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비판과 정리 4 (25~33장)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교회관’을 어떻게 왜곡했는가?
객원기자 오늘 좌담회는 몇 차례에 걸쳐 전체적으로 요약 정리하는 마지막 시간으로, 제25장부터 제33장까지 정리하면서 교회 헌법의 뿌리가 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목회자 소유물로 전락시킨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습니다. 올바른 신앙고백을 수립하여 건전한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목적으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오히려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성경권위보다 목사권위를 내세우는 계기를 만든 사실 앞에 그 심각함이 있습니다. 신앙고백서는 당장 폐기해야 할 악법의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백서의 비성경적 부분을 비판해 주시고 더불어 성경적 대안도 함께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SH 연구생 기자님이 지적하신 대로 신앙고백서의 비성경적인 부분이 오늘 살펴볼 제25장 ‘교회’에 대한 고백에서도 나타납니다. 신앙고백서의 교회관은 지금부터 370년 전에 작성된 것으로, 중세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성직자 중심의 교회관입니다. 왜냐하면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로 분리하고, 유형 교회의 매개자로 성직자를 두면서 의식적이고 제도적인 ‘공예배’를 강조함으로 교황체제에서 벗어나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직자와 말씀과 규례’를 동등한 것으로 강조함으로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를 교회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앙고백서는 하늘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신령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배하고, 보이는 교회는 목사가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로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여 로마 가톨릭의 교회 체제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교회에는 반드시 목사가 있어야 하고, 교회 헌법이 지배하고, 당회가 조직되고, 예배와 헌금인 제물이 있어야 ‘정상적’이라는 잘못된 목사 중심의 교회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보이는 교회를 목사가 지배하는 것으로 된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로 분리함으로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의 교회를 왜곡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성령론의 부재(不在)로 교회관을 잘못 이해한 고백문에 대한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상교회는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업으로 상속해서 통치하도록 물려주신 나라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부터 10절을 보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구원 받았음을 택함 받은 성도에게 분명하게 밝히어 창세전 이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 비밀을 알려주시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사건으로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즉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성령을 통해 하늘에 있는 교회와 땅에 있는 교회를 하나 되게 조직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지상에 있는 성도들의 심령 속에 내주(內住)하셔서 각각 은사대로 교회의 몸을 이루게 하십니다. 만드신 만물을 첫 아담에게 다스리라고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에 있는 것뿐 아니라 땅에 있는 것도 다 맡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23절에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 된 신령한 연합체로서의 교회를 통해 모든 피조 세계에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충만하게 계시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결국 성령론의 부재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하나의 교회를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로 분리해서 접근케 되므로 자체가 신령한 하나님의 교회를 인위적으로 만든 인간 중심적인 비성경적 교회관을 만들었습니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신앙관’을 어떻게 왜곡했는가?
S 연구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6장에는 ‘성도의 교통’에 관해 나왔습니다. 오직 보혜사 성령만이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인도하시고 성도들을 복음 진리로 양육하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나 교회를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로 나눈 것처럼 성도들은 자신의 삶도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 목사와 성도 자신을 스스로 계층화하여 생각하고,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세속적이고 목사가 있는 교회에 나오는 것은 영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 익숙합니다.
박홍기 연구원 이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장 10절) 하신 것처럼 곧 하늘에 있는 교회와 땅에 있는 교회를 하나로 통일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창세전 비밀이었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자신이 받은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삶 전체이며, 성령의 교통하심만이 있을 뿐입니다. 곧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있는 교회와 땅에 있는 교회를 성령의 사역으로 하나로 통일시켜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관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로 나눈 고백서의 교회관은 성도들의 삶까지 이원론으로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신령한 것은 하늘의 것이고, 이 세상에 신령한 교회가 있는데도 이 세상 것은 다 세속적인 걸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신앙고백은 이원론적 교회관으로
성도의 삶을 주관하시는
성령의 교통 사역을 왜곡했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례관’을 어떻게 왜곡했는가?
P 연구생 맞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7장 성례(聖禮)’와 ‘제28장 세례(洗禮)’ 그리고 ‘제29장 주의 만찬(晩餐)’을 살피면서, 교회관이 잘못되면 성도들의 신앙생활 뿐 아니라 성례관도 잘못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개혁파 교회의 ‘성례’인 ‘세례’와 ‘성찬’은 그 성경적 근거가 성경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는데도 목사들의 특권처럼 남용되고 악용되고 있습니다. 할례 의식은 세례의 근거로, 유월절 음식 먹는 의식은 성찬식의 근거로 잘못 보고 있습니다. 할례 의식이든 유월절 의식이든 모두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구약의 모든 것은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의식과 제도와 형식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히 9:10)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신약교회 시대에 어떤 특별한 의식을 만든다는 것은 한마디로 비성경적 발상입니다. 그런데 개혁파 교회에서 로마 가톨릭의 칠 성례 중에서 두 성례를 남겨 성례 집행자인 목사가 주관하도록 한 것은 개혁되어야 할 로마 가톨릭의 잔재입니다.
J 연구생 고백서에서 ‘세례’에 대한 근거로 삼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이 구절(마 28:19) 또한 성령의 사역으로 사도행전에서 성령세례로 성취하셨고 지금도 성령께서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신약교회 시대에 성령께서는 중생부터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역을 홀로 주관하시며 성도들을 인도하십니다.
