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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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9 22: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 이름 계시 [2]


1.
지난날 프랑스에서 데카르트가 말한 “코기토 에르고 숨”이라는 명제로 뭔가 진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것이 서방 철학의 비극이다. 현대에 이르러 몇몇이 언어에 문제가 있음을 조금 깨달았을 뿐이다. 원어 성경 비평과 성경 본문해석 비평도 따지고 보면 세상 언어의 틀에 갇혀서 헤맨 열매이다. 짧게는 3천 년에서 길게는 5천 년 넘도록, 언어의 발달사를 보면 끝없이 타락한다. 바벨 평지에서 벌어진 일이야 그중 한 사건이다. 언어가 우상으로 돌변하여 예호바 엘로힘을 왜곡하니, 작정 섭리 가운데 뒤죽박죽 만드셨다. 언어 표기가 생기고 나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음이 생겼다. 고정관념에 빠진 것이다. 이것을 누구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계시의 중심인 “하나님”이라는 이름 계시를 간단히 살피는 중이다. 현대신학에서는 이미 이것을 말하지 않는다. 불가지론처럼 만들어서 신줏단지처럼 만들었다. 예호바[여호와]가 바로 그 이름 계시의 절정이다. 이것을 알아야 계시의 중심인 이에수스 ㆅㅡ리스토스[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다. 이 지면에서는 원어 표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우리말 정음으로 음역하여 적으니, 원어 글자를 저마다 상식으로 알아두기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 이름을 다루는 데 있어서 그 근거자료란 먼저 원어 성경이고 다음이 번역 성경이다. 이어서 교리와 신학에서 드러낸 자료들이다. 모든 자료가 타락한 서방 언어들로 적혀있다. 게다가 서방의 언어는 우리말과 뿌리가 다르다.

2.
지나가는 길에 유대인[쥬스]이라는 종족을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 현대 서방 신학에서 가장 영향을 미치는 자들이 현대 이스라엘에 속한 유대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예페트[야벳] 계열에서 나온 갈래들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역사 기록이란 필요에 따라서 없애고 덧붙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유대인을 뒤이어 로마 가톨릭이 또 도사리며 주무르고 있다. 이른바 개신교를 이들이 들러리로 세워 갖고 노는데, 그 연장과 방법이 바로 성경이요, 성경해석이며, 그 중 ‘예호바’라는 하나님 이름의 계시가 눈에 띈다. 세상 힘을 동원하여 교묘하게 억누르고 언론으로 세뇌시켜서 사람들을 먹고 마시는 일에 빠지게 했다. 언어로 생각을 조종한다는 말이다. 인공지능을 보라.
구약 원어는 본디 자음만으로 된 음절 언어이다. 영어로 ‘히브루’인데 현대이스라엘 말로 ‘이브리트’라고 한다. 이른바 히브리어이다. 본디 쉠의 4대 손자이며 아브라함의 6대 조상이 에베르이다. 에베르가 집안을 이루었을 때 ‘이브리’이며, 에베르 종족이라고 불렀다. 그러기에 히브리어보다는 ‘에베르 말’이 좋다고 본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언어로 생긴 우리 선입견이 워낙 심각하기에 근원을 조금 밝히는 것이다. 현대히브리어란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가 19세기 말에 원어 성경에서 낱말들을 부려쓰기 시작하여 현대어를 만든 것이며, 성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대 이스라엘 나라를 잘 알아야 한다.

3.
지난 호에서 “여호와”를 원고에는 한문과 원어로 표기했는데 아쉽게도 보이지 않는다. 문장 표기가 얼마나 중요한데, 편집하면서 지우거나 고치면 글쓰기가 어렵다. 예호바 계시인 성경에서 엘로힘이 예호바란 사실을 드러내시는데, “예호바”라는 소리를 정확하게 아는 이가 없다. 다만 모음 부호라는 것을 섭리 가운데 전제하고 우리 정음으로 가장 가깝게 발음할 뿐이다. 소리와 글자에 뜻이 담기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른바 테트라 그람마타[네 글자들]라고도 부르는 “예호바”는 알파벳으로 “요드, 헤, 바브, 헤” 네 글자로 썼다. 이것을 번역하고 읽으면서 갈수록 망가졌고 성경비평작업으로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어 없앴다.
참고로 우리말 역본들을 보면 여호와가 6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원어 성경에는 여호와가 칠천 번 가까이 나온다. 구약 원어 성경에서도 예호바를 아도나이와 아돈으로 바꾼 것이 150개에서 많게는 300개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알렐루이아”가 네 번 나오는데, “-이아”는예호바의 시형인 “야흐”를 음역한 것이다. 모두 예호바를 “퀴리오스”로 번역했다. 구약에서 예호비도 200여 군데 보이는데, 엘로힘으로 읽고 ㅼㅔ오스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번역자가 내키는 대로 옮긴 것이다. 오늘날 예호바가 가장 많이 나오는 성경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한다. 야웨니 야훼니 하는 모든 말장난도 언어의 틀이 망가져서 비롯한 일들이다. 서구 언어가 얼마나 망가졌는가?

