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선교사는 거지다!
“선교사는 거지다” 전북서노회의 파송을 받고 인도에서 선교하는 기장 측 선교사 이옥희 씨의 에세이집 제목이다. 그는 남인도의 불가촉천민인 달리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다. 달리트, 즉 “불가촉천민”은 ‘이들과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뜻으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최하위인 노예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접촉할 수 없고 접촉해서는 안 되는 천민이란 뜻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인 사성에 속하지 못하는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카스트란 인도 특유의 세습적 신분 계급제도다. 인도의 모든 국민들은 이 네 개의 계급 중 어느 하나에 속한다. 그중 가장 높은 계급은 승려 계급인 브라만이고, 두 번째 계급은 귀족과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이고, 세 번째 계급은 평민인 바이샤, 그리고 네 번째 계급은 노예인 수드라 계급으로 나뉜다. 카스트에 따른 직업의 세습이나 카스트 간의 통혼 금지 따위의 엄격한 규제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달리트는 이 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열외의 사람들이다. 노예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 달리트들은 노예마저도 접촉하지 못한다. 오직 달리트로 나서 달리트로 살다가 달리트로 죽을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인간 이하의 인간들이다. 달리트들은 달리트 외에는 접촉할 수 없는 “불가촉천민”이다.
불가촉천민은 카스트 제도 밖의 구성원으로, 인간사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그 무엇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가장 비천하다고 여겨지는 직업에 종사해 왔다. 예컨대 오물 수거, 시체 처리, 가죽 가공 등이다. 일반인들은 그들과 접촉하거나 심지어는 그림자가 스치기만 해도 오염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인도 남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들을 보기만 해도 부정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가촉천민은 밤에만 활동해야 한다. 그들은 사원 출입이 금지되고, 마을 공동우물을 긷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신발을 신을 수도 없었고, 버스나 기차에 빈자리가 있어도 앉을 수 없다.
이옥희 선교사는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에 안았다. “땟국에 찌든 셔츠들, 새 둥지처럼 흐트러진 머리들, 등허리에서 삭고 있는 빛바랜 블라우스들, 한 줌도 안 되는 앙상한 발목들, 상처투성이의 투박한 발들, 주름투성이의 이가 없는 얼굴들, 표정 없는 얼굴들은 나를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한 가운데로 초대했다. 그들의 모든 것이 그들의 고통을 말해 주었다. 그들의 슬픔과 불행과 아픔을 웅변했다.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겨운가를 드러내 주었다. 생존 자체에 부대끼고 있는 그들에게 희망의, 해방의 메시지는 너무 버거웠다. 나는 메시지를 내려놓고 그냥 하염없이 울었다. …… 선교사는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이다. 우는 자의 사연을 들어 주는 것이었다. 선교는 아픈 자와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약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의 책에 추천사를 쓰신 분은 “한국인 선교사 한 명 없는 남인도, 저 데칸고원의 후미진 구석에서, 그것도 세상 끝의 사람들인 불가촉천민 달리트들 속에서 때로 절망하고 때로 신음하며, 수시로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에 흔들릴 때에도 그녀가 인도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은 거기 그리스도가 계시가 계시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슴 속에 그리스도가 그곳을 떠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 선교사는 자신을 “거지”라고 말한다. 1997년에 노회에서 파송을 받은 그는 “선교사는 하나님께 구걸해 나도 살고 타인도 먹이는 하늘의 거지”라고 했다. “선교사가 거지면 하나님은 거지의 주인이요, 거지 대장이 되신다.”고 했다.
“나의 구걸로 나도 살고 타인도 먹인다. 어떻게 구걸을 했든지 간에 구걸할 능력도 의지조차도 없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나의 구걸에 의존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존심 상하고 슬퍼할 시간이 없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그러나 모금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열등감과 수치심이 동반되므로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모금자임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그는 그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2004년 유월 중순경에 이중표 목사님을 만나 뵈었다. 목사님께서 나에게 말문을 여셨다. ‘선교사가 무엇이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였다. ‘거지입니다.’ 그리고는 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침묵이 흘렀다. 목사님께서 조용히 한마디 하셨다. ‘나도 거지다.’ 목사님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괴었다. 그리고 그분은 세 시간 정도의 긴 시간을 말없이 거지 선교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셨다. 이 만남으로 이중표 목사님은 ‘비전아시아미션’의 창립자가 되셨다.”
그는 선교사 거지론을 이렇게 피력한다. “선교사가 거지인 것은 그들의 의식주가 철저하게 모금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우들의 후원과 헌금으로 사는 삶이기에 항상 절제하며 삼간다. 은혜로울 때는 모든 것이 감사하고 경이롭기 그지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구속감과 부담감과 굴레가 되어 초라함과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솔직한 고백은 진정으로 선교를 위해 모금을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나의 구걸에 의존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존심 상해 하고 슬퍼할 시간이 없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그러나 모금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열등감과 수치심이 동반되므로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모금자임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선교사들에게는 꼭 기억해야 할 경구로 들린다.
“‘선교사 거지’는 세상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다. 은퇴 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여기서 주님과 관계를 맺고 그분 안에 사는 일꾼으로 족하다. “하나님, 여기 종이 있습니다.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오. 관제로 부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나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 나를 던진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거지! 사람의 호의와 자비에 의존된 거지!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자신을 내려놓은 거지! 그러므로 선교사 거지는 땅과 하늘의 호의로 사는 고난과 축복을 동시에 받은 종이다. 선교사가 거지면 하나님은 거지의 주인이요, 거지 대장이시다.”
“선교사는 거지다”라는 그의 에세이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내가 온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는 마지막 한 단을 일으켜 세우고 비로소 춤을 멈추셨다. 달빛을 받으며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함께 걷는 것으로 행복했다. 어머니의 큰 손과 관대함, 동정심과 연민, 따스한 가슴, 땅에 대한 애정이 내 핏속에 흐르고 있다. 휘영청 밝은 달빛 무대는 아니지만 거칠고 투박한 데칸의 황무지에서 선교를 춤으로 생명의 예술로 바꾸고 싶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 싶다. 그러한 가정에서 나서 그런 넉넉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 스스로 낮아지셔서 죄인들을 품에 안으신 예수를 만남으로, 그도 남인도 데칸의 달리트들을 끌어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은퇴 후를 아무런 준비 없이 맞으면서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 눈을 뜨고도 보지는 못하는 당달봉사가 된 사울의 기도를 반복하던 내가 선교지에 강의를 나가게 되면서 선교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모금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열등감과 수치심이 동반되므로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모금자임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이 선교사의 고백이 씁쓸하게 가슴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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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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