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 21일 (수) 

> 오피니언 > 시론 >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XLVII
기사공유 작성일 : 21-02-22 21:43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 계시(啓示)의 엄중한 역사관
9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 (……) 13 이스라엘 족속이 (……)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의 위에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 25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26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니라(겔 20:9,13-14,25-26)


남유다의 멸망은 바벨론제국의 세 차례 침략으로 진행되었다. 적어도 몇 개월 정도면 충분히 멸망시킬 예루살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거의 20여 년 동안(주전 605년-586년) 침략당하도록 섭리하신다. 표면적으로 보면 남유다가 침략당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버리고 배반하였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섬기도록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인 왕, 제사장,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가증스러운 이방의 우상들을 자기도 숭배할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강요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질 필요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한순간 끝날 남유다의 멸망을 세 명의 왕(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이 분명하게 똑똑히 보게 하신다. 그것도 ‘칼과 기근과 염병’(렘 14장부터 44장까지 지속적인 경고가 나옴)이라는 가혹한 방법을 예언대로 어김없이 집행하면서 멸망을 섭리하신다. 왜 이렇게 하셔야만 하는가? 아무리 범죄했다고 하더라도 무한한 은혜로 선택한 이스라엘 특히 남유다 국가인데 이렇게까지 멸망시켜야만 하는가? 이러한 역사 섭리에 대해 상실한 마음의 반발심까지 솟구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기독교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을 보면 이러한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그때마다 ‘도대체 왜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까지!’라는 질문을 달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참혹하고 비참한 일은 북이스라엘이 일순간 망하듯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것이 좋으련만 여호와의 이름이 보존된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 나라를 왜 그렇게 치밀하고도 처참하게 멸망시키며 그 백성들이 두려움 가운데 진멸당하도록 섭리하셨는지 새기고 새길수록 두려움이 가중한다. 서양의 많은 기독교 역사가조차도 이러한 하나님을 매우 잔인한 이기적인 신으로 규정한 지가 오래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나 신학자는 구약 성경을 기피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아니면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무관한 그들의 역사로 치부한다. 이러한 태도의 저변에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인간의 합리적 이성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다는 절망과 좌절이 깔려 있다.

그런데 만약 여호와의 신적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이라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으로 결코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아닌가? 성경을 대할 때는 반드시 인간중심적 판단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해석의 엄격한 원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인간의 도덕적 감정이나 상식적 추론과 예측이 해석 원리로서 부적합하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읽고 해석할 가치가 없는 책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오직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해석’을 하든가 둘 중의 하나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를 경외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는 물론 후자에 속한다. 그렇다면 성경 해석의 방향이 얼마나 여호와 중심적이어야 하는지 앞에서 소개한 성경 본문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남유다 멸망의 역사적 배경은 앞서 잠시 살펴보았으므로 아래에서는 앞서 던진 질문과 관련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유다 멸망 사건에서 900여 년 전 출애굽 사건을 거론하신다. 그런데 출애굽의 목적이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하신다. 바로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9절) 출애굽시켰다는 것이다. 언약 자손에게 여호와는 의미상 (열조와) ‘언약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존재’라는 뜻이다. 이렇게 정의하면 출애굽이라는 구속 사역도, 언약과 성취의 역사도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목적은 ‘여호와의 존재 계시와 그 능력의 확증’이다. 물론 그 존재의 영광스러움과 신적 속성의 위대함은 인간의 상상과 추론, 예측과 판단을 넘어서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호와 계시는 본질상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것이므로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의해서만 전달 가능하며 수용 가능하다.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 특히 1-3계명은 여호와의 존재와 그 이름과 직접 관련된다. 1-2계명은 여호와만 절대자 유일신이심을 천명하며 결코 이방의 우상처럼 어떤 형상으로도 나타내지 말라는 엄격한 조항이다. 그리고 제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고 하신 내용이다. ‘망령’의 히브리어는 ‘샤유(shaw)’라는 말로 ‘공허’나 ‘허무’, ‘거짓’을 뜻한다. 여호와께서 수립하신 언약을 공허하게 만들거나 성취하지 않는다고 거짓을 유포하는 범죄 행위가 망령죄다. 이 망령죄를 범한 자들이 바로 택한 민족 남유다 백성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남유다가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고 범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여호와께서 그렇게 작정하신 것이라고 알려주신다.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준 계명은 그들이 지킬 수 없는 “선치 못한 율례”였으며 “살게 하지 못할 규례”(25절)였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놀라운 말씀을 해 주신다.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니라.”(26절) 남유다를 멸망시키는 목적이 바로 여호와의 존재를 알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멸망하는 최악의 사태에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매우 엄중한 말씀이다. 내 자신, 우리 가족, 내가 속한 지역 사회 나아가 내 나라 내 민족이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보편적 인간들에게 그것들이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여호와 계시의 엄격함이 있다. 언약하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절대자 여호와의 이름을 보호하여 전달하고 깨닫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여호와 그분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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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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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大敵) 심판으로 여호와를 알게 하심
성경적 공정분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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