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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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28 21:4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을 배우는 원리와 실제


1.
그동안 《성경 원어란 무엇인가》에 이어서 《성경 원어의 실제》라는 도틈으로 오늘까지 스무 차례 다루었다. 원어 성경을 몇 가지 분야에 견주어 살폈고 원어 성경 자체를 깨닫는 데 필수요소를 조금 나누었다. 오늘은 두 도틈을 묶어서 원어 성경 알맹이를 살피기에 앞서 성경신학에 비추어 공부하는 실전 원칙을 다루려고 한다. 134호와 142호를 참고하여 보기 바란다. 원어 성경을 그저 역본 성경 중에 하나로 생각하는 좁은 뜻으로 배우려면 그만두자. 성경신학이 과연 그러한가를 원어 성경 내용을 통해서 낱낱이 확증해야만 한다. 원어 성경을 잘 모르거나 빗나간 소문만 지닐 때 오해하기 쉽다. 성경신학만으로도 된다고 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게 된다. 신학연구의 자료가 성경인데 아직도 우리말 성경이 미진하다. 바른 성경 번역이 급박한데 원본인 원어 성경을 모른다면 교리주의처럼 신학이라는 이름만 앙상하게 남는다. 말로만 성경, 성경을 외쳤지 원어 성경과 성경 번역을 비평신학에 내주고 말았다. 철학과 과학, 언어와 역사 모든 방면에서 원수들이 덤비는데 어떻게 변증하여 물리치겠는가? 성경신학을 입증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도 저마다 원어 성경공부라는 진리 싸움에 대동단결해야만 한다.

2.
앞으로 원어 성경 내용과 속뜻을 성경신학 짜임새에 비추어 살피고 싶다. 물론 원어 성경이 주인일지라도 성경신학에 일치하는지 큰 틀과 작은 얼개를 통해서 기본부터 다루려고 한다. 그래서 아홉 차례에 걸쳐 기초 중의 기초인 알파벳과 언어 역사를 조금 생각했다. 배달말을 중심으로 언어발달사와 비교언어학을 깊이 공부한다면 좀 더 원어 성경을 잘 깨달으리라 확신한다. 이미 밝혔지만, 우리말 실력이 원어 성경 실력에 나타난다. 그리고 다른 나라 말로 원어를 살피는 게 아니라 우리 말글로 배운다는 것을 꼭 붙잡기 바란다. 적어도 성경신학을 받았다면 왜 한 걸음씩 원어 성경을 갖추는 데 함께하지 못하겠는가? 읽기와 쓰기가 끝이다. 우리글을 보고 읽듯 자연스러울 때까지 집중하여 소리로 연습하면 된다. 그리고 문법이 필요 없고 원어 성경을 곧바로 배우면 된다. 다만 다른 나라 말이다 보니 말들 차례가 다르고 낱말의 짜임새가 다른 것을 몸에 익히면 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데 왜 첫술에 배부르려고 하는가? 성경신학 짜임새도 뜻을 갈라서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듯이 원어 성경도 똑같다. 일반계시로 외국어라는 것만 알면 된다. 다만 세상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원어 성경을 받아야 한다. 원어에 관련한 서책들과 이론들에 거의 모두 비평신학이 깔려있기에 정말 분별하여 가려내야 한다. 성경신학이 큰 길잡이 구실을 한다.

3.
우리말을 보면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뼛속 깊이 들어왔다. 적어도 200년 이상 우리 말글이 망가졌다. 어떻게 무엇이 망가졌는가를 하나씩 곁들여가면서 원어 성경을 배워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하나 마나가 된다. 서구 언어로 신학연구가 이미 끝장났다. 섭리인데 우리 말글도 이것을 거울삼고 무엇부터 뜯어고치면서 나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그저 단어 하나 배우고 유명한 구절이나 원어로 안다고 능사가 아니다. 오직 성령님이 거듭나게 하시고 성경 진리를 하나님 말씀으로 깨닫고 고백하게 하면서 이끄시고 가르치심을 붙잡게 해주셔야만 한다. 원어 성경에서 하나를 배울 때 모두를 배운 것 같은 효과와 확신이 생겨야 한다.
표준어와 한글맞춤법, 중국 한자와 일본 한자, 영미 문법과 현대 언어 이론 따위를 넘어서야만 한다. 배달말과 배달겨레가 섭리 가운데 살아있기에 그 뜻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신학을 배달겨레에게 주신 토종이라면, 원어 성경을 그런 자세로 다루어야 한다. 성경신학이 세계신학계에 새로운 길잡이 구실을 하게 해주시기를 바란다면 같은 목적, 같은 방법, 같은 원리로 공부하되 배달말의 원리를 갖추어야 한다. 성경번역이 아울러 이루어지는 원어 성경공부이기에 믿음의 분량과 은사를 따라서 교회 지체로서 사귀면 된다. 성경신학이라는 성령님 열매가 교회에 주신 성령님 사역인가를 반드시 원어 성경에서 확인하고 검증해야 한다.

