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 건축과 기독교 건축 (8)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다니엘 2:39, 개역성경)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으며 (다니엘 7:6, 개역성경)
요즘은 고대 그리스 문명에 대해 자세하게 역사를 살펴보다 보니, 일상 속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의식주와 문화생활 곳곳에서 그리스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오랫동안 식탁에 놓여 있는 과자 포장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모 제과회사가 만든 ‘Delos(델로스)’ 과자였다. 포장지에는 그리스 신전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 과자를 생산한 유래를 찾아보고자 했으나 인터넷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마침 그리스 델로스 동맹과 관련된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라 몇 초간에 희열을 느꼈다.
우리 기독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을 어떠한 계시의 방법으로 사용하셨는가를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헬레니즘 시대로 넘어가기 전의 역사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 결성하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의 멸망은 외부 간섭보다는 내부 갈등이 원인이었다.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polis)들은 평소에는 독립적인 정치 체제의 형태를 보이다가도 공동의 적인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에는 적극적으로 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이렇게 결성한 그리스 동맹은 페르시아와 마라톤 전투(BC 490), 살라미스 전투(BC 480) 등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의 과정이 얼마나 처절한 전투였는지는 이들의 역사가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다. 아테네 시민들은 전쟁의 승리는 자신들이 ‘자유의 방패’이자 ‘자유의 수호신’이 안겨 주었다는 사실을 역사에 각인시켜 주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 침략에 대비하여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펠로폰네소스 동맹(Peloponnesian League)을 결성하였다. 그런데 델로스 동맹의 맹주(盟主)인 아테네는 주도권을 쥐고 동맹인 도시국가에 공물을 강요하기도 했었다. 또한, 델로스섬의 아폴로 신전에 보관 중이던 동맹의 국방비, 공동금고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로 옮겨서 그들의 국가 재정처럼 국방비 지출이 아닌 도시 미화와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하는 데 지출하기도 했다. 동맹의 국방 성금 금고를 BC 454년경 아테네 황금기를 이끌었던 정치가이자 장군인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년경~BC 429년)의 주도로 이전했다. 이러한 것이 아테네 제국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과 일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동맹의 공동방위자금을 전용하여 사용했다는 것에 비판했다.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당시 정치인들이 국가의 중요한 보물들을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신전에 왜 보관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명목상으로는 ‘안전을 위한 보호 조치’였으나, 실제로는 재정 통제와 은닉의 목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신전의 불가침성과 공공 신탁의 상징성을 이용해 재정을 장악하려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한편 고대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 도시국가들이 중심이 된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스파르타가 맹주(盟主) 역할을 했다. 동맹 형성 시기는 대략 BC 550년경 스파르타가 이 지역에서 패권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정치적 체제는 민주정인 아테네와 달리 스파르타는 귀족정(寡頭政) 동맹으로서 각각의 도시국가 자치권을 존중하였으나, 외교, 군사 등 일부 권한은 스파르타의 결정이 우선됐다.
도시국가 쇠퇴는 내부분열, 패권 경쟁, 이념 갈등이 지속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내전은 페르시아와의 전쟁 이후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기반으로 힘을 입어 세력을 넓혀가자 스파르타가 이를 견제하면서 촉발되었다. 역사는 이 두 동맹의 갈등을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년~BC 404년)이라고 부른다. 무역이 발달했던 아테네는 해군이, 스파르타는 육군이 우세를 보였다. 아테네는 성안에서 문을 잠그고 장기전을 펼쳤으나 성내에서 전염병의 확산과 재정난 그리고 내부 분열로 스파르타에 패했다. 이러한 두 도시국가의 피 흘림의 다툼은 일반적인 충돌이 아니라, 아테네의 민주정과 스파르타의 귀족정·군국주의를 기반한 이념 간의 대립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스파르타는 일시적으로 그리스 전역을 장악했으나 과도한 패권 의식, 도시국가에 대한 간섭, 해상 전투력 저하, 장기적인 전쟁 등으로 국가 경제가 피폐해졌다. 결국에는 주변국인 테베(Thebes)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도시국가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혼란의 틈을 타서 그리스 동북쪽 지방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3세가 그리스 전역을 장악하면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Polis)는 독립성을 잃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쇠퇴는 주변 국가의 침략보다는 도시국가 내부 분열, 패권 경쟁, 이념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표범 같은 알렉산드로스 3세가 등장하다
고대 그리스 역사는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위의 본문 성경 다니엘서에 예언된 헬라 제국(Hellenistic Empire, BC 323년~BC 146년)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 바로 표범 같은 알렉산드로스 3세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 왜 그를 표범 같다고 예언하셨을까. 그것은 헬라 제국이 형성되는 과정에 잘 드러나 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1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그리스, 페르시아, 북인도, 이집트 등을 침략해 대제국을 이루었다. 그리고 주변 국가를 정복할 때 패한 적이 없으며, 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엄청난 학살과 파괴만 남아 있었다. 먼 훗날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Dante Alighieri, AD 1265년~1321년)는 그의 저서 『신곡』 지옥 편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를 ‘폭력과 피의 폭정을 휘두른 자’들 속에 넣었다. 단테가 이처럼 표현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3세가 동물의 세계에서 표범처럼 날렵하고 잔혹한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문화와 문명은 종교 건축과 동일한 본질을 지녔다
종교 건축은 협의(狹義)로서의 건축물에 한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 속에는 역사관, 세계관, 인생관, 종교관 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 관련 구조적 특징을 서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건축물과 연관된 내면의 세계와 사상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도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정복한 도시마다 새로운 종교 건축, 즉 그리스 문화 융화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로 헬레니즘 문명(Hellenistic Civilization)이 탄생했다. 그가 ‘대왕’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군사적 정복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 종교 건축(문화)을 전파한 영향력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이와 유사하다. 고려시대에는 숭불정책(崇佛政策)으로 전국 방방곡곡 산골짜기에 사찰이 세워졌다. 그 당시 모든 문화는 불교의 꽃을 피우기 위해 국가기관에서도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깊이 관여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사상에 따라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은 집터 뒤쪽에 사당을 지어 조상을 숭배했다. 서민들은 제기(祭器)에 음식을 차려놓고 매년 조상의 은혜를 기리고 가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궁에서는 종묘에서 국가적으로 제례(祭禮)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보면, 보편적인 문화·문명은 종교 건축과 동일한 본질을 지녔다고 본다. 두 영역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일심동체(一心同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상들을 과거에 한정하지 않는다. 현대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형태가 다를 뿐이다. 종교 건축은 단순한 시각적인 측면을 뛰어넘어 관념의 세계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 건축의 한계는 인간들의 생각 속에서 건설된 사상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기독교 건축은 그러하지 않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일반적인 종교와 비교했을 때 근원부터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 건축의 서술은 로마시대 역사까지 더 살펴본 후에 논하도록 하려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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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
은혜 받는 교회 은혜 갚는 교회 (사도행전 2장 41-47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