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5-02-25 20:4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의 호칭과 주권성 (2)


앞선 기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 호칭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언약과 성취를 통해 여호와 존재 계시를 확증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호와 호칭에 나타난 신적 속성의 핵심은 바로 ‘절대주권성’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요구나 행위 여하와 관계없이 여호와께서는 언약하신 대로 성취하신다.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의 계시 섭리는 애초부터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창세전 작정한 뜻에 원천을 두고 있으므로 피조물의 의지를 초월해 있으며 이는 마땅히 만물 통치 원리로서 주권성이 계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언약과 성취에 대한 주권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역사섭리에 대한 주권성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 29:11-12)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 진리가 절대적인 진리체계라고 한다면 역사에 관한 문제도 예외일 수 없다. 앞선 기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주권성 계시가 언약과 성취라는 방법일 때, 그 무대는 창세전 영원한 여호와의 작정하신 뜻에 근거한 피조세계의 역사다. 이러한 여호와 주권성 계시의 역사관 정립은 역사의 원리에 의한 올바른 해석이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근원과 목표 곧 역사의 주관자를 확정하는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기독교 역사의 원리를 ‘여호와’ 호칭에 나타난 유신론적 역사로 확정한다. 이를 이사야 선지자는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6-7)고 증거한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0-11)라고 찬양한다. 이렇듯 성경에 계시된 모든 역사의 근본 주체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에 반해 철학적 역사관의 주체는 인류 혹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이 주체되거나 유물론적 역사관이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을 역사의 주체로 삼는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역사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바탕을 둔 유신론적이며 신본주의적인 역사관 정립이 매우 중요한다.[박용기, 『성경적 기독교』(성남: 진리의말씀사, 2010), 131-136 참조] 이하에서는 이러한 유신론적 기독교 역사관을 바탕으로 창조부터 최후 심판까지 모든 역사를 절대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주관자로서 여호와를 재차 확증 짓고자 한다.

피조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여호와의 절대주권적인 섭리에 의해서만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에 따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모든 사건에서 절대적 능력과 속성의 영광을 계시하신다.(시 19:1-6) 영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태초 곧 영원 안에서 영원한 세계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후 4:18) 곧 영원한 하늘과 땅을 비롯해 영원한 나라와 지옥 및 심판 도구를 창조한 것이다. 이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찬양하게 하신 바 있다(사 46:10). 그리고 사도 요한을 통해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계 21:6)고 역사 종말을 확정한 바도 있다. 앞의 인용에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여호와는 ‘절대주권자이시며 만사만물의 유일한 통치자이며 우주만물의 유일한 머리’이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창세전에 언약하신 영원한 뜻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 호칭은 모든 사건의 유일한 ‘본 주어’가 된다. 부귀와 존귀, 권세와 능력의 절대주권자의 의미가 바로 여호와 호칭에 담겨 있음을 앞의 본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창조부터 종말까지 계시 세계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통치(박용기, 『성경강론 1』, 24)는 바로 ‘여호와’라는 이름에 담겨있다.
여호와는 유한한 세계 창조 전 영원한 때부터 하나님 나라 건립과 심판에 대한 절대 주권적 섭리를 확정하셨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일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수 23:15)고 말씀하셨다. 곧 선한 일이 임한 것같이 불길한 일도 임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중심적인 선악 판단으로는 여호와 호칭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나아가 여호와의 주권성도 헤아릴 수 없다는 점을 선포하셨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방식(절대선의 방식)으로 이루시는 주권적 섭리임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26-30)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천하 모든 만물이 인간의 행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통치 역사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절대 주권적 통치 맥락에서 예수께서는 다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 10:29-30)라고 말씀하셨다.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의 절대 주권적 통치 섭리에 대해 사도 바울도 아덴 전도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 온 땅에 거하게 하신 이유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찾아 섬기게 하시려는 섭리이므로 우리가 그의 능력을 힘입어 살기도 하며 움직이기도 하며 존재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행 17:26-28)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이 모르고 섬겼던 모든 잡신들은 거짓 신이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힘의 유일한 원천임을 알려준다.
여호와를 모르던 이방 민족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한 대로 여호와의 이름을 알려주시고 이방인들도 창조주 하나님이 절대 주권적 통치자 되심을 깨닫게 하신다. 이러한 절대 주권적 통치 섭리는 세상 심판 때, ‘영원한 원형’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최후까지 계속된다. 이를 사도 바울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라고 증거한다.(롬 11:36) 아담 타락으로 인해 저주가 덮인 유한한 현실 세계는 천년왕국 시대에 회복된다. 죄가 없는 무죄(無罪) 시대가 신적인 절대주권으로 회복되며 천년왕국 시대가 끝나고 최후 심판을 맞이할 때는 모든 역사가 영존하는 여호와의 존재와 속성의 영광을 찬양하게 된다. 즉 역사의 종말이란 다름 아닌 여호와 호칭에 대한 완전한 종결이며 완성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여호와의 절대 주권적 통치권을 계시하는 역사였으며 종말은 이 모든 통치권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역사 섭리는 창조부터 심판까지 창세전에 정하신 뜻을 완성하시되, 자신의 절대 주권적 통치 방식에 따라서 하신다. 그러므로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 호칭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우주 만물을 창세전 언약대로 종말까지 통치하시는 신적 주권성을 이해한다는 말로 달리 말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창조부터 최후 심판까지 모든 역사를 섭리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칭호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영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전 작정하신 뜻에 따라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언약하시고 그 언약대로 섭리하시고, 신약에서 여호와의 언약대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예수의 사역으로 성취하시고, 보내신 성령의 사역을 통해 구약의 언약을 완성하신다. 그러므로 구약의 여호와의 역사섭리와 신약의 예수의 사역 그리고 성령의 사역 모두 영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사역임이 분명하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경진 목사 (산수서광교회 / 광주 성경신학학술)

‘여호와’의 호칭과 주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