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8-04-12 19:1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의 복음


하나는 영원과 아주 밀접하다. 하나는 하나님 여호와의 존재와 속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하고도 큰 ‘하나’가 복음에 붙어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강조하는 하나의 복음을 이루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았다. 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한 몸을 이루게 하였다. 성경은 창세기의 출발부터 이 하나의 의미를 강조하여 복음을 이루어 가고 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복음을 중점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만 표현하자면 구약성경은 율법이고 신약성경은 복음이다. 이 표현도 결코 틀린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성경해석에 있어서 역사적 해석으로부터 신학적 해석까지 끝까지 고수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여기서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연결한 성경 전체의 주제이다. 성경 전체의 중심적인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면, 위에서 제기된 율법과 복음이 이원론적으로 되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 이 글의 중요한 목적이다. 좋은 문제는 그 문제를 찾고 풀어가는 과정에 큰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4월에는 부활의 절기가 시기적으로 일찍 다가온 셈이다. 많은 사람들은 부활 즉 생명이 기독교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부활을 믿으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부활인가? 세월이 흘러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릴 날들은 어김없이 개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아기들이 갓난아기 때에는 부모를 확인하는 정도가 아주 약하다. 1년, 2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부모에 대해서 의심 없이 전폭적으로 따르고 믿는다. 이런 것에 비교하는 것은 부활의 소망이나 확신이 과연 세월의 흐름에 비례하여 자라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부활의 절기에 맞추어 복음에 연관시켜 문제의 제기를 강조하였다. 예수께서 친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으며 또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다. 이것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니며 결국 말씀이며 복음인 셈이다.
이처럼 문제를 만들어 즐겁게 풀어가려는 자세로 하나의 복음으로 제목을 내세웠다. 하나의 복음이라고 주제를 선정한 목적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복음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자체의 분석을 통하여 하나의 복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자 한다.

1)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로서의 율법

장차 온다고 하는 것은 결국 메시아의 오심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말씀하는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을 정말 잘 해석해 주고 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명칭 자체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요약한 것이다. 시간상으로는 과거와 미래를 의미하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메시아의 오심이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다. 신약시대에는 예수의 오심은 과거의 일이다. 이런 것과 연계하여 여기서 말하는 “좋은 일”은 복음이 아니고 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좋은 일”을 복음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는가? 장차 온다는 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구약성경 전체로 확대하면, 구약 전체는 율법이면서 동시에 언약이다. 율법의 형식으로 언약을 한 셈이다. 무엇을 예언하고 언약했는가? 성경을 조금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그 누구도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을 역사서와 시가서와 선지서로 크게 나누어 구체적으로 해석하면서 역사서 전체를 메시아를 예언하고 언약하는 것으로 풀이하지 못한다. 시가서와 선지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림자의 존재는 실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실체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림자로서의 율법은 결국 신약성경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복음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마태복음에서는 “천국 복음”으로 몇 차례 선포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시작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의 주제와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주제에 어우러져 적재적소에 잘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심도 있게 분석해 본다면, 누구도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이 그림자로서 언약한 바로 그 실체이다. 이 복음을 로마서의 시작 부분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구약성경의 중심적인 인물(그림자)로서 다윗을 통하여 그 실체를 증명하고, 그 실체가 바로 복음의 핵심(core)이라고 밝혔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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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 나사렛 랍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