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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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11-11 11:1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전가와 주입의 차이로 본 칭의와 성화 이해하기

“의롭다”의 선언과 “거룩해짐”의 역사, 두 궤도의 하나 됨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은혜가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전가(Imputation)와 주입(Impartation)이라는 두 단어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전가는 법정적 선언의 언어이고, 주입은 실제 변화의 언어다. 전가는 칭의(Justification)를, 주입은 성화(Sanctification)를 설명한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혼동되어서도 안 된다.

전가: 법정에서 내려진 의의 판결

전가란 “남의 것을 내 것으로 간주해 주는 일”이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믿는 자에게 법적으로 전가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신다는 데 있다. 여기서 의는 ‘내 안에서 발견된 도덕적 상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신분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은 ‘이중 전가’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었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 예를 들어 빚투성이 계좌가 어느 날 부자의 전 재산이 이체되어 즉시 흑자로 전환되는 것과 같다. 통장 상태(신분)는 즉시 바뀌지만, 돈 쓰는 습관(성품)은 그대로일 수 있다. 이 즉각성과 완결성이 칭의의 성격이다. 루터가 말한 “동시에 의롭고 동시에 죄인”은 바로 이 긴장을 말한다. 신분은 완전, 성품은 진행 중이다.

주입: 성령으로 인한 내적 실재의 변화

주입은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 안에 새 생명과 거룩함을 부어 변화시키는 사역을 뜻한다. 이는 성화의 영역이며, 성령의 지속적 역사로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여기서 “부은 바 됨”은 단순한 간주가 아니라 내면으로 흘러 들어와 거주하는 실재를 뜻한다. 전가가 법정적 선언이라면, 주입은 병원과 훈련소에서 일어나는 재활과 재형성이다. 하나님은 새 마음을 주시고(겔 36:26),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욕구, 습관, 관계를 다시 배열하신다.

칭의와 성화: 구원의 두 궤도, 한 목적

칭의(전가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의가 내게 계산되어 하나님 앞에서 지금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단회적, 완결적이다.
성화(주입의 과정)는 성령께서 거룩함을 실제화하여 내 삶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킨다. 평생적, 진행적이다.
이 둘은 시간적·논리적 구분은 있으나,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칼뱅은 “칭의는 성화에서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둘을 혼동하지 말라.”고 말했다.
칭의 없는 성화는 근거 없는 도덕주의이고, 성화 없는 칭의는 값싼 은혜가 된다. 전가가 뿌리라면, 주입은 열매다. 뿌리 없는 열매는 썩고, 열매 없는 뿌리는 죽는다.
전가는 정체성을 준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이 확신이 죄책감과 자기비하의 굴레를 끊는다. 주입은 체질을 바꾼다. 말씀, 기도, 성례, 공동체, 사명 안에서 성령의 루틴이 내 안의 사랑과 절제를 키운다.

네 가지 균형점

1. “나는 이미 의롭다 →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아니다. 참된 칭의는 성령의 주입을 필연적으로 낳는다(약 2:26). 믿음은 혼자 있지 않다.

2. “성화가 더해져야 비로소 칭의가 완성된다?”
아니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근거한 완결 선언이다(롬 8:1). 성화는 그 선언의 증거와 열매다.

3. “전가는 법적 허구, 주입만이 진짜 변화?”
아니다. 전가는 하나님의 실제 판결이며 하늘 법정의 객관적 사실이다. 주입은 그 사실의 내적 구현이다.

4. “전가와 주입을 뒤섞어도 되지 않나?”
아니다. 뒤섞이면 공로주의 또는 무율법주의로 흐른다. 구별은 은혜를 지키는 울타리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두 궤도의 접점

전가가 나를 그리스도 안에 두고, 주입이 그리스도를 내 안에 산다 하게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이 고백이 칭의의 담대함과 성화의 겸손을 동시에 낳는다. 오늘, 우리는 “전가된 의” 위에 서서 “주입되는 거룩”을 따라 걷는다. 선언은 이미 이루어졌고, 변화는 지금 진행 중이다. 의롭다 여김 받은 자답게, 거룩해져 가는 자답게—이 두 궤도는 결국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하나의 궤도로 수렴한다. 그리고 그 연합이 우리의 현재를 붙들고, 미래의 영광을 예고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여인갑 장로 (지구촌교회 / (주) 시스코프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은혜 받는 교회 은혜 갚는 교회 (사도행전 2장 41-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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