통, 비극과 죽음을 하나님 존재 중심으로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앞서 인용한 본문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세력을 얻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들은 진노와 멸망의 길로 가고 있으며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의 핏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속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악행을 일삼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이들이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음란과 색욕(色慾)의 수단으로 삼을 만큼 간교하고 더러운 자들로 드러난다. 베드로는 이렇게 드러난 더러운 거짓 선생에게는 ‘이미’ 옛적부터 준비된 심판과 멸망이 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자기 보존 본능과 편견과 욕심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심판은 보이지 않고 아무리 말을 해도 무소용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보면 지금도 하나님의 심판 역사는 분명하다. 인간 중심적 판단이 성경 진리에 의존하는 상황을 지배하면 도무지 하나님의 심판은 듣기도 보기도 싫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문자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심판을 아는 충분조건도 아니다. 성경이 눈앞에 있고 펼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는 일에 단지 필요조건일 뿐이다. 읽는다고 하나님의 심판이 다 보이고 다 믿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보혜사 성령의 주관하심이 성도의 전 인격을 사로잡을 때 가능하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절박한 순간도 하나님의 엄격한 심판이 이미 임하고 있다는 확신은 하나님의 주권과 무한한 은총의 결과다. 거짓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창조부터 최후 심판까지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와 명철의 지배를 받을 때 그 진리를 알 수 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 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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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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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론 회복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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