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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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9-08-28 19:37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바르트의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을 증거
우리는 앞에서 바르트가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부정하는 것을 제시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간성(natura humana Christi) 아래에서 위로의 기독론을 추구하고 있다(GG., 537).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에서 시작하는 신학을 헛된 사색으로 규정했고, 비신학적인 사변으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의 창안자에게 몰이해의 책임을 돌렸다(GG., 538).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의 창안자는 누구일까?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교회 안에서 누군가 창안했다고 상상한 것이다. 그러나 정통 교회가 고백한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는 어떤 이가 몰지각하게 창안한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진리를 고백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는 참 하나님이신 예수를 고백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교회는 어떻게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것은 죄 사함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인자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죄를 사하는 것은 하나님뿐이라고 속에서 힐문했다(마 9:1-8; 막 2:1-12; 눅 5:17-26).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은 바리새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죄를 용서하는 예수를 믿지 않고 배격했다. 그래서 교회는 죄 사함을 받은 백성은 자기 죄를 사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만이 사하실 수 있는데, 죄 사함 받은 사람은 자기 죄를 예수께서 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죄 사함에 대한 이해가 정통 교회(사도의 가르침)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체화시켰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가 "우리를 위해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GG., 540). 바르트는 신학을 “우리를 위한(für uns)” 신학 체계로 전환시켰다. 바르트는 첫째,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필연적 속성(notwendigen Eigenschaft Gottes)이 있다고 했다(GG., 540). 둘째, 바르트는 하나님의 아들 신앙에 결정되는 것을 정체된 것으로 이해하며, 신적행위 하나님이 말씀해 오는 행위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혜택(beneficia Christi)을 추구한다면서 그것을 제외시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말하는 행위(Deus dixit)를 그리스도가 증명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셋째, 바르트는 에비온적 유형과 가현론적 유형을 거부한다면서, 바른 그리스도 이해를 계시를 증명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바르트에게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는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명료하게 증명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 가치판단(Werturteils)에 의해서 예수가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되었다고 제시했다(GG., 541). 바르트는 불트만의 제자인 후기 불트만 학파, 케제만(Ernst Käsemann, 1906-1998), 콘첼만(H. Conzelmann, 1915-1989) 등이 제언한 간접기독론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바르트가 제시하는 기독론은 간접기독론의 전형이다. 간접기독론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지만, 가치 평가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한 것이다. 바르트가 리츌(Albrecht Ritschl, 1822– 1889)의 기독론을 가현론적 기독론으로 비평한다. 그것은 리츨에게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바르트가 자신의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리츨의 기독론과 결합시켰다고 제언한다.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종결시킨 것이 아니라, 1, 2차 대전으로 숨통이 끊어질 위기에 놓은 자유주의에 새로운 동력을 추가시켰다고 이해한다. 그것은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를 넘어섰는지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가 포기한 삼위일체를 부활시킨 것이 아니라, 슐라이어마허가 생략한 삼위일체를 완전히 해체해서 “삼중일신”으로 슐라이어마허 체계를 완성시켰다. 바르트에게 삼위일체(Trinity)가 있다면 증명해 보라. 바르트는 분명하게 Trinity를 부정하고, Gottes Dreieinigkeit(The Triunity God), “삼중일신”으로 전환시켰다. 바르트는 정통 교회의 그리스도 신성 교리를 거부하고, 가치판단에 의한 그리스도 신성 교리로 체계화시켰는데, 리츨의 기독론을 보완해서 구축하여 풍성하게 한 것이다. 리츌 신학에서 하나님 나라 신학이 등장했다.

바르트는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니케야-콘스탄티노플 신조”라고 제시했다(GG., 542). 바르트가 창안한 어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니케야-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학문적으로 바르지 못한 표현이다. 어떤 연구자는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니케야 신조라고 사용하는 분도 있다. 니케야 신조(325년)가 있고, 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 두 공의회 문서가 있다. 호모우시온(homooousion) 사상이 같겠지만 문장이 분명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번 결정했고, 두 문서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다른 두 문서를 하나로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부당하다. 바르트가 교회교의학 I/1에서 사용한 문서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2조항이다. 신조는 1조, 2조, 3조로 구성되어, 1조는 아버지, 2조는 아들, 3조는 성령으로 이해한다. 바르트는 콘스탄티노플 신조 2조항 부분만을 발췌해서 해설한다.

바르트는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세례신조(Taufsymbol, a baptismal creed)”라고 제시했는데(GG., 542), 부당하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세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예배에서 공동체 고백할 믿음 문장이다. 사도신경도 세례 때에 교육용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매 예배에 고백하는 공적 문서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예배에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정통 예배 모범에서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자기의 공적 성격을 자증해야 하기 때문에, 공적 고백을 반드시 해야 한다. 공적 고백문은 교회가 자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교회가 작성한 문서를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사도신경 혹은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공적 예배에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바르트는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서방 예배 의식에서만 진행하는 것처럼 소개하는데(GG., 542), 동방교회에 대한 바른 제시가 아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기독교회가 고백할 최고의 공적 문서이다. 공적 문서를 낭독함으로 교회가 사도적 교회임을 천명하며, 거룩한 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임을 공포하는 것이다.

필자는 공교회 문서를 “325년 니케야 공회의,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 431년 에베소 공회의, 451년 칼케돈 공회의”로 세우고 있다. 그런데도 공예배에 고백할 문서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만이 전례로 내려오고 있다.

바르트가 콘스탄티노플 신경 2조항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가 박사논문(칼 발트와 존 칼빈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 연구(총신대, 2007년, 159-176)를 진행할 때에 좀 자세하게 연구한 부분이 있어, 다음에는 그 부분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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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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