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24-07-22 21: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중보’의 오용(誤用)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디모데전서 2장 5-6절. 개역성경)

며칠 전 인터넷 신문에 중고등학생의 문해력이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과 일부 학부모들 가운데 기본적인 어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기사가 실렸다. 9년 차 어린이집 교사 A씨가 일부 학부모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상에 게재한 것을 보도했다. 그 예로 공지문에 ‘우천 시에 ○○으로 장소를 변경한다’는 내용을 어느 학부모가 진짜 ‘우천시’라는 지역에 있는 ○○으로 장소를 바꾸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는 기사다. 또한 지난해 3월 H대 국어교육과 C교수도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교과서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반납하세요’라는 안내문을 보고 한 학부모는 교과서를 사서 반납했다는 일화 등을 소개하면서 일부 학부모들의 문해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을 보면서 웃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성경에 대한 문장 해석 능력을 평가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똑같은 성경 본문을 목회자마다 다르게 해석하여 가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자신을 특별히 보여주시려고 기록한 성경의 바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용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교회는 부흥을 목적으로 몇 년 주기로 새로운 용어들을 유행어처럼 쏟아내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교회의 예배 시간, 기도회, 세미나 등에서 시행하는 ‘중보기도’의 의미 왜곡이 있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중보(中保, Mediator)’에 대한 성경적 바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먼저 문자적으로 ‘중보’ 또는 ‘중보자’라는 뜻은 적대적 관계나 시시비비가 있는 양자 사이에서 화해와 일치를 도모하는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성경에는 ‘중보’라는 단어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해당 본문의 상위 개념의 주제와 하위 주제에 따른 구조를 명확하게 정리하여야만 성경을 올바르게 볼 수 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동일 본문을 교회마다 다른 제목과 다른 내용으로 설교하여 성도들은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성경에 ‘중보’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 본문 중 히브리서 9장 15절의 내용을 살펴보자. 히브리서는 성령께서 신약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으로 양육, 진리와 체제 및 생활로 무장시켜서 유대주의와 세속주의 및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투쟁케 하심으로 부활 승천하신 이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을 보면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 ‘중보’는 헬라어로 ‘메시테스(μεσίτης)’라고 하는데 ‘중재자’, ‘대리사절’, ‘화해자’ 등의 뜻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건에서 자기 피로 속죄를 이루어 새 언약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 중재자 역할의 방법은 첫 언약에 따라 율법을 범한 죄를 대속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과 ‘부르심을 입은 자’ 즉 택한 성도로 하여금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서 6절까지의 주제 본문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에서 ‘모든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육신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에베소서 2장 14절)을 허시는 중보자 역할의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한 피의 대가인 속전으로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본문에서 특히 주목할 말씀은 중보자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라는 것이다.

또한 중보자이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이심을 이하 두 본문에서 알 수 있다. 로마서 8장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와 히브리서 7장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라는 본문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역할이 현재 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중보자가 아님을 밝혀주고 있다. 

위의 본문 내용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들은 매년 수많은 성경 교사와 성도들을 교육하여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 사역자로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중보자가 되어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기독인 스스로가 자기모순 속에 빠져 있는데도 이를 인식 못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성경 교사와 성도들은 이러한 잘못된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오용이라는 것을 알고도 공적 예배 등에 적용했다면 자기 신앙의 중대한 문제에 따른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많은 성경 교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에 나타난 개념들을 그릇되게 해석할 때가 많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설교문 작성을 해주는 기능과 요즘 뜨고 있는 AI의 힘을 빌려 작성된 설교문을 읽는 목회자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번 주제인 ‘중보’의 개념을 정리하면서 교회 목회자의 역할에 있어서 교회 부흥도 중요하지만 성경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일깨웠으면 한다. 그러나 이 깨달음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야만 가능하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donald257@nate.com

신정론의 담론(談論) -Ⅰ
‘~되리라’와 ‘~되라’의 간극(間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