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6일 (월) 

> 학술 > 철학 > 성경신학으로 보는 니체 평설〈13〉
기사공유 작성일 : 20-09-02 20:28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고대 그리스 국가법의 허구적 이상: ‘모든 소유를 공동으로 하라
‘일등국가, 일등 헌법, 그리고 최선의 법률은 가능한 한 온 국가 안에서 옛 격언이 성취되는 곳에서 존재한다. 이 격언은 친지들의 소유는 실상 공동의 소유라는 것이다. (……) 부인들은 공동이고, 아이들도 공동이며, 모든 금전의 소유도 공동이다. 그런데 만약 온갖 수단이 동원되어 사유 재산이 모든 관계의 삶에서 추방되고, 그런 가운데서 본성적으로 고유한 것 역시 가능한 한 어떻게 해서든 공동 소유가 되도록 조처가 이루어진다면, (……) 그래서 결국 법률이 국가를 가능한 한 하나로 만든다면 (이 공동체에서 탁월한 자들의 경우) 결코 아무도 덕과 관련된 법률의 우수함에 다른 규범을 설정함으로써 더 옳거나 더 나은 규범을 설정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발췌문은 바젤대학 문헌학 교수 니체가 플라톤 연구를 진행하면서 인용한 부분이다. 주전 4세기경 지중해 반도를 여행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와 그 국가를 위한 법률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플라톤의 국가관과 법률관 중 핵심 부분이 단적으로 드러난 내용이다. 고대 국가의 생활과 현대 국가의 생활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지만, 국가와 법률에 대한 관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국가와 법률의 문제가 전국민적 관심 사항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현대 정치철학의 이론적 토대를 놓기도 했던 니체의 소개 내용을 통해 정상적인 국가의 정당한 법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아가 기독교인으로서 이 세상 정치에 매몰당하지 않고 성경진리에 바탕을 둔 하나님 중심의 국가관과 법률관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플라톤이 여행했던 시대는 수많은 부족들이 섬들을 중심으로 각각 자기 왕국을 형성하며 살았던 시대다. 국가의 기원을 뒷받침하려는 다양한 건국 신화와 지배자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제정된 다양한 법률, 국가 이념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고립되어 있던 시대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힘 있는 부족 국가에게 언제 점령당할지 내일의 국가 운명을 알 수 없는 시대였다. 오늘의 지배자가 내일 아침 노예로 전락하고, 오늘의 노예가 대장군으로 격상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렇게 당시 지중해 연안 도서(島嶼)의 많은 부족 국가들은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질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필요한 법과 제도를 만들거나 모방하고 있었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하던 플라톤 시대에 거론되는 부족 국가는 당시 세력이 막강했던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다. 플라톤은 이러한 나라를 보면서 자신의 이상국가, 철학자가 중심이 되는 이상국가의 법률을 구상했던 것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은 상상에 의해 도출한 나라, 이데아 국가를 이 세상에 영원한 국가로 만들고자 법률을 제정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가 운영하는 국가를 위한 법률 제정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개개인의 인권이나 자유는 아예 배제했던 법률을 구상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의 운명이 다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국가에 대한 배상을 신청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플라톤의 발상은 현대 사회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발상이다. 그렇다고 현대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고대 국가보다 훨씬 발전시켰다고 인정만 하기에는 어리석은 판단이다. 현대 국가 중에 과연 얼마나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정책과 제도를 고민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제시하기 거의 어려울 것이다.
상상의 국가를 현실의 국가로 무리하게 이식하려는 플라톤의 법률을 살펴보자. 플라톤이 구상한 일등국가를 위한 최선의 일등 헌법은 ‘공동 소유’다. 개인을 위한 어떤 것도 결코 정당화할 수 없으며 그것은 곧 죄악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국가를 개인의 이기적 도구로 사용하려는 자는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자가 된다. 하지만 플라톤이 소개하는 ‘공동 소유’는 현대 국가에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즉 부인과 아이와 금전의 공동 소유다. 이 경우 사유 재산 개념은 죄악이며 이것을 철폐할 때 국가는 하나의 통일된 완벽한 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욕구와 주장은 오직 국가라는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할 때에만 가능하다.

현대 국가의 기준으로 보면 플라톤의 이러한 생각은 정말로 악의적인 발상이다. 아무리 내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자발적 의사를 짓밟고 법적 강제 장치를 적용하여 국민을 방패막이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상국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려는 플라톤의 가정, ‘법률이 국가를 가능한 한 하나로 만든다면 (……) 결코 아무도 덕과 관련된 법률의 우수함에 다른 규범을 설정함으로써 더 옳거나 더 나은 규범을 설정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플라톤 당시 법률이 국가를 하나로 만들었을 때 그 법률에 국민 개인의 의사를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플라톤의 발상에 대해 조건을 ‘만약 국민의 의사가 대다수 반영된 법률이라면’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플라톤의 명제는 현대 사회에도 적용 가능한 판단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현대 국가가 과연 그 법률과 제도를 대다수 약자인 국민 개개인의 욕구를 과연 얼마나 충족시켜 줄 수 있느냐에 있다. 대다수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이 말은 국민 중심의 훌륭한 복지국가일수록 더욱 철저하고 엄격한 법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배경이 된다. 예를 들어 복지 선진국이라는 북유럽, 독일, 스위스 등 이 나라의 법률은 매우 엄격하다. 그리고 일인당 세금은 우리의 경우와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높다. 만약 그것이 싫다면 그 나라를 떠나야 한다. 그러나 떠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나라가 좋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보다 다른 나라가 더 나쁘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 이렇듯 국민을 위한 복지제도에 많은 비중을 두는 국가일수록 그만큼 개개인의 자율성은 더욱 통제받아야 한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모순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성도(聖徒)의 고민이 더 깊어진다. 지금의 혼탁한 세상, 국가 운영이 순식간에 흔들리는 시대,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미래 희망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 가족과 이웃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나날들, 타인에 대한 증오심이 극도로 증가하는 하루하루, 국민 분열이 어느 나라보다 더 첨예하게 드러나는 이 시대 우리나라, 우리 성도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명확하고 분명한 ‘영원한 국가의 원형’이 필요하다. 불안하게 진행되는 사회 정치적 상황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신앙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나라, 하지만 분명히 국가의 원형인 나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과 본질 파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성경진리에 더욱 다가가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언론과 방송의 짜깁기 보도에, 진실 여부를 분간하기 어려운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우리의 영혼을 매장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분명 확증해 주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분명히 남겨주셨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속에서도, 노아의 대홍수 속에서도, 광야 40년 사막의 한 가운데서, 예루살렘 멸망 속에서도, 국가가 사라지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동일한 지식과 신앙을 함께 하는 지체가 존재하는 귀한 세상임이 틀림없다. 어느 시대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며 이를 (비대면 방식의 모든 배력 방식으로) 지체와 소통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성경진리에 전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 이것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중요한 지혜라고 본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3-16)

<197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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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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