세례뿐 아니라 ‘성찬’을 특별한 의식으로 구별하여 특별한 사람이 구별된 장소에서 하는 것으로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 또한 맥락에서 보면 목사를 중심으로 거행한 성찬이 아니면 합당치 않다는 말로 성찬식에 대한 근거로 삼은 고린도전서 11장 27절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보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 마시는 모든 사례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인 교회를 통해 성취하실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고백서의 성찬식은 성령이 교통하게 하신 성도간의 교제로서의 ’주의 만찬‘인 애찬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신약교회 시대에는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역사하셔서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을 살리는 것이 신령한 세례입니다. 신령한 성찬은 하늘로부터 오신 생명의 양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먹고 마시는 성도의 삶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성막 중심의 생활을 하게 하셨고, 신약교회 시대는 죄에서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호와를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찬은 성도들이 먹고 마시는 생활인데 이것을 성찬식으로 의식화, 제도화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로마 가톨릭이 제도적으로 만든 것이고 신앙고백서가 이것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 ‘말씀, 성례, 규례’를 동등하게 두면서 제도화하여 정치집단으로 흘러간 것이지요. 형식이나 제도가 아닌 교회의 절대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고 찬양, 찬송이 있는 경건회만 있을 뿐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빈약한 성경적 근거와
인위적인 해석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의 사역을 왜곡했다!
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적했는가?
객원기자 다음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0장 교회의 권징’과 ‘제31장 대회(大會)와 총회(總會)’에 대한 고백문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결국 목사가 교회를 장악하도록 길을 열어놓고 목사나 당회, 그리고 그들이 모인 대회나 총회를 통해 인간이 교회의 왕과 머리가 되는 불법적 주장과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오용한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대한 해석을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Y 연구생 지적하신 대로 신앙고백은 성경을 잘못 인용함으로 비성경적 독소 조항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근거 구절입니다. 로마 가톨릭 체제는 어떤 성경 본문보다 이 본문 하나만 가지고 아직도 교황 중심의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370년 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자들조차도 이 본문을 로마 가톨릭의 해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말씀은 베드로가 했던 고백, 즉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진리를 교회의 기초로 삼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반석’은 인칭(人稱)인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를 통해 고백하게 하셨던 진리, 즉 오직 예수만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지칭(指稱)하는 삼인칭 대명사로서 진리를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반드시 수정해야 할 해석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마태복음 16장 19절을 오역함으로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대적했다!
박홍기 연구원 그리고 교회의 직원(교직자, 목사, 당회)에게 천국 열쇠를 맡겼다거나 말씀과 권징의 권한을 주었다거나 성도들의 죄를 자기들이 임의로 유지시키거나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천국 열쇠를 베드로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인 모두에게 천국 백성의 자격인 천국 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고백서에서 정치원리를 목사에게 맡겼다고 할 때, 그 근거를 디모데전서 5장 17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또한 오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잘 다스리는 장로’라고 할 때 ‘다스리다’는 말이 지배한다는 말이 아니라 ‘인도하다’, ‘돌보다’, ‘보살피다’라는 뜻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을 통일되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부활과 심판’을 어떻게 왜곡했는가?
SH 연구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마지막 ‘제32장 죽음 이후의 상태와 부활’ 그리고 ‘제33장 최후의 심판’에 대한 고백문은 이미 살펴본 제30장과 제31장을 반드시 연결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앞서 고백서에서 목사가 ‘천국 열쇠’를 가졌다고 비성경적으로 확정함으로써 모든 성도들은 천국 가는 문제를 목사가 결정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목사의 말에 얽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높아진 목사 권위로 성도의 부활과 심판에 대한 최종 권한도 목사가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S 연구생 동감합니다. 최후 심판은 인간의 의지적 노력에 따른 행위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선악 간 작정하시고 예정하신 뜻에 따른 주권적 통치입니다. 인간의 양심을 자극하여 선한 양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면서 최후 심판이 있다고 강조하면 성도들은 불안하여 결국 ‘천국 열쇠’를 가진 목사의 말에 얽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심판을 내세워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목사 권위를 높임으로
하나님의 영광 선포와
영광 찬양을 왜곡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지금까지 함께 확인한 바와 같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모든 오류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선포하는 여호와 계시의 올바른 성경관을 확증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신관, 역사관, 교회관 등 모두를 비성경적으로 왜곡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성경권위’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성경권위를 확정하지 못한 채 개신교의 정신을 계승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오히려 교회의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찬탈하는 불법의 온상이었음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이 신앙고백서는 성경에 대한 총체적인 뜻을 구체적으로 확증하지 못한 채 부분적으로 인용되면서 잘못된 비성경적 독소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를 왜곡하고 인간의 독립된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 은혜로 시작해서 인간의 자유의지로 마치는 인본주의적 고백문을 만들었고, 로마 가톨릭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교회의 온갖 비성경적 불법 조항을 만들어 내는 교회 헌법의 뿌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속히 폐기하고 교회의 유일한 법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성령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많은 지체들이 진리로 일체를 이루어 오직 하나의 교회로 세워 가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올바른 성경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건전한 교회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성경 교육의 유일한 대안으로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통해 성경만 교회의 절대표지임을 확증 받기를 바랍니다. 성경신학은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의 영광’을 위한 신학입니다. 제가 정리한 ‘성경신학총론(The Bible Theology Series 총 20권, 진리의 말씀사)’은 하나님에 관한 논리적 체계이며 성경에 바탕을 둔 자료의 종합입니다. 성경 내용 속에서 소개되어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여호와 중심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성경신학입니다. 1,000여 강의가 모두 인터넷에 올라와 있습니다(www.ibt.or.kr).
오직 성경권위만을 붙잡고자 합니다. 누군가 제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첫째도 성경, 둘째도 성경, 셋째도 성경입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심이 성령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국 교회가 열심히 공부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성경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성도들에게 주시길 항상 기도합니다.
성경만 교회의 절대표지임을 ‘성경신학’을 통해 확증 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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