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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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09-29 13:29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말씀이 육신이 됨(3) 죄에서 출생 죄 자체로 삶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2, § 15. 계시의 비밀(Das Geheimnis der Offenbarung) 2. Wahrer Gott und wahrer Mensch “참 사람과 참 사람”에서 두 번째 내용, “말씀이 육신이 됨”을 GG 189쪽에서 시작한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선 일반적으로 그것이 인간이, 그것도 참되고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으며, 인간적 본질과 현 존재 바로 그 자체에, 인간적 본성과 형제 그 자체에, 또한 우리들이 소유하는 역사성 그 자체에 참여하였음을 뜻한다(GG 189, 신준호)라고 제시하였다. 2 문항에서는 예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die Wirklichkeit Jesu Christi)으로서 “우리와 피조물로서 같은 인간(Er ist ein Mensch wie wir, uns gleich als Geschöpf)”이라는 것으로 규정한다(GG., 195). 3 문항에서는 2 문항에서 규정한 “우리와 같은 인간”에 이어서, 죄(die Sünde), 죄에서 출생하고 죄 자체가 되어 살았다고 규정하였다(GG., 200).
바르트는 Johannes Rupprecht의 Hermann Bezzel als Theologe(1925년)에서 재인용하여, “그분은 죄를 담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죄 자체가 되셨다”(신준호)라고 번역하였다. er hat nicht allein die Sünde getragen, sondern er ward die Sünde selbst(KD., 169). He not only bore sin, but He became sin itself(CD., 155)이다. 본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그는 죄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는 죄 자체이다”이다. 신준호 번역에서 “죄를 담당했다”는 getragen, bore에 대한 완곡한 의역으로 볼 수 있다. 바르트는 § 15. 계시의 비밀에서 성육신에 관해서 제시하는데, 예수의 인간 상태를 보편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죄(die Sünde)였다고 규정하고 있다.
“3. 우리는 육체를 중립적인 인간 본성 그 자체의 지성으로서 이해하였다. 이제 말씀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일반성 안에서 확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신약성서적 용어인 육체는 잘 알려진 대로 어떤 일반적 인간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이 일반적 개념을 전제하고 또 포함하면서, 다음과 같은 인간의 상세한 개념을 내포하는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판단과 심판 아래 서 있으며,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랑하는 일에 무능력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멸망해야 하며,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써 그것의 실존은 죽음의 나락에 내맡겨져 있다. 육체는 아담의 타락의 상징 아래 있는 인간적 본성의 구체적 형태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의하여 옛것으로 그리고 이미 지나간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세계 전체의 구체적 형태이며, 파괴되어졌으며 이제 겨우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인간 본질과 인간 현존재의 구체적 형태이다”(신준호, GG., 195).
바르트는 육체(σάρξ)를 중립적 인간 본성으로 이해하던 것에서, 신의 판단과 심판 아래에 있는 존재로 전환시켰다. 그러한 육체는 아담의 타락의 상징 아래 있는 인간의 구체적인 형태로 규정하고, 즉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옛것이 파괴되며, 신과 화해가 된 인간 본질과 인간 현존재의 구체적인 형태라는 것이다(die Gestalt des zerstörten, erst wieder mit Gott zu versöhnenden Menschenwewens und Menschendaseins).
바르트는 말씀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ewiges Gotteswort)이며, “육신(Fleisch ist)이다”라고 규정(전제)하였다. 육체는 신(神)과 정반대되는 존재지만, 신이 우리와 접촉하고 올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오는 것이 신의 계시이다. 즉 바르트는 인간의 언어 속에서 신이 인간에게 접촉할 수 있는 계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언어 속에 신의 계시가 있으면, 그 인간은 계시 전달자가 되며, 그 안에 신의 계시, 신의 말씀이 있게 된다. 그것이 바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계시(die Offenbarung des Woetes Gottes)이다.
바르트는 교묘하게 칼빈의 요한복음 1:14 주석을 인용하였다. 자기 계시 이해와 칼빈이 설명하는 성육신 이해를 동등한 반열로 위장시키는 속임수라고 평가하고 싶다. 칼빈은 천적 존재이신 로고스께서 육체가 되신 것을 밝히고 있는데, 바르트의 성육신은 단순한 언어 사건(Sprachereignis 혹은 Wortgeschehen, language event)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설교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설교(인간 언어)에서 신의 말씀의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이시스(Isis)와 오리시스(Orisis)의 육신이 되는 사건, 붓다와 조로아스터 안에서 육체가 되는 사건이 있음을 밝히며, 자기의 성육신 이해와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제시한다. 바르트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죄인으로 만드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저주가 되셨다”는 것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제시하였다. 이것은 명백한 왜곡이고 부당한 진술이다. 메이천 박사도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정규철 역, CLC)에서 이집트 신화 등을 이끌어 논리를 전개하는데, 변호적으로 본다. 바르트는 삼위일체를 흔적 혹은 유사 개념으로 보면서, 이집트 신화나 붓다 등은 종교사학파적 관점으로 연결 개념으로 놓고 있다. 
바르트는 예수의 무죄성(die Sündlosigkeit Jesu)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진 옛 교회 신학에 문제가 있음을 밝혔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취한 본성이 타락의 전제 아래 있는 우리 본성(Natur unter Voraussetzung des Sündenfalls)과 동일하다고 명시하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이 진리가 약화되거나 미혹된다고 주장하였다(GG., 197). 이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권호덕 교수가 바르트가 성육신에 대해서 칼빈보다 더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는 요점으로 논문을 발표하였다(“칼빈과 바르트의 성육신론”, 2013년). 권호덕은 성육신한 상태가 아담의 타락 후 몸을 암시한다고 제시하였는데, 바르트는 명시적이며 강조하여 제시하고 있다.
바르트는 우리의 본성을 선한 인간적 본성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우리와 동등하게 보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의 현실성과 계시(Weg mit der Wirklichkeit der Menachheit und damit der Offenbarung Ernst gemacht woeden ist)의 구도로 체계를 세우고 있다.
그리고 바르트는 개혁자들과 후계자들이 옛 신학의 문제점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옛 신학은 특이한 도덕주의 때문에 문제점(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이 발생하였다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 1792-1834)의 글을 인용하기 때문에 영어 문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육체에 죄 없음이나 부패 없음이 아니라 성령의 거주로 보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죄 없는 인간성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내부에 신성이 있어 무흠하고 순결하여도 죄 있는 육체 안에 있다고 규정하였다(GG., 198). 또한 신성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어빙의 글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다.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기독교 기적론』(이길상 역, 나침반) 4장에서 “어빙주의(Irvingite)”를 분석하여 비판하고 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보편 인간성과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죄가 있고, 그 일그러진 인간의 상 안에 말씀, 계시가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에게 예수는 죄를 입었고, 죄 자체이다.
바르트의 성육신 이해는 죄가 있는 예수의 육체 안에 하나님의 계시가 발생하는 현실성(Wirklichkeit)이다. 바르트에게 “예수의 무죄성”은 옛 교회가 그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하다(mutatis mutandis). 죄가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죄가 없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바르트는 “만약 하나님이 아니라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명제를 역으로 적용하며, 정통 교리를 왜곡하여 새로운 Dogmatic을 선보이고 있는데, sola Dogma를 꿈꾸고 있다. 부처처럼 자기를 따르지 말라고 에두르지만 부처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바르트의 새로운 Dogmatic을 거부하며, 옛 교회의 Orthodoxy Dogma로 교회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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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이메일 : ktyhbg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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