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24-08-13 10:0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신정론의 담론(談論) -Ⅰ


교회사 이천 년 동안 기독교 신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고 깨달아 하나님을 믿는 분량만큼의 신앙 수준에 따라 요약 정리한 조항인 신조’를 체계화시킨 교리, 곧 교의신학을 정립하여 가르쳤다. 그중 신학의 난제에 포함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변호’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단어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 있다. 신정론은 오래전부터 학자들이 각자 연구한 것을 가지고 심도 있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을 상호 토의, 토론하며 이론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논리적인 해석보다 철학적 방법에 의한 사색적인 연구로 신학의 체계를 완성해 왔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성경을 학자마다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교리를 부각하는 데 치중하여 논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신학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 보이는 이론도 있다. 그래서 여러 채널을 통해 ‘신정론’이 어떻게 담론 되는지 궁금하여 짧은 시간에 관련 자료를 찾아 탐구했지만 명쾌한 해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번 호의 주제로 정해 간략하게 축약하여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신정론’이란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악, 고통, 고난, 재난 등의 부정적인 일들을 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 그리고 전지전능하심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을 변호(defense), 변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신학자들의 신정론적 변증이 반종교적·반기독교적인 자들과 무신론자들에게는 무기력하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세력들은 성경의 정확무오에 대해 성경의 문자적 오류와 문서설로, 악과 고통에 대해 하나님의 무능력함을 빗대어 오늘날에 있어서 더 공격적이면서도 공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최근에 다수의 성도가 교회를 이탈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그래서 과거 신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신정론은 무엇이 맹점이고 문제점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성경 중심적 관점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다수의 신학자는 성경을 연구하는 관점이 여타 종교처럼 윤리,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선(善)하신 하나님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악과 선하신 하나님 사이의 갈등을 깔끔한 결론이 아닌 애매모호한 제한적 허용, 자유의지 부여, 죄의 책임 소재 등의 용어들을 덧붙여 신학의 혼란만 초래한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무신론자들은 그들만의 논리로 신의 부재의 정당성을 가지고 세상의 비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의 밑거름이 되었고 현대신학에 영향력을 끼친 대표적인 두 신학자가 이론화한 신정론의 견해를 이하에서 요약 정리해 보았다.
사도 요한의 제자 중 서머나 교회 목회자 폴리갑(Polycarp, 69~156)이 있는데, 폴리갑의 제자인 2세기 초기의 신학자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의 저서 『이단논박』에서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했다고 봤다. 그리고 세상의 악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로 말미암아 촉발되었다고 했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보았으며 이로 말미암아 인간이 자유롭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악의 존재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이 악의 존재를 허용한 것은 인간의 성화와 진실한 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고 믿었다. 또한, 그것은 인류의 구속을 위한 계획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며, 악의 존재는 인간을 구원하는 과정에서의 필요악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 간다는 시각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성숙하지 못한 미숙한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타락은 필수 조건이었다고 하면서 타락 후 선과 악을 경험하면서 성숙해 가는 능력 향상을 위한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악과 고통은 성숙한 영혼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의 필요악이라고 했다.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은 악의 문제와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은 이레니우스와 거의 유사하다. 그의 저서 『하나님의 도성』과 『자유의지론』에서 악의 기원은 원래 존재한 것이 아니고 ‘선의 결핍(Defectus boni)’, 즉 선이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라는 결핍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했다. 그러면서 피조물인 인간과 천사가 자신들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를 오용과 남용함으로 죄악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므로 죄악의 직접적인 책임은 인간과 천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에 있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반박하는 것이 어거스틴의 핵심 주장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악의 존재를 허용하였으나 그것은 구속 계획의 한 방편으로 믿었다. 그리고 악과 고난은 인류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는 데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 두 신학자의 주장을 보면 성경의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종교 철학적 사색에 의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주장을 도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함으로 말미암아 죄악이 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성경 어디에 자유의지라는 네 글자가 있는가? 만약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다면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하나님보다 위에 아니면 그 준하는 지위와 능력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상의 도덕적인 측면에서 선은 악보다 너무 나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문명 세계에서 사람들의 엄청난 기술력으로 말미암아 누리고 있는 다양한 시설 장치물, IT 상품, 자동차, 무기, 반도체, 우주왕복선 등은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이 너무 많은 데 비해 우리 시각으로 직접 목격한 하나님의 작품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선(善)의 기준은 민족, 나라, 이념, 종교, 시대와 개인 가치관 등에 따라 각기 달리한다. 이러한 선(善)의 기준들로, 성경 역사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인간들의 윤리·도덕 중심적 사상에 비추어 상식 이하의 사건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성경이 말하는 선과 악이 대개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윤리 도덕적인 선(善)과 악(惡)을 말하는 것일까? 과연 성경은 선과 악 그리고 자유의지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부족하지만 성경적인 근거를 찾아 계속해서 정리해 보려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donald257@nate.com

신정론의 담론(談論) -Ⅱ
‘중보’의 오용(誤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