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文化의 衣食住
인간문화는 표면적으로 짐승문화와 다를 바 없다. 문화를 인간들에게만 한정시키지 않았을 때, 큰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22년 6월이 지나가면서(pass), 대한민국은 상반기에 벌써 두 차례의 큰 선거를 치렀다. 선거문화는 인간들에게만 있을 것이다. 선거는 하늘이 부여하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가? 천심이 민심이 되는 근거나 이유 등과 긴밀히 밀착되어 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문화는 본질적으로 짐승문화이다. 필자가 몇 년 전에 필리핀을 여행할 때, 짐승문화를 언급하여 동감을 얻었다. 이 기억은 5대양 6대주의 어디나 인간문화는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상기하고자 함이다. 문화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나 운동경기 등에서 페어-플레이(fair play)는 절실하다. 전쟁에는 페어-플레이가 성립되지 않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하여 그 전쟁의 참상이 세계에 잘 알려지고 있다. 인간다운 문화를 그리워하는 이 시점에서, 문화의 본질 내지 요소를 다섯 손가락처럼 꼽아보고자 한다.
첫째, 서는 생활이다. 대부분 자신이 호명될 때에 자리에서 일어났던 경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바로 서고 앉는 것이 인간문화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직립보행(直立步行)은 참으로 중요하다. 기어 다니는 벌레나 네 발의 짐승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선다는 의미 속에는, 머리가 하늘을 향하는 것과 더 나아가 하늘에 달려 있다는 것 등이 들어 있다. 서는 것은 표면적으로 발바닥만 땅에 닿고 있다. 인간은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한다는 천지인(天地人)을 대개 감지하여 생각하면서 움직인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얼마간을 서 있으면 앉고 싶어진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서는 것은 기본적으로 앉는 것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며 희망적이다. 벌(罰) 받거나 세울 때, 서 있는 것도 한 형벌이 되지 않는가? 서고 앉는 것은 문화의 필수이다. 서고 앉는 위치(자리)를 분별하는 것도 인간의 문화수준과 밀접하다.
둘째, 앉는 생활이다. 인간문화의 양태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늙음과 앉는 것이 가장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버스나 지하철 등에는 경로석이 마련되어 있다. 나이 들어 늙었다는 것의 이면에는 벌써 앉는 문화나 생활과 더 가깝게 연계되어 있다. 벌 받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경험을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제자리는 안전지대(安全地帶)와 밀접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앉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서 있다면 상대적으로 더 불안하다. 공사현장이나 화재 시에 아래보다 위에 처한 경우에 안전사고가 더 크게 발생한다. 높을수록 떨어지기 쉽다. 공간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신분상의 위치도 높을수록 더 크게 떨어지기 쉽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이 논리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추락사고는 보통 높은 곳에서 발생한다. 잠든 때와 낮은 곳은 매우 밀접하다. 그러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는 무엇인가? 여기서의 높은 곳은 공간상이나 신분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오히려 어떤 경지나 소속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셋째, 입는 생활이다. “옷이 날개다(The coat makes the man)”라는 속담은 매우 유명하여, 일상생활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사람의 가치나 지위 등과 연관되어 나간다. 이목구비에서 귀가 제일 앞에 나오듯이, 의식주에서 걸치고 입는 문제가 제일 선두에 있다. 분명히 문화의 가치관이나 중요도 등과 연결되어 있다.
넷째, 먹는 생활이다. 보통 먹고 살기 위해서 매일 뛴다고 한다. 먹는 것 자체는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아마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여기서 문화의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 문화의 의미 속에 바로 사고와 이성 그리고 정신 등이 깃들어 있다. 더 나아가 영혼을 찾아 인간 자기의 정체성을 알고 싶을 것이다.
다섯째, 자는 생활이다. 자는 것은 죽는 것에 잘 비유된다. “영면(永眠)”은 장례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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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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