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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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9-07-11 21:45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사랑의 정의에 대하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인용한 글은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게 된 사도 바울이 사랑의 정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성령께서 ‘여호와 계시’를 위해, 바울로 건덕의 복음으로 교회 일치의 자세에 대해, 사랑의 절대적 중요성과 구체적 행위에 대해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솔로몬으로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린다고 말씀하셨다.(잠10:12)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따른 언약이 성취되는 역사적 사실로,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성령께서 믿어지게 하고 깨닫게 하므로 진정한 사랑이 싹트게 되고, 그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기독교 윤리의 기초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다. 나는 책을 엎어두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전에 읽었던 느낌과 달라서 그랬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을 때, 그때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쩔쩔매면서 부정적 감정의 무게를 견디려고 성경을 폈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이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글이 눈을 찌르듯 다가왔다.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견디는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이니까 무조건 내가 참아야 덕이 되는 줄로 알고 그 길었던 날들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한 자만이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기쁨을 상실해 버리면 사랑은 파괴가 되어 진다. 그래서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자기 인격을 가다듬어 가게 하면서 오래 참고 견디게 만든다. 그 사랑은 한없이 온유하고 부드럽다. 그리고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로 이어진다. 부부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다. 그런데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는 데서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자들이 자기 친정을 자꾸 자랑하다 보면 싸우게 되고, 또 남자가 자기 집을 내세우다 보면 다투게 된다. 그래서 자랑은 사랑을 금가게 만들고 서로 다투는 결과를 가져오게도 한다. 뿐만 아니라 교만은 서로 기 싸움이다. 서로 자만에 빠지는 것 역시 사랑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는 것, 전부가 다 상대적인 이야기다. 예의에 벗어나지 않고 서로가 상처를 입지 않는 관계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다. 그렇지만 상대를 자기 이용물로 생각하는 데서 사랑은 역시 금이 간다. 그래서 남녀가 결혼할 때에도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상대를 통해서 자기가 행복을 구하려는 자체가 자기의 유익 추구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는 그런 마음을 말한다. 또 성내는 것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다가 유익달성이 안 될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데서 역시 사랑은 망가지게 된다. 그리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 악한 것이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선이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롭지 못한 것도 하나님 뜻과 배치되는 부정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함께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사랑이다. 가장 농도 짙은 표현이다. 나만 즐겁고 너는 안 즐거우면 사랑이 아니다. 함께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관계다. 사랑을 기초로 교제하고, 믿는 것과 아는 일이 같고, 모두가 평안해야 화평이 이루어진다. 상대를 비판하고 간섭하고, 시기 질투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다. 그러니까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말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좋은 것, 참된 진리를 함께 좋아하게 되면 사귐이 있고, 친구가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게 건덕으로 세워지는 교회 모습이요, 역시 가정교회의 모습이다. 가족 간에 서로 믿음이 다르고 바라는 소망이 다르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없을 때 생기는 기쁨의 상실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사랑을 바탕으로 세워지지 않는 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 진리를 모르면 성도들로 하여금 어떤 욕망을 갖게 하고, 그 욕망이 채워지도록, 교회에 충성 봉사하지 아니하면 소원이 안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접근이 된다. 그렇게 되면 외형적으로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교회 형태를 갖추어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열심을 내니까 그것이 겉으로는 사랑이 풍성한 교회 같지마는, 성령께서 세워가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기쁨의 상실은 인간관계도 멀어지게 되고, 사랑이 없는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의 공덕을 쌓게 되고, 사람 앞에서 선량한 모습을 보이는 거짓된 착함이다. 흔히 말하는 도덕은 사회 규범에 의해서 인간으로 행위를 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적인 정책과 수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행복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사랑해진다.

성령께서 나로 하나님의 참뜻을 깨달아 알게 할 때마다 세상에서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여호와 하나님 살아계심이 분명하고, 감사와 찬양은 물론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만족하여 더 바랄 것이 없게 만든다. 그보다 큰 사랑이 어디 있을까. 정말 천금보다 값진 사랑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다. 말씀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이 은혜요 선물이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또는 우리가 당장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모든 것인 양 행세하며 자기의 공로를 세우게 하는 삶이었다면 그게 얼마나 알량한 행복인가. 행복이고 사랑이고 죽도 밥도 아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살기에도 우리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

행복의 결과는 사랑이다. 행복한 자는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란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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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미정 권사 (광주산수서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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