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존 요더의 윤리학 <2>
1992년 2월 프레이리 교회의 장로들을 통해 세워진 테스크포스는 미국 전역의 메노나이트 교회의 여성들로부터 요더에게 받은 피해에 대한 보고를 접수하고 그중 8명의 증언을 청취하였다. 테스크포스는 요더를 따로 소환하여 이 증언들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마침내 피해자들의 증언이 참된 것임을 확증한다. 오랜 기간 계속된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드디어 교회에 들리게 된 것이다. 요더의 목회직을 정지하면서 발표된 위원회의 보도 자료는 “요더가 성적인 경계들을 침범했다”고 언급했다.
1996년까지 무려 4년간 계속된 징계 절차를 종결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요더의 징계 절차가 끝났음을 알리는 1페이지의 공식 발표문을 놓고 8번 넘게 초안이 쓰이고 회람되었다. 이 공식 발표문은 징계 절차에 참여한 주체들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인디애나-미시간 콘퍼런스는 요더가 이 공식 발표문과 함께 사과문을 발표할 것을 요청했지만, 요더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1988년 기독교윤리학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학자로서의 명성을 흔들림 없이 계속 쌓아가고 있었다. 메노나이트 서클 안에서 제기되는 피해 여성들의 절규는 더 넓은 바깥세상에서는 들리지 않는 외침이었다. 징계 후 요더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교회 앞에 더욱 복잡한 도전들을 남겨 놓았다. 나아가 요더가 진실로 자신의 비행들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후회하고 회개하였는지에 대한 충분한 증거들이 없고 그 의심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가 사망하고 오히려 그의 책들과 그에 대한 책들의 출판은 늘어났다. 2000년 4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10권의 책을 선정해서 발표했는데,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1972)은 그중에 다섯 번째로 선정되었다.
한 자연인으로서 요더는 사라졌지만, 신학자로서 학자로서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최근의 독자들은 요더의 성폭행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그의 많은 희생자들은 여전히 요더의 폭력과 교회의 침묵이 만들어 놓은 그늘에 머물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내 들려지지 않았다. 이 ‘난처한’ 상황은 수많은 피해 여성들과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왔다.
존 하워드 요더의 삶과 그의 가르침 사이의 윤리적 모순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공개성’과 ‘투명성’은 최근에 일어난 요더의 성폭행 논란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것이다. 요더의 비밀스러운 실험에 대한 소문은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불거져 나왔지만, 요더의 성폭행에 대한 언론의 최초 폭로는 1992년 6월 29일이 되어서야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보자면 요더의 성폭행에 대한 메노나이트 교회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대가 만드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피해자들이 겪은 정신적-육체적-영적인 피해를 돌보기보다 ‘저명한 신학자’와 ‘완전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교회의 모습은 몹시 실망스럽다. 하지만, 곳곳에서 요더의 큰 그늘에 가린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애쓰고 저항했던 이들이 있었다. 피해자들의 친구였던 바바라와 루스가 있었고, 불의에 분노하는 베델대학의 학생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아나뱁티스트 교회는 전통적 ‘평화교회’(Peace Church)로서 사랑과 평화의 윤리적 삶과 비폭력적 갈등 해결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통 위에 있다고 말한다.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은 이들의 대표적 신념으로, 죄를 범한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가해야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를 거부하고 ‘가해자-피해자’ 양측 모두의 회복의 길을 찾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더의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한 메노나이트 교단의 치리 과정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들의 과오를 철저히 회개, 고백했으며, 그들의 치유를 위해 학교와 교단 전체가 나선 점은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요더에 대한 재평가와 성추행 등에 대한 진실규명을 강조하고 나왔다. 그해 10월 <뉴욕 타임스>의 “나쁜 사람이 좋은 신학자가 될 수 있을까?”(Can a bad person be a good theologian?)라는 기사는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뉴욕 타임스는 “신학자나 종교인도 사람이기에 이상적인 행위를 요구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적어도 얼간이나 막돼먹은 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꼬고, 보통의 인간보다 못한 ‘위대한’ 신학자의 진정성에 대해 2013년 AMBS 총장인 사라 웽거 쉥크를 비롯한 젊은 메노나이트 교단 여성들은 요더의 신학을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신학계는 매우 난처한 입장을 표하면서도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학문적 연구 성과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 기독교계는 “신학은 신학자의 삶의 자리를 반영한다”는 취지로 ‘요더의 신학은 진정성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논란이 일었다.
메노나이트 교회는 그래도 결국 메노나이트의 최고 지도자요 세계적인 신학자인 요더의 성추행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그의 생전에 그가 차지하고 있던 그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 앉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성적인 문제로 인해 비교적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치리하지 못했다. 물론 이 문제로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적지 않으나 그들은 대개 교계적으로 별 비중 없는 사람들뿐이다.
요더의 성 추문은 1970년대부터 소문이 돌았다. 그의 추행이 본격적으로 폭로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더 흐른 1992년이었다. 그를 징계하는 데는 4년이 더 걸렸다. 그러는 동안 그의 저서 “예수의 정치학”은 20세기를 대표하는 10권의 저서 중에서 다섯 번째를 기록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그가 몸담은 메노나이트나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에게 영원히 진정한 용서를 위한 고백의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어느 원로 교수의 말처럼 “한국교회는 망해야 회개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를 이 엄청나게 문란해진 성의 수렁에서 헤쳐 나오게 할 수 있을까? 강단은 물질적인 축복과 번영을 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을 외쳐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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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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