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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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6-13 13: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믿는 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의 해석 오류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 개역성경)

오래전 청소년 시절에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밤이 늦도록 예정론, 자유의지 등의 주제를 가지고 정답이 없는 답답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그 당시 목회자들이 목청 높이며 가르치려 했던 내용, 특히 부흥회를 할 때 부흥사들 대부분 강조했던 마가복음 9장 23절이다. 그들은 이 구절을 성도들에게 ‘믿는 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해서 가르쳤다. 그런데 얼핏 들어도 이 말은 비현실적이며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오직 목사라는 종교 지도자의 권위에 압도당하고 이성적인 합리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맹종하기 일쑤였다. 조금의 언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텐데, 성경 말씀의 신적 권위와 성경 내용 자체에 무지했던 탓에, 그러한 허구적 해석을 맹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그릇된 해석인지 그 본문의 정확한 뜻을 밝히고, 그 문맥과 나아가 마가복음 전체 주제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간단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이 성경 해석의 대원리이며 신앙생활의 근본 법칙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은 누구라도 성경의 모든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도록 약속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믿음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전능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임을 고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론부터 강조한다면 만사에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자는 오직 전능자 하나님뿐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실이다.

마가복음은 1장 1절에 예수님이 어떤 신분인지 처음부터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임을 초점에 맞추어서 시작한다. 이 주제에 바탕을 두고 우리는 마가복음 9장 14절부터 29절까지 내용을 우선 살펴보고 23절의 바른 뜻을 확인해 보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그리스도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 주면서 당부의 말씀을 하시고 내려오는데 제자들이 큰 무리에게 둘러싸여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었다. 변론 내용은 무리 중 한 사람이 벙어리 귀신이 들린 아들을 예수께 데려와서 고치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 부재중인 고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제자들은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질책하신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19) 예수께서는 믿음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제자들의 믿음도 전적으로 자신이 주관하시는 분이다. 즉 사도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나아가 표적을 행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속한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을 질책하시는 사건은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시며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계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에 예수께서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의 아비에게 환자의 상태를 묻자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간청했다. 이 사람이 한 말을 보면 ‘무엇이라도’라는 말에는 난치병에 걸린 아들에 대해 단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해석이 필요한 부분은 “믿는 자에게는”이라는 부분이다. 이 말은 헬라어로 ‘토 피스튜온티(to pisteuonti)’라고 하는데, 이는 ‘믿고 있는 그이에게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믿는 자’는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나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즉 하나님 아들로 구약에서 약속했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셔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칠 수 있는 신분임을 증거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24절에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는 말씀이 이어진다. 즉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 오직 예수께서 아들을 구원해 주실 수 있음을 증거하게 하신다. 믿음은 믿고 싶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야만 한다.(엡 2:8) 그러자 예수께서는 귀신에게 명하여 아이에게서 나가게 하시는 표적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신다. 이 표적 후에 제자들은 예수께 여쭙기를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답변하신다. 이 구절에서 ‘기도’는 헬라어로 ‘프로슈케(proseuche)’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적적인 표적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에 따라 나타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을 구하는 기도 외에는 이러한 표적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표적을 보여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박용기 저, 『성경강론 14』(성남: 진리의말씀사, 2010) ‘마가복음’ 강론집 참고)]

앞의 본문 마가복음 9장 14절부터 29절까지 말씀을 다시 요약하면, 예수께서는 구약의 언약을 성취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시므로 귀먹고 벙어리 된 귀신을 쫓는 표적을 행할 수 있는 하나님 아들의 신분으로 자신을 증거하셨다. 그렇다면 전체 맥락으로 볼 때 23절의 ‘믿는 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힘으로 결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금 시대는 예수님처럼 순간 단번에 믿음과 상관없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렇듯이 마가복음 9장 23절의 그릇된 해석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은 앞의 본문과는 무관하며, 만약 앞의 본문에 근거해 우리가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겠다는 심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해석이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신학자들 혹은 목회자들에 의한 그릇된 성경해석은 신앙생활에 대해 엄청난 혼란과 파국을 초래하고 있다. 마가복음 9장 23절처럼 한 문장이 아니라 단어 하나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므로 생기는 대혼란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 문법적 해석부터 신중을 기하고 동시에 해당 본문의 문맥을 살피고 나아가 각 권의 주제를 확정해야만 한다. 나아가 성경 권위의 핵심인 여호와 계시 중심의 시각에서 성경 전체의 단일 주제를 확증하는 일을 교회 생활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donald25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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