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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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4-30 21:2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심각한 부패


부패(腐敗)에 고기(肉)와 재물(貝)이 내재 되어 있다. 부패 앞에 부정(不正)이 들어가서 부정부패다. 부패는 부정보다 더 물질적이다. 부정은 부패보다 더 정신적이다.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있다. 4월 10일에 총선이 치러지고 그 이튿날에 결과는 주어졌다. 선거에는 부패보다 부정이 더 잘 어울린다. 그 이면에 승리를 목적으로 삼는 일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의 부패에는 관대하며 소홀하다. 상대의 부정에는 칼날같이 날카롭고 예민하다. 이 점을 강조하고 비판하면서 심각한 부패의 측면을 세 가지로만 분석해본다.

첫째, 사람의 마음이다. 예부터 성선설과 성악설은 대치 상태로 지속되어 왔다. 하나의 가설과 학설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일찍이 인간세계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선고하였다. 이 선고에 대해서 어떤 인간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 선고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에 대해서 관대해질 수가 없다. 개인의 심장 속에서 만들어 낸다는 마음은 천심과 관계가 없다. 사람의 심장은 왼쪽으로 약간 기울여져 폐와 간 그리고 신장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각 개인이 가진 마음의 근원이 분명하지 않으면 드러나는 감정 자체는 무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각 개인이 가지는 마음의 근원이 있을까? 인간은 날마다 때 만나는 것을 거부할 수 없으며 피할 수 없다. 인간이 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삶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과정이나 부분에서 인간이 이날이나 저 날을 선택하여 결정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누가 선택할 수 있나? 이러한 문제는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해왔고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 과거에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때를 쏜 화살에 비유하여 논리적으로 그 해답을 얻으려고 몸부림쳤다. 인간이 이때를 자기에게 당겨오려는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더 부패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것은 이 말이 지닌 설득력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먼저 밝혀야 되는 것은 마음의 본질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음과 성경이 말하는 마음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 근본적인 차이의 중심은 영(靈)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가의 유무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동서양에 공통적으로 남아 있는 난제가 바로 영혼불멸설이다. 이러한 문제를 여기서 분석하는 것은 이 글의 방향이 아니다. 이 마음을 이 짧은 지면에서 주제로 내세운 것은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삶의 핵심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마도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고 싶다.
둘째, 동물의 내장이다. 인간도 사회적인 동물이다. 동물의 내장이 심히 부패하는 것들 중에서, 그 대표가 바로 암(癌)이다. 풍수지리에서 물보다 바람을 먼저 내세운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보다 바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통풍이 되지 않고 그대로 지속되면 더 빨리 부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호흡으로 생명이 존재하는 동물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 생활의 리듬은 기본적으로 매우 단순하다. 그 단순한 것의 핵심이 늘 숨을 쉬고 살기 때문이다. 정신문화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가 공포심이다. 일반적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숨을 죽이게 된다. 숨을 죽이는 것은 생활의 리듬이 크게 흔들리며 깨진 상태다. 그것은 숨 막히는 생활이다. 바로 답답한 생활이다. 서로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보다 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삶이 있겠는가? 답답함의 지속은 동물의 내장을 점점 부패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셋째, 식물의 뿌리다. 식물에는 물이 바람보다 더 소중하다. 뿌리에는 더욱 그러하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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