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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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9-07-11 19:06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바르트의 한계, 예수의 화해 능력의 객관성을 증거하지 못함
우리는 바르트가 예수를 “인간 예수”로 평가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바르트는 예수를 아버지를 계시하는 역할, 그리고 아버지와 화해시키는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했다(GG., 531). 이러한 규정의 타당성은 바르트 자신이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그러한 일을 한 것으로 제시했다(GG., 531).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을 어떻게 파악했을까? 바르트는 성경 해석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GG., 531). 그러나 바르트에게 성경 기록은 규범적인 것이(ist/to be) 아니라 발생될 때에(werden/become) 의미가 있다. 성경 자체의 권위가 아니라 발생된 현상에서 권위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하는 것을 증명하는 성경 해석도 결국 규범적이 아닌 발생해야 되는 확정할 수 없는 체계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자, 중보자, 화해자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확증이 아니라 배후에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본질이 있다고 규정했다(GG., 531-532). 이러한 제시는 바르트의 체계를 불가지론적(不可知論, agnosticism)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불가지론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큰 불신으로 이끈다. 바르트의 신관을 불가지론이라고 명료하게 말하는 학자는 적다.
최근 성경무오에 대한 거부를 밝힌 학자가 있다. 성경무오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우상시할 수 있고, 하나님만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일 수도 있다. 성경우상주의와 성경무오교리는 동일하지 않지만, 그렇게 판단될 소지가 있다. 성경무오교리는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우상주의가 있을까? 하나님만을 섬기면 하나님 우상주의가 되겠는가? 하나님 우상주의는 현대신학에서 나타나서, 하나님을 대상으로 여기면 하나님 우상주의가 된다. 이러한 견해는 폴 틸리히에게서 나타났다. 이러한 주장을 서양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하는 것은 불교의 영향이 서양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근대 철학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서양 철학에서 수용했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가 불교에 가장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나와 세계가 표상이고, 그 배후에 의지가 도사리고 있으며, 삶의 의지의 긍정은 고통을 유발하므로, 고통을 벗어나려면 의지의 완전한 부정을 통하여 동고(同苦)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분명 불교의 중심사상과 일치한다”(김진, 법보신문, 2008.12.30). 김진은 서양철학에서 쇼펜하우어의 위력에 대해 니체, 프로이드, 키에르케고르, 베르그송, 비트겐슈타인은 쇼펜하우어의 사람들이라고 제시했다. 바르트에게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모습은 종종 등장한다. 니체의 추종자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말기에 니체를 부정한다고 했지만(니체가 나를 망쳤다, Nietzsche hat mich kaputt gemacht, Martin Heidegger, 정일권, 『예수는 반신화다. 르네 지라르와 비교신화학』, 135-139), 니체의 영향력에 있던 하이데거의 가르침은 유지되고 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das kirchliche Dogma von der Gotthiet Christi)에 대해서 성경적 증언을 제시했다(GG., 532). 바르트는 자기 가르침에 대해서 전제(Voraussetzung, presupposition)를 제시했다. 바르트가 제시한 전제는 반틸 박사(Cornelius Van Til)가 변론적으로 전제주의(Apologetic presuppositionalism)를 주장했다. 즉 바르트가 주장하는 전제와 반틸 박사가 주장하는 전제가 전혀 다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바르트는 전제주의가 아니고 반틸 박사가 전제주의라고 평가된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전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전제가 다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바르트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성경적 근거라고 주장하지만, 로고스 아사르코스(Logos asarkos)를 부정하고, 인간 예수(Logos Ensarkos)만 주장하는 해석을 성경적 해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전제는 증명할 수 없는 절대 영역이다. 바르트는 전제는 도출된 명제가 아니라 근본명제라고 제시했다(GG., 532). 전제가 다르면 결과는 당연히 다르다. 우리는 바르트의 전제는 바르트 개인의 전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의 전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전제로 삼고 거기에서 지식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으로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기독교 신학을 이룰 수 없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아리우스도 부정하지 않았지만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권위가 성경 본문에 있지 않다고 제시하고, 참되고 영원성을 주장한다(GG., 533). 그것은 자기 전제의 영원한 규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계시와 화해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이 계시와 화해를 창조한다고 하면서(GG., 533),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제시한다. 그러나 바르트의 주장은 아리우스보다 덜하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 이해에서 창조자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는데, 바르트는 창조자의 역할을 제외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diety) 이해는 기독교 신학에서 절체절명의 위치이다. 믿음의 시작은 예수 믿음(십자가 보혈의 구속을 믿음)이지만 종점은 그리스도의 신성 이해에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교회 사역자나 신학자가 될 수 없다. 인문학적 기독교에서는 절대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학자라고 자평한다면 반드시 신성을 제시해야 한다. 바르트도 교회에서 신학을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 이해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다만 바르트는 정통 교리가 확립한 그리스도 신성 교리를 명료하게 거부하고, 자기가 전제로 확립한 그리스도 신성 교리를 참되고 영원한 체계로 확립했다. 많은 사람들이 교리(Dogma)를 얽매는 장치로 생각하는데, 교리는 그리스도의 신성 이해이다. 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교리는 부정하는 계몽주의에서는 기적을 부정하며 신성 교리를 부정했고, 자유주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부정하여 역사적 예수를 추구하며 새롭게 예수 초상(肖像)을 만들려고 했다. 현대신학을 연 바르트가 자유주의가 아닌 것은 그리스도 신성 교리를 전제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성 교리를 밝혔는데, 자신을 정통주의자라고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신정통주의자(Neo-orthodoxy)라고 한다. 필자는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부정한 자유주의보다, 그리스도 신성 교리를 대체할 “전제로서의 그리스도 신성 교리”를 만든 바르트의 신학이 더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자유주의는 교리를 거부했지만, 현대신학에서는 교리를 폐지하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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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이메일 : ktyhbg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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