4.
자음과 모음 그리고 받침이 지닌 뜻을 알고 원어 성경을 소리 내서 읽는 게 절반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다! 낭독이란 하루아침에 능숙해지는 게 아니다. 글자에 친숙해지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정확하게 읽는 게 중요하다. 처음에는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한 음절씩 큰 소리로 읽지만 조금씩 자신감이 붙으면 차츰 많이 읽게 된다. 식욕이 당길 때 집중하여 뜻이나 문법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그저 창세기랑 마태복음부터 동시에 나누어서 끝까지 읽어보자. 우직한 방식을 하나 더 말한다면 아예 원어 성경을 써보는 일이다. 빠른 시간 안에 읽기랑 쓰기를 할 수만 있다면 굉장한 사건이다.
아울러 우리말에 밴 영미 문법과 일본 말투를 깨닫고 고쳐나가는 일을 잊지 말자. 이것을 모르거나 업신여기면 하나 마나이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 말글에 갇혀서 뿌리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부분에 치우치라는 말이 아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는 말처럼 낱말 하나하나가 생명의 말씀이요 예호바 계시이기에 소홀히 여길 수 없다. 지금 우리말이 뿌리째 망가져서 얼빠진 겨레가 되었다. 이것을 인식하고 깨달아야만 원어 성경을 보는 자세가 남다르다. 서양 언어와 중국어, 일본어 말투로 원어 성경을 배우면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겉돌게 된다. 성경신학 서책들도 우리 말글로 가다듬어 고치고 깁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뜻 때문이다!

5.
이미 우리가 성경신학으로 성경 전체와 부분을 알고 성경 내용도 많이 안 것은 정말로 유리한 일이다. 제대로 성경신학을 깨달았다면 원어 성경을 배울 때 남다르리라. 원어를 만 단어부터 오천 단어를 배우면 되는데 통독으로 여러 방식을 거쳐 다가서면 된다. 글월을 5천 절부터 7천 절을 빠른 시간 안에 해석 연습을 할 수 있으면 우리말 성경처럼 읽고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다. 동사를 중심으로 낱말을 배우면서 글월이 생긴 틀을 새기면 차츰 길이 보인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고 애쓰고 힘쓴 것에 백분지 일만 해도 이미 종점이 보인다. 이렇게 원리를 보면 쉬운 길인데 성경신학을 사수한다면서 왜 원어 성경을 못 배우겠는가?
복음서를 보면 네 권이 비슷하다. 저절로 원어 성경을 익힐 수 있다. 사도행전과 로마서를 거치면 가속도가 붙는다. 구약도 마찬가지이다. 간단한 문장인 토라만 잘 연습하면 역대기까지 단숨에 달려간다. 시가서랑 선지서 어휘가 새롭지만, 시편과 이사야를 넘어서면 이것도 빨라진다. 이렇게 대충 구약과 신약을 원어로 해석해 나가면 깨달아지는 게 한둘이 아니리라. 두 원어 자체의 관계도 새로워지지만, 무엇보다 성경신학을 보는 눈이 새로워지고 오붓해진다. 원어 성경을 펴들고 하나씩 알아나가는 자체가 성경신학을 사수하고 전파하는 사명을 이루기에 성령님이 교회를 위해 써주시리라 믿는다.

앞으로 원어 성경을 성경신학 원리에 묶어서 살피려고 한다. 지난날 바른 교회에 주신 성경 번역 원리를 계승 발전하여 배달말로써 어떻게 이끄시는지 빌면서 공부하려고 한다. 과연 우리 성경신학을 원어 성경에 비출 때 그러한지 맛보고 더욱 큰 확신에 다다르고, 입술에 열매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찬송이 넘치기를 바란다. 갈 길이 멀지만 기본바탕부터 다지면서 이끄시는 만큼 다루고 싶다. 우리 다음 세대에 좋은 일꾼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젊을 적부터 원어 성경도 함께 알리는 계기가 나타나서 섭리 가운데 배달말글로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지기를 바란다. 다음 호에서 하나님 이름 계시부터 살피면서 이어나가려고 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하나님 이름 계시 [1]
여섯. 말씀의 운동력으로 성경권위 회복 운동 II - 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