4.
지난날 성경 번역을 통해서 예호바를 어떻게 뒤바꾸었는지 살펴보자. 출애굽기 3장 14-15절과 6장 2-3절에 몇 가지로 나온다. 3장에서 세 번인데,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에흐예], [예호바] 그리고 6장에서 두 번 모두 [예호바]로 적었다. 이것을 칠십인 역본에서 <에고 에이미 호 온>, <호 온>, <퀴리오스>와 <퀴리오스>, <퀴리오스>로 옮겼다. 가톨릭 불가타 역본에서 “에고 숨 크비 숨”, “크비 에스트”, “도미누스”와 “도미누스”, “아도나이”로 뒤바꿨다. 칼뱅은 라틴 역본에서 (숨 크비 숨), (숨), (Iehova)와 (Iehova), (Iehova)로 번역했다. 한글 개역본에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와 “여호와”, “여호와”이다. 한글 구역본에서는 “영원자존자”와 “여호와”를 썼다.
정리하면 음역과 해석역 두 가지이다. [에흐예]가 ‘나는 있다’로 반복하는 현재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을 LXX 구약역본에서 <호 온> ‘그 있는’으로 번역했다. 물론 ‘아쉐르’ 자를 빼버렸고 “에고”라는 인칭대명사를 덧붙였다. 뒤에서는 “퀴리오스”로 적었다. 가톨릭의 라틴 역본을 보면 칠십인 역본을 따라서 “에고”를 추가했고 아쉐르를 크비로 뒤바꿨다. 에흐예를 또 크비 에스트로 풀이역이다. 예호바를 도미누스와 아도나이로 뜻과 소리를 따라서 옮겼다. 칼뱅은 같은 라틴어이지만 예호바로 뒤바꿨다. 에흐예를 ‘숨’, “내가 있다”로 뒤바꿨다. 6장에서는 예호바로 잘 번역했는데, 3장에 나온 것을 저마다 다르게 옮겼다. 이처럼 세 가지로 가르쳤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5.
출애굽기 3장 14절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를 KJV에 “I am that I am”으로, 뒤에 예호바를 LORD로 번역했다. 영어와 히브리어의 차이가 나타난다. 모두 이분법 언어로 짜여 있지만, 영어가 훨씬 더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칠십인 역본에서 <호 온>으로 관사에서 현재분사로 뒤바꿨는데, 거기서 거기이지만 좀 낫다. 이미 가톨릭 번역에서 아도나이가 나오는 것을 보면, 히브리어 성경에서 예호바를 그렇게 고쳐 부른 것을 가리키고 있다. LXX 초기판본에서는 예호바를 알파벳 음역에 따라 πιπι 로 그린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일단 두 알파벳이 다르고 모음 틀이 무너졌기에 제대로 뒤바꿀 수 없다. 우리 정음만이 어떤 언어도 다 그릴 수 있다. 이름이 에흐예와 예호바, 예호비이다.
‘예호바’는 “하야”라는 존재를 나타내는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해본다. 문제는 히브리어성경도 사본 뿐이고 여러 가지로 덧칠을 한 것이어서 조심해야 한다. 유대인 우월 사상에 빠지면 빗나가게 된다. “하쉠”으로 표기하는 현대히브리어 성경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세계성서 공회와 모든 원어 관련 서책들에서는 퀴리오스와 Lord[주]로 일치시켰다. 한 언어에 빠지면 그 이상 생각을 하지 못한다. 번역을 통해서 그 뜻을 잘 이어받아야 하는데, 우리말을 보면 한글 역본에서 바른 것을 구현하기 어렵다. ‘여호와’랑 ‘주’가 같은가? ‘여호와’랑 ‘예호바’는 또 어떠한가? 아무런 생각 없이 여호와를 말하는 한국교회란 아찔하다. 변질된 말을 쓰면 딴 나라의 술책에 빠져 헤매게 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엘로힘과 떼오스
일곱, 성경진리 확산의 수단 -인문주의(humanism)의 상반된 두 얼굴