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20일 (수) 

> 학술 > 철학 > 성경신학으로 보는 니체 평설 〈15〉
기사공유 작성일 : 20-11-27 20:36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고대 그리스 철학의 허구 1: 플라톤이 신으로 만든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자기는 연인에게 헌신하듯 철학에 헌신하기에, 철학이 말하는 것에 따르고 복종해야 한다.

니체는 바젤대학교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면서 플라톤의 저서에 대해 진위 여부를 알아보는 검증을 한다. 그리고 플라톤 전집의 진위 논쟁에 자신도 뛰어들어 그 내용을 분석하면서 문헌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사실 고증뿐만 아니라 내용상의 유사점과 차이점, 모순으로 드러나는 부분들을 문헌학자로서 면밀하게 살핀다. 19세기 말 독일 문헌학계의 이러한 풍토 속에 성경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특히 신약성경에 대한 텍스트 해체 작업을 실제로 진행하여 성경은 인간의 문서가 되기도 했다. 루터교의 성경 절대권위 문화에서 자란 니체의 환경을 생각하면 플라톤 문헌에 대한 진위 여부 검증은 니체에게는 성경 본문 자체와 그 문학적 양식에 대한 비평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니체의 텍스트 분석과 요약 기술, 문헌 자체에 대한 평가의 실제는 바젤대학 교수 시절 고대 그리스 사상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 기록했던 요약에 보면 잘 나타나 있다. 문헌학자의 기술을 통해 철학의 근본을 고민하는 니체의 생각을 따라가 보고 니체를 통해 향후 서구 기독교 사상을 혼탁하게 만든 플라톤을 포함한 고대 그리스 사상을 개관해 보고자 한다.

앞의 인용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철학의 본질을 말하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듯 철학의 요구에 헌신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철학자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늘 진실한 고백을 하는 고민하고 가르치는 ‘지혜(sophia)를 사랑하는 자(philos)’(philosophy)였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철학 공부는 언어를 다루는 기술과 직결된다. 특히 논쟁과 변호의 달인이 되는 것과 철학자가 되는 것은 분리할 수 없다. 그래서 유년기를 거치면서 사회에 나가기 전에 삶의 기술로서 언어 사용의 숙련공이 되지 않으면 신체는 어른이 되었다고 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미숙아일 뿐이다. 그런데 플라톤이 볼 때 철학자 교육을 받고 제대로 성숙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평가하는 척도가 있었다. 바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모든 대화편에 근본 ‘주어’로 등장하는 인물로 영원한 진리의 척도이기도 하다. 가령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 “오로지 철인만이 의사로서 국민을 위해 좋은 것을 의도합니다. 웅변가는 아첨가입니다.”(185)를 소개하는 것을 보면 소크라테스와 말 잘하는 일반 웅변가는 결코 혼동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니체의 비판은 그것이 소크라테스의 본래 생각인지 플라톤이 만든 소크라테스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니체가 볼 때 플라톤이 정리하는 고대 그리스 사상의 절대 기준은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에 담겨 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말을 인용한다. “현재 진정한 치도(治道, 다스리는 도리나 방법)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다. 내가 언젠가 법정에 소환되면 내 처지는 어린아이들 가운데 있는 의사와 같을 것이다. 그를 고발하는 자는 주방장이 될 것이다.”(184)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청년들을 교육하는 것을 반대하고 고소하는 자들이 바로 주방장일 것이라고 한다. 음식을 만들어주는 주방장은 자신들이야말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볼 때 아이들의 육체를 관리해 준다고 그들을 제대로 양육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의사가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돌보듯이 영혼을 관리하는 의사인 철학자는 결코 주방장이 할 수 없는 것, 도덕적 성품과 정교한 언어 사용 기술 그리고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는 생각의 기술을 가르친다.
서구 사상을 지배하는 영혼과 육체 이원론인 소위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바탕에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정신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 이데아론의 정점은 세상을 초월하는 신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이다. “이데아에 관한 그러한 인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식보다 틀림없이 훨씬 완전할 테고, 누가 그러한 인식을 소유한다면 그는 신입니다.”(195)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품격에서 본 이데아는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신적 능력’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움직이고 움직여지는, 영혼과 정신이 구비된, 따라서 생동하고 사고하는, 행위하고 행위당하는 가운데 있는 힘들”(211)이다. 플라톤은 의연한 멋진(?) 죽음을 맞이하는 스승을 통해 ‘영원한 이데아’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윤리적으로 완벽한 행위이며 형이상학적으로는 영원한 진리가 이 땅 위에 구현된 모습이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이렇게 플라톤이 볼 때 소크라테스의 품격이라면 의롭지 않게 보이는 행동도 선한 행동이 된다고 한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만이 고의로 의롭지 않게 행동할 수 있으며, 모르고 악을 행하는 자만이 나쁜 사람입니다.”(221) 소크라테스는 때때로 죽어가는 자들을 방문하여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고 나아가 깊은 위로를 통해 오히려 죽음을 동경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말은 플라톤에게는 적어도 신의 말씀처럼 보였을 것이다. 피조물이 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고쳐준 바울 사도를 신으로 섬기려고 하자 사도는 이렇게 통탄하며 가르친다.

13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행 14:13-15)

<201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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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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