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30억과 인간의 뇌
숫자에 담긴 신비한 설계
우리는 ‘30억’이라는 숫자를 듣는 순간, 그것이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먼 거대한 수치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바로 우리 몸,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기관인 ‘뇌’ 속에 살아 숨 쉰다. 인간의 뇌는 고작 1.4kg 남짓한 유기체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우주보다 복잡하다. 그리고 그 복잡성을 지탱하는 하나의 핵심 숫자가 바로 30억이다. 이 숫자는 단지 뇌의 물리적 현상을 가리키는 통계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경이와 설계의 정밀함을 상기시키는 철학적, 신학적 성찰의 출발점이 된다.
30억 번의 연결, 유아기의 뇌
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한다. 특히 생후 첫 3년간은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며, 뉴런 사이의 시냅스 연결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 시기에 형성되는 시냅스 연결 수는 약 30억 개 이상에 이르며, 이는 뇌 전체 구조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시기이기도 하다.
심리학자들은 이 시기를 ‘운명 결정의 창(window of destiny)’이라 부른다. 언어 능력, 감정 반응, 감각 통합, 애착 형성 등 평생을 좌우할 기초 능력들이 이 시기에 뇌의 물리적 배선으로 새겨진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왜 ‘네 아이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7a)라고 강조했는지, 이 생리학적 사실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뇌를 설계한 유전 정보: 30억 개의 염기쌍
인간의 유전체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base pairs)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2만여 개의 유전자가 단백질을 생성하며, 이 중 약 40%가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여한다. 뇌를 구성하는 세포들,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생성, 시냅스의 유지와 재구성 등 모든 것은 이 30억 개의 조합 속에 담겨 있다.
이 유전 정보는 한 사람을 고유하게 만들 뿐 아니라, 뇌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가령, 뇌신경 질환이나 발달장애는 이 염기쌍의 배열 이상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과학자 프랜시스 콜린스는 “유전체는 하나님의 언어”라고 고백했다. 30억 개의 염기쌍은 단순한 생화학의 산물이 아니라, 한 존재를 향한 신적 의지의 시편이라 할 수 있다.
뉴런 간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에서는 전기적·화학적 신호가 끊임없이 오간다. 평균적으로 인간 뇌에서는 초당 수백만 건의 시냅스 활동이 발생하며, 도파민, 아세틸콜린, 세로토닌 등 주요 신경전달물질이 하루에 수십억 번 이상 작용한다고 추정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특정 뇌 영역에서만도 하루 30억 회 이상 전달물질의 활성이 일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역동성은 단순히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다. 이 안에는 인간의 감정, 의지, 기억, 판단이 담긴다. 우리가 사랑을 느끼고, 예술에 감탄하고, 기도하는 그 순간에도 뇌에서는 억 단위의 화학적 교류가 일어난다. 즉, 30억 번의 생화학적 움직임이 우리의 한순간을 의미 있게 만든다.
인공지능과 뇌 시뮬레이션: 30억 개 연결의 모사
인간의 뇌를 이해하고자 하는 AI 연구에서도 ‘30억’이라는 숫자는 등장한다.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나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Blue Brain Project)’ 같은 대형 연구들은 뇌의 기능 단위를 재현하기 위해 수십억 개의 연결 고리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그중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30억 개의 시냅스를 컴퓨터로 구현하여 ‘기억, 패턴, 선택’을 모사하는 시도를 진행하기도 했다. 물론 이 숫자는 인간 뇌 전체 시냅스의 수조 분의 일에 불과하지만, 인간 사고의 단편을 재현하려면 최소 30억 연결이 필요하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뇌의 복잡성을 부분적으로라도 모방하는 데 그 정도의 수학적 단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숫자 너머의 의미
칸트는 “숫자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는 무한을 상상하는 도구”라 했다. ‘30억’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크지만, 그것이 생명의 기초, 의식의 기반, 존재의 설계에 쓰인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뇌는 우리 몸의 기관 중에서 가장 침묵하면서도 가장 바쁘게 일하는 곳이며, 그 침묵 속에서 수십억의 대화가 오간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시편 119:73a). 이 말씀은 생물학의 진보 속에서 더 깊은 묵상이 된다. 뇌 속 30억의 시냅스, 유전체의 30억 염기쌍, 하루 수십억의 신경신호는 모두 인간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정교한 설계의 산물이라는 증거다.
30억, 존재의 시그니처
인간은 숫자를 세는 존재이자,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그러나 진정한 지혜는 숫자 속의 비밀을 읽어내는 데 있다. 80세까지 심장이 30억 번 뛰며 우리 생명을 유지하듯, 뇌는 30억 개의 연결 속에서 나를 ‘나’ 되게 만든다.
30억은 결코 멀리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도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내가 생각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만드는 수치다. 우리가 이 숫자를 단지 크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존재의 기적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안에서 경외와 감사를 배운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편 139:1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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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여인갑 장로 (지구촌교회 / (주) 시스코프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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